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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장안사와 옥정사

달음산 옥정사에 들린 지가 10년이 넘어 이곳에만 들렸다 집으로 갈려고 했는데 

장안사 은행나무가 궁금해진다 

오전에 평화공원 은행나무는 아직도 완전 노란색으로 변하지를 않고 약간 푸른색을 뗬는데

이곳 홍교 너머로 보이는 은행나무는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며칠 전에 본 상마 마을 감 정도는 아니어도 겨울 새들의 먹이로는 최고의 선물로 남아있다

불광산 장안사

대웅전 앞의 우람한 단풍나무도 세월이 흐름을 붙잡지는 못하는 듯 

거의 지고 아래만 조금 남았네

불자였다면 대웅전에도 참배를 해야겠지만 무종교인이기에 포대화상에게 눈길만 주고 돌아선다

오늘의 목적은 저 단풍나무와 밖에 은행나무였기에 꽃피는 봄에 다시 와야겠다

감국 같기도 하고 소국 같기도 하고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1시가 넘었다 이제 배도 슬슬 고파온다

가는 길에 달음산 옥정사에 잠시 들렸다가자

달음산 오르는 길에 있는 옥정사 올라오는 곳에 광산 마을도 있었는데 요즘 길도 새로 나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길이 잘 닦여있어 차로 사찰까지 일사천리다

대한민국 사찰 치고 원효대사에 얽히지 않은 사찰은 거의 없다

그 시절에 원효대사는 축지법을 써가며 기도정진은 하지 않고 전국을 돌며 사찰만 점지해주고 다녔을까?

아니면 스님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요즘 자동차로 쉽게 다닐 수 있어도 전국을 그렇게 다 돌기는 어려울 것인데 이제 원효대사를

그만 팔았으면 좋겠다

지장전 건물이 대웅전 건물보다 늦게 짓기도 했지만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지장시왕도

옥정사 지장시왕도는 면(綿) 바탕에 채색을 베푼 불화로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조성되었다. 

화면 중앙에 줄기가 치솟은 청련좌(靑蓮座) 위에 두광과 신광을 갖춘 지장보살이 정면 향으로 앉아 있다.

본존 좌우에는 합장한 도명 존 자(道明尊者)와(道明尊者) 무 독귀 왕(無毒鬼王)이(無毒鬼王) 협시하고 있고, 그 주변에 시왕 10위, 

판관 2위, 동자 2위 등의 권속(眷屬)이 상하 2열로 나눠 본존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광배 주위와 천공에는 주색과 녹색계의 화려한 채운(彩雲)을 장식하였다. 전체적으로 채색은

적색과 청색을 활용하여 보색 대비를 이루면서 부분적으로 녹색, 황색, 백색을 가미하였고 금속 지물에는

금니를 사용하였다. 게다가 백색 점열 문(白色點列文)·이중 원권 문(二重圓圈文)·몰골법(沒骨法)과(白色點列文)·이중원권문(二重圓圈文)·몰골법(沒骨法) 돋을

기법의 사용, 적색과 청색의 보색 대비, 다양한 문양의 장식적 효과 등이 돋보이는 불화이다.

 

옥정사 지장시왕도는 본존과 권속의 배치 방식 및 적색과 청색으로 대비되는 채색에서 전통기법을

고수하면서도 19세기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근대기 화승인 약효 계열의 특징적 기법인 몰골법이나

음영법 등을 반영하고 있어 주목되며, 근대기 불화로서의 도상과 화풍을 잘 보여주는 등 자료적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옥정사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의 달음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절은 1835년(헌종 1)에 창건된 절이 절터만 남아 방치되어 있는 것을 승려 박긍해(朴亘海)가 1907년에

  다시 창건한 사찰이다.

 

당시 박긍해는 본동 원리 마을의 친구였던 영천 이희조에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산 95번지95번지

 8,413㎡을 사찰 부지로 희사받아 작은 초가집과 토굴을 만들어 여러 곳의 선승들을 찾아오게 하였다.

