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1일 목요일이다
아침운동 끝나고 집에 오니 9시 30분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으니 문득 범어서의
가을이 어떻게 진행이 되어 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부산은 아직 이렇다 할 단풍이 보이지는 않지만 한번 나가보자 생각에
이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다(11/21)
가장 먼져 생각나는 곳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곳 범어사 본당 뒤쪽으로 가는 계단이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아직 반반이다 내려가 위에 모습을 담아본다
아래서 위를 바라보며 담은 풍경이다
햇볕에 반사되어 붉은 빛이 완연하다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언제나 감을 따지 않고 있으니 고스란히 새들의 먹이가 된다
계단 옆에 핀 국화도 담으며 아래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내려간다
토종 단풍나무는 이렇게 붉은빛을 띠며 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후 노승 묘 전스님께서 옮겨 심은 것으로 약 580년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무에 은행이 열지 않아 3백 년 전에 절에서 맞은편에 수나무 한그루를 심어줘
그 후부터 한해 약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90년 땅벌을
쫓기 위해 연기를 피운다는 것이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아직도 불에 탄 자국이 역력하다
이나무는 범어서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며 소원성취를 비는 수호목으로서
범어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장수목이며 사랑과 관심으로 보호해야 할 보호수다
단풍이 곱게 물들지는 않고 있다
숫 은행나무는 위에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심었다고 한다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는 색도 곱게 물들어 있다
조계문
보물 제1461호
범어사의 정식 출입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하고,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는
'삼해탈문'이라고도 불린다. 돌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며 맞배지붕에 처마는 겹처마,
정면 3칸에 공포는 다포 양식으로 되어 있어 옛 목조 건물의 공법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광해군 6년(1614년)에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숙종 44년(1718년)에 명흡 대사가 돌기둥을 바꾸고,
정조 5년(1871년)에 백암 선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조계문이란 본래의 성품을 알아 깨달음에 이르는
문이란 뜻이다
선찰대본산이란 범어사가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하는 '참선수행'으로 많은 선승을
배출한 사찰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조계문 양 옆에는 이러한 몇백 년은 됨직한 전나무가 있다
조계문 쪽에서 바라본 숫은행나무와 또 다른 은행나무
천왕문
범어사 천왕문은 가람의 삼문 중 두 번째 문으로 사천왕상이 모셔진 건물이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들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동서남북 방향에서 불교와
불법을 수호하고, 착한 이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한 이에게는 재앙을 내리는 호법선신의 역할을 한다.
이 문은 2010년 12월 방화로 소실된 것을 2012년 3월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불이문
범어사 불이문은 가람의 삼문 중 세 번째 문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불이란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 선과 악 등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관점을 뜻한다.
숙종 20년(1694년) 승려 자수가 세웠으며, 가운데 어칸 좌우 기둥에는 산사에 들어서는 마음
자세를 지적한 동산대종사가 쓴 주련이 걸려 있다.
보제루
범어사 보제루의 보제는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이 건물은 법요식을 비롯한 크고 중요한 법회가
행해지는 건물입니다.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의 삼문을 거쳐 7m 높이의 석계를 올라 도달하는 중간 마당의
첫 번째 건물입니다. 보제루는 숙종 25년(1699년) 승려 자수의 주관으로 창건되었고, 몇 번 중창되었다.
처음 창건 시에는 누각형태로 벽체가 없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벽체를 만들었고 현재의 건물은 2012년에
전통 법식에 따라 대대적으로 중창 불사한 것이다.
보제루는 각종 예법과 법요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사용되며, 보살계 등의 수계 행사가 거행되어 '금강계단'으로도
불리며, 건물 뒤쪽에는 '금강계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대웅전
범어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의 건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선조 35년(1602년)에
법당이란 이름으로 관선사가 재건하였으나 곧 불타 광해군 6년(1614년)에 묘전화상이 중건하였고,
숙종 6년에 조헌스님 등이 대웅전의 면모를 갖추며 중창하였다.
다포계 전각은 화려한 팔작지붕이 보편적인데, 맞배지붕 형식에 양옆에는 풍판을 달아서 소박하고
아담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좌협시)에 미륵보살,
왼쪽(우협시)에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다. 조선 현종 2년(1661년)에 수두, 희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조성하였다.
뒤쪽의 후불탱화는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다.
삼층석탑
범어사 삼층석탑은 대웅전 아래 마당에 약간 오른쪽으로 비껴 조성되어 있다.
신라 흥덕왕 때 조성된 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석탑으로 높이가 4m이며, 커다란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문화재 약탈을 위해 석탑을 해체·보수를 하면서 최하층 기단부를 한 층 더 올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고, 그 바람에 기단부가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석등
석등은 불전 앞마당에 등불을 안치하는 공양구로서 불교에서 등불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지혜를
상징하며, 이를 밝히는 것은 공양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 일찍부터 석등을 제작하였다.
이 석등은 2.6m의 높이로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강계단과 종루
종루는 원래 종을 걸어 두는 누각이다.
부산 범어사 종루에는 불전 사물 중 범고, 운 판, 목어 등 3개만 있고, 범종은 원응당 앞 또 다른 종루에
비치되어 있다. 범종은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새벽 4시에 33번, 저녁 6시에 28번을 친다.
법고는 축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예불시간에 마음 심(心) 자를 그리며 두드린다.
운 판은 구름 모양의 청동판으로 조류나 허공에 떠도는 영혼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구름이 비를 머금고 있으므로 화재를 막고자 부엌에 걸어 두고 치기도 했다고 한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고 그 속을 비워 작은 나무 채로 두드려 어류를 제도한다.
또한 수행자에게는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깨어서 수도 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비로전과 미륵전
산영각
범어사 팔상 독성 나한전
부산 범어사 팔상 독성 나한전은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세 불전을 연이어 하나의 건물 속에 꾸민
범어사만의 독특한 불전이다.
원래 팔상전과 나한전은 광해군 6년(1614년) 묘전화상이 별도 건물로 지었으나 광무 10년(1906년)
학암대사가 두 불전 사이에 독성전을 꾸며서 세 불전이 한 건물에 포함되게 되었다.
정면 7칸, 측면 1칸의 익공형 맞배지붕 건물이다.
범어사 암자가 있는 골에는 일부는 단풍이 물들고 있는데 대부분 포른 상태의 나무들이 많이 있다
전각이 있는 부근에는 간혹 이렇게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고 있는 모습도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아직 3~40% 정도 물들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범어사를 돌아보고 상마마을로 넘어가 본다
범어서 템플스테이 부근에는 이렇게 구골목서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애기똥풀
광대나물
상마마을도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있는데 다른 나무들은 아직이다
감국
상마마을에는 집집마다 감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어느 집은 사다리를 놓고 감을 따고 있는 집도 보이는데 위험천만이다
청화쑥부쟁이도 보이고
어느 집 앞에는 느티나무와 감나무가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다
마을 집집마다 국화들이 심심찮게 피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섬개쑥부쟁이 같이 보이는데 맞는지?
휀스에 걸려있는 덩굴장미
꿩의비름
상마마을에서 나오니 버스가 저만치 가고 있어 못 타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것
같아 걸어 내려오는데 어느 집 텃밭에 봉선화가 아직 꽃을 피우고 있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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