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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의 이모저모

1시간여 남은 시간을 철암탄광 역사관과 야외장터를 둘러보기로 한다

쇠(鐵) 바위(岩) 마을을 뜻하는 철암(鐵岩) 지역에 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경이었다. 

1940년 묵호와 철암 사이에 석탄 운반용 철도, 철암선이 개통되고 1955년 철암과 영주를

잇는 영암선까지 뚫리면서 철암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탄광 역사촌

옛 탄광촌 주거시설을 복원·보존한 생활사 박물관이다.

마을 전체가 영화 세트 같이 30년 전 탄광촌 풍경에 멈춰져 있고, 박물관 내 아트하우스에 예술가들의

시각으로 철암을 재조명한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잊혀가는 석탄산업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으며, 사람은 넘치고

주거공간은 부족하던 시절 개울 바닥에 지지대를 만들고 주거공간을 넓힌 까치발 건물이 특징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살 집이 부족해지자 철암천 물가에 기둥을 세운 까치발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스스로를 "막장 인생"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것은

그 당시 광부 월급이 공무원들의 몇 배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 3명까지의 대학 학자금과 연탄이나 쌀을 공짜로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나 흥청거렸던 호황은 30년 만에 끝이 나고 만다.

난방과 취사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석탄에서 기름과 가스로 바뀌면서 석탄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수많은 탄광들이 폐광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에 들어와서 시행된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면서 철암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비록 온전하지는 않으나 철암시장 방향의 옛 건물들은 다행히 온건히 남아있어 태백시에서는

이를 수용하여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면서 리모델링을 거쳐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태풍 루사와 매미의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철암

아주 오래전 태백은 산촌마을이었다.

산에 불을 놓아 풀과 나무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농사를 짓는 화전민들의 삶이 있었다. 

잡목을 태워 숯을 만들어 내다 팔았고, 땅속의 자갈이 적고 토양이 부드러워 콩과 옥수수, 

감자 등을 심으며 살던 화전민들이 터를 잡으며 주변의 것들로 만들어진 너와집과 굴피집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1960년대, 탄광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베를 짜던 어머니는 석탄을 날랐고, 땅을 일구던 아버지는 광부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한때 640만 톤에 달하는 석탄을 생산하여 우리나라 석탄생산의 30%를

차지하면서 태백은 제1의 광도로 이름을 날렸고, '검은 황금'을 캐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이

태백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밀려 광산 사택으로 변하고 흙길은 포장이 되어 석탄을 운반하기 좋은 길을

만들게 됐다. 오지 고수님 글에서

6~70년대의 광부들의 삶의 한 장면

생활도구들

파독 광부가 연인원 7900명이었으며 모두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로 이주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광부는 고작 2~3.000명이라고 한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국내로 송금한 돈이 1억 153만 달러였고 총수출액의 1.9%였다고 한다

연도별 파독 인원

검은 노다지라고 불리던 석탄은 돈을 불러들였고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많아진 돈을 따라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까치발 가옥

수십 년을 광부들의 삶과 함께 지내온 ‘까치발 가옥 건물 자체가 절반은 땅에 있으나 절반은

철암천으로 나가 있다.

이국적인 풍경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광부들의 애환과 한숨을 묻고 있는 집들이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새와 틈 새 없이 세워진 건물들의 빽빽함은 당시 팍팍했던

광부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잘 다녀올게. 광부의 남편을 배웅하는 모습이다

전국에 360개의 광산이 있었으며, 광부만 43만이었다. 

그러던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으로 몇몇의 광산만을 남겨두고 문을 닫았다. 

석유와 가스로 대체된 연료의 효율은 끝내 석탄 산업을 내리막길로 밀어냈다.

전국의 광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50여 개만이 남았다가 2013년 현재는 태백지역 4개의

광산에 5천여 명의 광부들만이 남아 있으며, 그 마저도 자원의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흔적이 태백 ‘철암역’에 남아 있다.

태백 시내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철암역의 뒤로 ‘영암산’이라는 산이 있으나, 검은 석탄으로

쌓여 있으며 거대한 기계가 버티고 있다.

석탄들을 기차로 이동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선탄시설’로 등록문화재 근대문화 제21호,

철암역 두선 탄장이다.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선탄시설은 문화재 보호와 안전을 이유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부추꽃

김기태 화가의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철암은 한창 때는 인구가 2만 4천 명에 달할 정도로 잘 나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철암역 앞에는 매일마다 사람이 북적거리면서 장이 섰다고 한다.

1시간 동안  탄광 역사촌과 시장을 돌아보고 분천으로 가는 13시 24분 차를 타기 위해

철암역으로 이동을 한다

분천역에 도착 산타마을로 진입하는데 코로나 소독을 위한 약품 분사 인지

안개 분수가 품어대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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