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기장 매화원에 갔다
원동 순매원에 비해 이곳은 꽃이 일찍 피어 지금 10% 이상 꽃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잘 가꾸어진 홍매와 백매 청매가 적당히 분포되어 관광객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안내문은 주말만 개방한다고 했는데 문은 닫혀 있으나 안에는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보여
문의를 하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한다
아직 주인장은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 조심스럽게 접근을 한다(3/9)
매화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피는 꽃이다. 춘래불사춘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다. 절기상 봄인데 바람이 불고 눈도 가끔씩 오는 예상밖 추위가 이어질때 이 구절을 인용한다.
계절이 거꾸로 간듯한 이런 날씨에는 매화가 있어서 봄인 줄 안다.
봄이 왔는지 아리송해 만물이 머뭇거릴때 추위를 겁내지 않고 보란 듯 피는 매화. 세상은 매화의 이런 성정을
흠모하고 예찬한다. 봄이 와서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매화가 펴서 봄이 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霜雪助素艶 눈 서리 흰 살결 고움을 도와
淸寒鐵人髓 맑고 싸늘함이 뼈에 시리다
對比洗靈臺 너를 대해 내 맘을 씻나니
今宵無點滓 오늘 밤은 앙금 하나 없구나!
율곡栗谷 이이李珥
매화 하면 퇴계와 기생 두향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퇴계는 그의 나이 48세 되던 무신년(1548) 정월에 단양군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안安 씨의 성을 가진 두향杜香이라는 18세의 기녀妓女가 살고 있었다.
본관사또로 부임한 퇴계를 처음 본 두향은 그의 고매한 인격과 심오한 학문에 매료된 나머지 수청을 자청하였고
두향의 총명과 재주를 인정한 퇴계는 이를 용납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시화와 음률音律을 논하고 산수山水를
거닐며 깊은 정을 쌓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중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1496∼1550)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형제가 같은 지역에서
상하관계로 있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하여 사직서를 냈으나 조정에서는 이와 같은 사정을 알고 그렇다면
이웃 지역인 풍기군수로 옮기게 하여 부임 후 아홉 달 만에 이직移職을 하게 되었다.
한편 퇴계의 곁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 오던 두향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떠난다는 소식에 눈물이 솟구쳐
참을 수가 없을 만큼 커다란 고통과 슬픔에 잠기고 말았다.
이윽고 퇴계가 단양을 떠나야 했던 전날 밤 두 사람은 침통한 마음으로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드디어 퇴계가 이별의 시 한 수를 읊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死別己吝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生別常惻測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나게 되었다. 기약이 없으니 몹시 두렵구나”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던 두향이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써 내려갔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며. 離別甚悲擧杯哀泣
어느덧 술 다 하고, 임마저 가는구나. 於焉間酒盡恁亦去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花落鳥鳴春日何爲”
이날 밤의 한 많은 이별은 퇴계가 6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기나긴
이별이 되고 말았다. 출처 : 영주시민신문
매화분재에 물을 주라’
한편 퇴계를 떠나보낸 두향은 기적에서 탈퇴하여 관기에서 물러나 평소 퇴계와 함께 자주 찾았던 강선대
옆에서 매화와 난초를 기르며 오로지 퇴계만을 그리워하던 중 인편으로 난초를 도산에 보냈다.
단양에 있을 때 함께 기르던 난초인 것을 알아본 퇴계는 두향을 만난 듯 어루만지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일어나 평소 자신이 즐겨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러 두향에게 보냈다.
두향은 이 물을 차마 마시지 못하고 정안수로 삼아 새벽마다 소복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퇴계를 위해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물이 핏빛으로 변한 것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한 두향은 나흘 동안 걸어서 도산까지
갔다. 결국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먼발치에서 장례를 바라보고 나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부르며 강물에 몸을 던져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거북바위 옆에 묻혔던 그의 묘는 충주호가 생기면서 물에 잠기게 되자 1985년 퇴계의
15대 손인 이동준李東俊박사의 주선으로 지금의 장회나루 건너편 강선대降仙臺 위쪽으로 옮겨졌다.
