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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함안 무기연당

무기리 주씨 고가의 솟을 삼문의 중문 위에는 충신 정려(旌閭)와 효자 정려가 나란히 걸려있어,

충신 정려는 국담이 세상을 떠난 후 충성심에 대한 공훈으로 내려진 정려로 영조가 내렸으며,

효자 정려는 이인좌의 난 때 아버지와 함께 출정하여 공을 세운 큰아들 주도복에게 1859년(철종 10년)에

내린 것으로,주도복은 어머니 병이 위중하여 목숨이 위태할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목숨을

 연장한 효자로 효행에 대한 포상으로 내려 졌는데,오른쪽이 국담(菊潭)의 충신정려(忠臣旌閭)이며

 왼쪽에는 아들 주도복의 효자정려(孝子旌閭)가 함께 걸려 있어 충효쌍정려문(忠孝雙旌閭門) 이다.

 

효자

증 조봉대부 사헌부 지평 주도복 지문

철종 11년 경신7월 명려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사랑채인 감은재(感恩齋)가 있어, 

낮은 기단, 정면 세칸 측면 두 칸 팔작지붕으로 중앙에 대청을 깔고 양측에 방을 두었으며,

정면에는 툇마루, 측면에는 쪽마루를 내고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 천장으로 꾸렸는데,

감은재는 영조대왕의 은혜에 감읍한다는 의미로 주재성(周宰成)은 영조가 승하한 후 3년 동안

 조석으로 궁궐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채인 감은재를 마주하고 협문인 한서문(寒棲門)이 있어 무기연당으로 들어가는데,

연당 주변에는 담장을 쌓고 협문을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한서문(寒棲門)

 현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무기연당

조선 1728년 '이인좌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주재성 선생 생가에 있는 연못이다.

관군들이 선생 덕을 칭송하며 만들었다 한다. 연못 주위를 돌로 쌓은 둑, 한가운데 작은 인공섬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장면을 연출한다.

 

 

무기연당(舞沂蓮塘)의 무기(舞沂)는 논어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는 욕호기(浴乎沂)

풍호무우(風乎舞雩)에서 유래 하여,유유자적한 생활과 풍류를 즐기며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의미 한것으로 보이며,연당을 국담(菊潭)이라 이름하고 석가산(石假山)을 쌓은 당주를

양심대(養心臺)라 하였으며,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니 그 문을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는데 이는

 고마움을 보답하려는 병사들의 정성 였습니다.

 

 위치: 칠원면 무기리 966

 

 

주재성 선생의 사당 충효사

 

 연당 서쪽에는 영귀문(詠歸門)이라는 일각문이 있고 서쪽에는 1745년에 건립된 충효사(忠孝祠)가

자리잡고 있다. 연당 주위의 담 서쪽은 1700년대에 지어진(경남민속자료 10)로서

감은재(感恩齋)·영정각(影幀閣)

 등이 있다. 감은재는 국담의 장남인 주도복(周道復)의 서실로서 국담문집책판

(菊潭文集冊板:경남유형문화재 242)이

     보관되어 있고, 그 대청 북쪽벽이 영정을 모셨던 영정각이다.

[Daum백과] 함안무기연당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하환정에는 많은 중수기와 여러 현판들이 있으나 내 실력으로는 해석불가

자연의 삶을 고난의 벼슬길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하환정(何換亭)

하환정(何換亭)에서 하환(何換)의 환(換)은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의 바로 그 "환(換)"으로,

何換(하환)이란 "어찌 바꾸겠느냐"는 의미이니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과 같은 맥락으로서,

은둔과 절개를 상징하는 문구로 사용된 것으로 주변 에서의 세 번의 천거에도 불구하고 끝내 벼슬길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지냈던 주재성(周宰成)의 거취였으며, 또한 조선선비의 표상으로 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겨울섬 님 글에서


풍욕루

연못의 서북쪽에는 오래된 정침한 채가 남아 있으나, 많은 부분을 고쳐서 그 가치를 잃고 말았다.

연못가에는 후대에풍욕루(風浴樓)와하환정(何換亭)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내어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다.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으로, 정원문화(庭園文化)

연구에 좋은 자료이기도 한 이곳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풍욕루(風浴樓)의 마루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푸른 향나무와 섬을 향하여 비스듬히 누운듯 노송 한그루가 있고,

곁에 있는 돌계단 아래에 옛선비가 갓끈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는 탁영석이 있다

 

대청마루 벽에는 성리학의 핵심인 “경(敬)”자 편액이 걸려있어,

"생각이나 헤아림을 중단한 상태에서 마음을 고요하게 간직하라"는 의미로 보여지며,

 

 인간의 마음은 본래 착한 것이므로 마음이 처음 밖으로 나타날 때에는 남을 사랑하고 돕는

방향으로 나타나지만, 이때 생각이나 헤아림이 이기적으로 작용하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는 악한 마음으로 변질된다는 뜻입니다.

 

13mx20m크기의 국담(菊潭)에  4m 방형크기의 모래섬을 양심대(養心臺)라 하였는데,

새어나오는 물을 수원으로 하고 이후 주재성(周宰成)은 연못 이름으로 국담(菊潭)이라 호를 삼고,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사철 모습이 변하는 국담(菊潭)에서 우주를 보고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무기연당의 구조와 형태

연당은 직사각형으로 그 한가운데 당주(當洲)가 있는데 봉래산(蓬萊山)을 연상시키는 가산(假山)이다.

주위에는호안(護岸)을 쌓고 북쪽에 하환정(何換亭)·풍욕루(風浴樓)를 지었다.

하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이다 연당 쪽으로 난간을 설치하였다.
                            마루는 고설(高設說)하지 않고 그저 사기(四起)한 정도이다.

홑처마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이다.

풍욕루는 댓돌을 높이 쌓고 앞뒤퇴가 있는 3칸 규모이며 역시 홑처마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이다.

이들은 1984년에 정화 보수하였다[Daum백과] 함안무기연당 – 대한민국 구석구석,

 

풍욕루(바람에 몸을 씻는 집"이란 뜻의 “풍욕루(風浴樓)

무기연당(舞沂蓮塘)의 기장높은곳에 자리한 풍욕루(風浴樓)로,

 

정면 3칸 측면2칸의 기단이 높고 마루가 넓은 단아한 누각으로  후대에 지어졌는데,

 

높다란 잡석의 기단위에 민도리 양식의 "一"자형 평면이고 전퇴(前退)가 있는 홑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의 구조다. 겨울섬님 글에서

 

조선 후기의 연못, 함안 무기연당

 

   무기연당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倡義事蹟碑)'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菊潭)'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방형(方形)에 가까운 국담(菊潭)의 연당은 산석(山石)으로 호안(護岸)을 쌓되 이급(二級)으로

하여 석축의 높이를 완화시켰고,중앙에 당주 하나를 모았는데 산석을 써서

봉래산(蓬萊山)을 형상하는 석가산을 쌓아 양심대(養心臺)라 불렀습니다,

국화꽃으로 가득한 연못으로 국담(菊潭)이라 하고 작은섬인 양심대(養心臺)가 있어,

그곳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의 암각을 볼수 있는데,백세청풍(百世淸風)은 백대(百代)에

부는 맑은 바람이라는 뜻으로,백세(百世)는 "오랜 세월" 또는 "영원함"을 뜻하고

  청풍(淸風)은 맑고 드높은 군자의 절개나 덕을 비유 한다고 하여,백세청풍(百世淸風)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를 의미하며 일편단심 조선왕조에 충성을 다짐하는

사대부가의 지조를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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