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문소 명칭의 유래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큰 석문(石門)을 만들고, 그 아래로 깊은 소(沼)를 이루었다는 뜻의 구문소는
‘구무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구무’는 ‘구멍’ 또는 ‘굴 ’의 옛말이다. 다른 말로는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고 해 ‘뚜루내’라고 하며,『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등의
고문헌에는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곡에 물이 많지 않아서 인지 생활오수가 흘러 들어서 인지 물위에 거품이 많이 생성되어 있다
오복동천자개문
동굴 아래 글씨는 "오복동천자개문(五福洞天子開門)"으로, 정감록에 의하면 낙동강 최상류에
올라가면 더이상 갈 수 없는 석문이 나오고 그 석문은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문이
열릴 때 얼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도 없고 삼재가 들지 않는
이상향이 나타난다."는 내용을 7자로 함축해 놓은 글이다.
구문소 옆의 차도용 터널은 경북지방에서 태백시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곳으로서 이 터널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터널인데 이 터널이 조성된 시기는 일본식민지시절 일본인들이 장성에 탄광을
개발하면서 자동차도로를 내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발파를 하여 만든 도로용 터널이다.
태백 구문소(求門沼)는 황지천 하구의 물길 가운데 있다.
구문(求門)은 구멍·굴의 옛말이며 ‘굴이 있는 늪’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현재의 황지천은 하식동굴과 구문소를 지나 흐르면서 철암천과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과거 동굴이 뚫리기 이전의 황지천은 동굴의 남서쪽을 크게 휘돌아 곡류(말밥굽 모양 Ω)
하였으나 동굴이 뚫림으로 인하여 오늘과 같이 흐르게 되었다.
태백 구문소 부근의 석회암에는 건열, 물결자국, 소금 흔적, 새눈 구조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나오고 있어 전기 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또한 동굴을 관통하며 흐르는 황지천 하류의 물길은 현내천과 함께 하천 물길의 변천을 연구하는데
학술상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태백쪽에서 바라본 구문소
구문소 삼형제폭포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 2~3백년은 됐을 것 같다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
황지연못(상지)
황지연못(黃池蓮-)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못이다. 낙동강의 발원지로도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 《척주지》(陟州誌), 《대동지지》 등 옛 문헌에도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밝혀 놓고 있다.
연못은 둘레가 100m인 상지(上池), 50m인 중지(中池), 30m인 하지(下池) 등 세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있다.
상지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어 매일 약 5000 톤의 물이 용출되는데, 과거에는 취수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황지연못에서 용출된 물은 황지천(黃池川)을 이루고 구문소(求門沼)를 거쳐 낙동강과 합류하여
경상북도, 경상남도 및 부산광역시 을숙도에서 남해로 유입된다.
황지연못은 태백시 도심에 있어, 황지연못을 중심으로 근린공원인 '황지공원'을 조성했다.
2017년 태백시는 총 84억(보상비 61억 원, 공원 조성 13억 원, 철거비 10억 원)의 사업비를 통해 2016년 말
철거한 메르디앙 부지를 이용해 2507m²의 문화광장을 조성했다.
기존 6900m²였던 황지연못 공원은 9730m²으로 늘려졌다.문화광장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와 여름에는
분수대, 겨울에는 스케이트 광장으로 이용된다.
한 때 황지연못이 취수원으로 이용된 적이 있는데, 2008년 9월부터 태백시의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이 못의
물을 취수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1989년 광동댐 건설 이래 처음이며, 댐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태백시의 생활용수를 공급했던 주요 자연 상수원의 역할을 하였다.
2008년 가뭄 장기화로 실시한 이후의 취수량은 하루 350톤 가량으로 2개월간 18,500여톤에 육박하고 있다.
때문에 황지는 원래 물속에 대부분 잠겨있었던 거북이 조각상이 수면위로 드러날 만큼 수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었다.
중지
하지
황지천에서 가족단위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
축제중이라서 거리마다 먹거리 장터가 형성돼 있는 모습이다
태백은 지금 물축제중이다
휴일이기도하지만 축제 때문에 주차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황부자의 며느리상
전설에 의하면 황부자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하여 황지(黃池)라고 부르는데 훨씬 이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으로 천황(天潢)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황부자 전설은 옛날에 욕심많고 심술궂은 황부자가 살았는데, 어느날 황부자의 집에 시주를 요하는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이걸 며느리가 보고 깜짝 놀라면서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을 한 바가지를 시주하니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 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아니 되오"라는 노승의 말을 듣고 뒤따라 가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렀을
때 자기 집 쪽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노승의 당부를 잊고
돌아다 보았다.
이 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 큰 연못이 되어버렸고 황부자는 큰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 며느리는 돌이되어 있는데 흡사 아이를 등에 업은 듯이 보인다. 집터는 세 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큰 연못인 상지가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 자리라 한다.
어수리(당귀인.천궁인지과 잎이 달라서 찾느라 시간허비)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몽골, 일본, 러시아에 분포한다.
전체에 털이 많다. 줄기는 곧추서며, 높이 70-250cm다. 뿌리잎은 줄기잎과 비슷하다.
줄기잎은 깃꼴겹잎이거나 작은 잎 3장으로 된 겹잎, 넓은 삼각형, 잎자루 밑이 넓어져서 줄기를 감싼다.
꽃은 6-8월에 가지 끝과 줄기 끝의 겹산형꽃차례에 달리며, 흰색이다.
작은 꽃차례는 20-30개, 각각에 꽃이 15-30개 달리며, 지름 2.5cm쯤이다.
꽃차례 가장자리에 피는 꽃의 꽃잎은 안쪽 것보다 2-3배 크며, 그 중 바깥쪽 2개는 더욱 크고 끝이
깊게 2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분과이며, 납작하다.
어린순은 먹는다. 항바이러스, 항염 효과 등의 약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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