 

그 후 1922년 상좌 수진과 함께 회상을 마련하고 직접 화주로 나서 불자들과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1923년 건평 82㎡의 세 칸 목조 팔작지붕 기와집의 법당을 지었으며, 산신각과 요사채와 한 동의 창고를

건립하였다.

 

1971년 66㎡ 규모의 대웅전을 건립 낙성하였다. 1982년 범종각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1983년 6월 범종,

 북, 운판운 판,목어 불사를 하였다.

 

1986년 설법 보전과 식당을 증축·개축하였고, 칠성각을 중수하였으며, 옛 용왕전을 헐고 약왕각을 지어

미륵보살을 봉안함과 동시에 용화 회상(龍華會上)을(龍華會上) 염원하는 꿈을 담은 감로 수각을 설치하였다.

 

1992년 봄에 동편 계곡이 홍수에 허물어져 석축을 쌓고 개울을 메워 옥정교를 설치하고, 7m 높이의

약사여래불 입상을 조성하였다.

 

1994년에는 스리랑카에서 부처의 진신 사리를 가져와서 이듬해 삼층 석탑에 봉안하였다.

2002년 지장전을 건립하였고, 2004년 2월 24일까지 설법 보전을 보수 완료하여 1층은 후원 식당으로,

2층은 요사채로 개조하였으며, 2008년에 주차장과 사찰 진입 도로를 완공하였다.

 

현재 옥정사 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설법 보전, 약왕각, 지장전, 칠성각, 산신각, 범종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진신 사리를 모신 삼층 석탑과 약사여래불 입상이 세워져 있다.

약왕각

구유(일명 구 시 통)
많은 대중들의 밥을 퍼두는 함지 통이라 할 수 있다. 본시 구유는 아름드리 통나무 속을 파내고 마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큰 그릇인데, 많은 신도들이 운집한 법회나 대작불사를 회향할 때와 유사시 승병들의

밥을 퍼두던 용기로 발전하였으며, 1000명분의 밥을 퍼담았을 정도로 큰 그릇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밥을 퍼담아 쓰던 밥통으로도 전해온다.

설법보전

대웅전

소림각

범종각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대나무 숲

소나무 숲에 끼어 있는 은행나무 한그루 이제 노란 잎도 다지고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는 듯 

아래에는 노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칠성각과 산령각

씨 클라멘트

소국

카랑코에

사찰에 비해 장독대가 많은 수량이고 질서 정연하게 놓여있는 것이 주지스님의 성격이

여기에 다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아직도 붉은 수국이 그대로 말라가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오래전에 달음산 올라 다닐 때 보면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었던 초라한 암자 같았는데

이제 어엿한 대형 사찰로 변모를 한 모습이다

버들잎 해바라기

미국 중부 원산의 '버들잎 해바라기(willowleaf sunflower)'
국화과/해바라기 속의 여러해살이풀. 골든 피 리밋이라고도 한다
꽃말 '밝은 미래', '순간의 즐거움'
학명 Helianthus salicifolius A.Dietr.

개화시기는 늦여름~가을, 총상 꽃차례로 꽃대 끝에 6~15개의 두상화가 달린다.

꽃의 지름은 5~8cm이고 설상화는 10~20개이며 짙은 노란색~밝은 노란색이고, 관상화는 50개 정도로

짙은 자주색~ 적갈색을 띤다. 잎은 좁은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길이 21cm(최대), 폭 1~1.3cm 정도이다.

줄기는 옅은 녹색으로 털이 있으며 높이는 60~100cm(최대 250cm)로 직립하며 가지를 많이 친다. 

내려오며 길거리에서 만난 버들잎 해바라기다(가는 잎 해바라기로 불리기도 한다)

아직도 하얀 모습 그대로 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 햇볕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옥정사에 들려본 것은 40년도 더 되는 것 같다

그동안도 이렇게 많이 변화가 됐는데 몇 백 년이 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계획한 대로 반도 안 돌아봤는데 벌써 14시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이제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