두향의 성씨가 안씨라고 전해오는 것은, 매년 가을 안 씨 문중의 대표들이 10여 명씩 두향의 묘소를 참배하고
간다는 사실을 단양군청 재난관리과 행정선을 운행하는 당시 김병근 선장의 말에 의해 알 수 있으며,
퇴계가의 후손들도 해마다 두향묘를 찾는다고 하니 그토록 비천한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아픈 사랑의 인연을
감싸 안은 명문가의 매향처럼 향기롭고 덕망있는 따스한 인간애人間愛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퇴계는 좌절坐折하던 아침에도 “매화분재에 물을 주라”(命灌盆梅)는 말로써 우리에게 소소로움의 이치를
알려 주었고, “매일 매화나무에 물을 주는 것”으로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가르쳤다.
또한 그가 남긴 시 가운데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라고 하여, 매화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했던 진정으로 매화를 아는 선비였다. 출처 : 영주시민신문
개쑥갓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이해인 님의 [매화앞에서] 중에서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松)와 대나무(竹)
그리고 매화(梅)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시인묵객들의 작품 소재로 즐겨 다루어졌다.
벚꽃을 닮기는 했으나 벚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배꽃과 비슷해도 배꽃처럼 청상(靑孀)스럽지가 않다.
군자의 그윽한 자태를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격조 있는 꽃이 바로 매화다.
매화꽃 환장하게 흐트러졌네 / 김 용 택
매화꽃 피면 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매화더러 피지 말라고 했지요
그냥, 지금처럼 피우려고만 하라고요.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퇴계 이 황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수선화의 속명인 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인 나르키소스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나르키소스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소년으로 남녀 모두 그를 사랑했으나 그는 모두를 싫어했지요.
나르키소스에게 거부당한 어느 요정이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괴로움을 나르키소스도
겪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답니다.
이때 요정의 소원을 듣게 된 아프로디테가 요정의 소원을 들어주었어요.
이렇게 하여 나르키소스는 맑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벌을 받게 되지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모습이 흐트러져 버리고, 너무 멀리 물러나면 자신의 모습은
이내 사라져 버렸답니다.
자신의 모습이 비친 물가에서 떠나지 못한 나르키소스는 결국 물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여러 요정과 신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나르키소스가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아름다운
수선화로 만들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모양을 하고 있는 수선화를 보면 나르키소스가 호수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나요? '자기애', '자기 주의', '자만', '자아도취'라고 하는 수선화의 꽃말 또한 이 신화 속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랑대에서 바라본 마징거등대와 월드컵등대
오랑대
오랑대 공원은 기장읍 연화리 서암 마을과 시랑리 동암 마을 경계 지점에 있는 오랑대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오랑대는 ‘미랑대’라고도 부르는데, 지명과 관련해 정확히 알려진 설화는 없으나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시랑 벼슬을 한 다섯 명의 선비들이 이곳에 왔다가 술을 마시고 즐겼다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도 이곳에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오랑대라고 불렀다는 설 등이 전하고 있다.
오랑대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어 사진 동호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공원은 24시간 이용 가능하며, 해동용궁사에서 시랑대로 가는 암반 산책로를 따라가면 오랑대와 연결된다.
용왕단
오랑대에서 바라본 대변항의 모습
사방오리나무?
거북바위
힐튼호텔과 아난티코브
거북바위 부근의 바위는 파도와 바닷물의 씻김으로 벌집이 되어 있다
묘관음사의 동백
차나무과 동백나무속 상록교목이다. 겨울에 꽃을 피워 동백(冬柏)이라 불린다.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 동북아시아 등지에 자생한다. 꽃은 붉은색이지만, 흰색이나 분홍색 꽃도 있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 동백나무, 일 년생 가지와 잎 뒷면의 맥상 및 씨방에 털이 있는 것은 애기동백나무라 한다.
꽃이 크고 아름다워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며 많은 품종이 관상용으로 개량됐다.
개량한 원예품종은 꽃색과 모양, 크기 등이 매우 다양하다.
묘관음사의 백목련
중국 원산의 낙엽성 큰 키나무로 높이 15m에 이른다.
줄기껍질은 회백색이며, 어린 가지와 겨울눈에 눌린 털이 많다. 잎자루는 길이 1-2cm이다.
잎은 넓은 도란형으로 길이 8-15cm, 폭 4-11cm, 양면에 털이 있으나 차츰 없어진다.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종 모양, 흰색을 띤다.
꽃받침과 꽃잎은 서로 구분되지 않으며, 좁은 도란형으로 길이 7-8cm, 폭 3-4cm이고 퍼져서
벌어지지 않는다. 수술은 많으며, 나선상으로 배열한다.
조경용으로 심는 것은 대부분 백목련이고 목련(M. kobus DC.)은 드물다.
꽃봉오리는 약재로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