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년에 이어 이곳 김수로왕릉의 능소화를 만나러 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능소화는 피고 있지만 금년에는 담벼락에 늘어진 가지를 잘라내어
담장을 넘어 늘어진 능소화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여름이 깊어 갈수록 주변은 온통 초록의 바다가 된다.
그러나 늘 푸름도 너무 오래가면 금세 신물이 나서 화사한 봄꽃의 색깔이 그리워진다.
이럴 즈음, 꽃이 귀한 여름날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능소화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고즈넉한 옛 시골 돌담은 물론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 담, 붉은 벽돌담까지 담장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담쟁이덩굴처럼 빨판이 나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아름다운 꽃 세상을 연출한다.
가장자리가 톱날처럼 생긴 여러 개의 잎이 한 잎자루에 달려 있는 겹잎이고, 회갈색의 줄기가 길게는
10여 미터 이상씩 꿈틀꿈틀 담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이사이에 아기 나팔모양의 꽃이 얼굴을 내민다.
꽃은 그냥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이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 든다.
다섯 개의 꽃잎이 얕게 갈라져 있어서 정면에서 보면 작은 나팔꽃 같다.
옆에서 보면 깔때기 모양의 기다란 꽃통의 끝에 꽃잎이 붙어 있어서 짧은 트럼펫이 연상된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꽃은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핀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거의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이어간다.우리 나무 세계에서
흔히 능소화 꽃가루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심지어 실명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식물의 꽃가루는 대체로 0.01~0.05밀리미터 크기의 원형이나 타원형이며, 종류마다 형태가 다르고
표면에 돌기가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나 능소화 꽃가루는 크기 0.02~0.03밀리미터 정도의
타원형으로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표면이 그물모양일뿐 1) 갈고리 같은 흉기는 없다.
사실 돌기가 있는 코스모스 등의 꽃가루도 크기가 너무 작아 일부러 눈에 넣고 비비지 않는 다음에야
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꽃은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핀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거의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이어간다
능소화는 이름도 가지가지. 예전 양반집에서만 키울 수 있다 하여 양반꽃이라 불렀다.
평민이 심으면 곤장을 맞았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고, 정말 귀하게 여겼다는 뜻일 게다.
황금색 등나무라 하여 금등화(金藤花)라는 이름도 가졌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모자에 종이꽃을 꽂아 축하하였는데, 그 꽃 모양이 능소화였다
하여 어사화(御賜花)가 되었다.
비문에 가락국수로왕릉이라 새겨져 있다
수로왕릉(首露王陵)은 사적 제73호로,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 씨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무덤의 높이는 5m의 원형 봉토무덤인데, 주위 18,000여 평이 왕릉공원으로 되어 있다.
왕릉 구역 안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신도비각·
홍살문·숭화문 등의 건물들과 신도비·문무인석·마양호석·공적비 등의 석조물들이 있다.
고려 문종대까지는 비교적 능의 보존상태가 좋았으나, 조선 초기에는 많이 황폐했던 듯하다.
『세종실록』을 보면,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에 대해 무덤을 중심으로 사방 30보에 보호구역을 표시하기
위한 돌을 세우고, 다시 세종 28년(1446)에는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보호구역을 넓힌 것으로 나타난다.
무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선조 13년(1580) 수로왕의 후손인 허수가 수로왕비릉과 더불어
크게 정비작업을 마친 후이다.
『지봉유설(芝峰類洩)』기록에 따른다면 능의 구조는 큰 돌방무덤(석실묘)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에 의해 능이 도굴을 당했는데 당시에 왕이 죽으면 주위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을
같이 묻는 순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능소화는 원래 남부지방에서 주로 심던 나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꽃이었다고 한다.
《화하 만필(花下漫筆)》에는
하지만 옛날보다 날씨가 훨씬 따뜻해진 탓에 지금은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능소화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소화라는 궁녀는 왕의 총애를 받고 궁궐에 한 처소가 마련되어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궁녀들 사이 시기에 휩싸이고, 왕의 발길도 끊어졌다.
소화는 임금을 향한 그리움에 혹여 담장 너머 발걸음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고개를 빼고 기다렸으나 임금은 오지 않았다
그리움이 지나처 상사병으로 소화는 시름시름 앓다 그만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가 세상을 뜬 뒤, 주변 담장에는 진한 주황색 꽃들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죽은 소화의 넋이 피어났다 하여 능소화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연못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수가 품더니 내가 접근할 때는 조용해졌다
연목에는 수련도 피고 있으나 붉은색 한 가지 꽃만 보인다
돌아오며 대동 수안마을(소등껄 수국정원)에 들렀다
이곳은 매년 수국정원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부산은 태종대나 법륭사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일찍 핀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블루베리
블루베리 농장에서 수확한 것을 팔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사상자
당귀가 아닐까 했는데 같이 간 분이 사상자라고 한다
복분자
합리세이
가장 수국이 많은 곳이다 관광객들 인증사진을 찍느라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어
초상권은 지나가는 개에게 주어버렸다 ㅎㅎ
포토존
소등껄이라는 것은 이 마을의 옛 이름인 것 같다
목수국
별수국
금년까지 3번을 와 보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월말쯤 태종사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Rossington-Collins Band / Tashauna
'경남.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해 보타닉 뮤지엄과 삼락생태공원 (24) | 2024.07.22 |
---|---|
맥도 연꽃과 함안 연꽃테마파크 (36) | 2024.07.17 |
울산 대왕암공원 (0) | 2024.05.29 |
나도 수정초 (26) | 2024.05.07 |
생초 목아 전수 교육관 (0) | 2024.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