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 야외박물관을 돌아보고 이곳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왔다
박물관에 들어가면서 만난 까마중
이집트 국립박물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19세기에 세웠으며 이집트 고대 유물 소장품에는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것들도 있다.
1858년 불라크에 세워져 기자로 옮겼다가 1897~190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박물관은 이집트
문명의 전역사, 특히 파라오 시대와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대 유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박물관에 있는 10만 점이 넘는 유물 중에는 투탕카멘의 머리를 덮고 있던 순금제 가면을 비롯, 파라오의
무덤에서 출토된 약 1,700점의 유물이 있다.
그밖에 각종 부조·석관·파피루스, 장례용 예술품 및 헤테페레스 여왕의 무덤을 포함한 여러 무덤의 내용물,
보석, 모든 종류의 장신구, 기타 유물이 있다.
대형 전신상으로는 가장 빠른 시기에 속하는 헤테페레스 여왕의 대형 조각 1점과 흑색 화강암으로 만든
네페르티티 왕의 조각 1점도 소장되어 있다.
또한 이집트 박물관은 아멘호테프 2세가 텐센 신으로 묘사되어 있는 그의 조각, 힛트솁수트 여왕의
화강암 상 2점과 카르나크에서 발견된 엄청난 크기의 아멘호테프 4세의 상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뒤에 아멘호프3세 부부의 동상과 로제스타석과 여러 조형물들이 보인다
이집트 문자 해석의 기초가 된 비석. 길이 114㎝, 폭 72㎝의 검은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
1799년 로제타 마을 부근에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영국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비문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BC 205~180)의 은혜를 요약하고 있으며, 그의 재위 9년째에 써졌다.
이집트어와 그리스어의 2가지 언어와 상형문자·민용문자·그리스 알파벳의 3가지 필기방식으로 씌어져
있어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실마리가 되었다. 토머스 영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름과 상형문자의 부호
읽는 방법을 알아냈으며 샹폴리옹은 각 이집트 상형문자 부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전체 목록을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의 업적은 모든 이집트 상형문자 문서 해석의 기초가 되었다.
로제타 돌은 기원전 196년에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되어 멤피스에 세워진 화강섬록암 석비이다.
고대 이집트어로 된 법령이 위에서부터 신성문자,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의 세 가지 문자로 번역되어
쓰여 있는 화강암이다. 이 돌에 쓰인 그리스어를 기반으로 1822년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과 토머스 영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였다.
1799년 7월, 이집트-시리아 원정 당시 프랑스군의 장교였던 피에르 프랑수아 부샤르에 의해 발견되었다.
로제타석은 고대 이집트어를 다른 언어와 병기한 기록 중 최초로 발견된 자료로, 미번역 문자이던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곧바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로제타석의 탁본은 곧 유럽의
박물관과 학자들 사이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1801년 영국이 오스만 제국과 함께 프랑스군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물리쳤을 때 로제타석은 런던으로 운반되었다.
이후 1802년부터 대영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나르메르 팔레트
이것은 이집트 밀러의 가장 초기표현 중 하나이다 나르메르 왕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두 땅을 통일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팔레트의 양쪽에 상형문자로 쓰여 있다 왕은 붉은 왕관을 쓰고 두줄로 잘린
시체를 향해 행진한다 가운데는 인간이 조종하는 두 마리의 신화 속 짐승이 둘렀고 있다
아래쪽에서 나르메르는 벽으로 둘러 사인 울타리를 부수고 인물을 짓밟는 야생황소로 표현된다
후기 선왕조 시대부터 왕은 그의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황소나 사자로 표현하였다
팔레트는 아마도 사원의식에 사용되거나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진 의식용 물건이었을 것이다
이쪽에서 나르메르는 상이집트의 하얀 왕관을 쓰고 다른 쪽에서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있다
이 둘은 함께 두 딸의 통일을 상징한다
나르메르는 인간 머리 위에 있는 파피루스의 땅표시로 식별되는 델타의 적을 공격한다
이 표시의 꼭대기에는 왕과 관련된 매의 신 호루스가 있다
작은 피라미드는 피라미드 꼭대기를 장식했던 벤벤스톤이다
로제스타석(진품은 대영박물관에서 보았다)과 주위를 사진을 담으며 일행을 따라갔는데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찾을 길이 없어 박물관 두 바퀴를 돌고서야 일행을 만날 수가 있었다
아멘호프 3세와 그의 티예왕비
7미터에 달하는 이 거상은 아멘호텝 3세
장제전에 있던 것으로 발굴 당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있던
것을 복원했다. 왕좌에 앉은 아멘호텝 3세와 왕비 타이, 그리고 아래쪽에
그의 세 딸이 다리 사이에 있다. 파라오만 크게 묘사되는 관행을 깨고 왕비가 같은
크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당시 타이 왕비의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왕비 타이는 왕족의 피가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왕비중 하나로 평가받는 인물로 신전을 갖고 있는 왕비였다. (신전을 갖고 있던 다른
왕비는 람세스 2세의 부인인 네페르타리로 아부심벨에 그녀를 위한
소신전이 있다.) 타이의 머리 위에는 하토르를 상징하는
원반과 암소뿔이라 한다.
위의 왼쪽은 고분에서 발견된 석관과 목관등이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몇 겹으로 된 관을 벗겨야만 미라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이 서있는 중간은 박제'미라'를 만들 때 쓰던 석제 수술대이다.
생김새는 꼭 우리나라의 벼루돌 같다. 크기만 다를 뿐이다
단단한 검은색 섬록암으로 만들어진 4,500년 전의 이 걸작품은 프랑스 고고학자 오귀스트 페르디난도
마리에트에 의해 기자에 있는 그의 피라미드에 속한 계곡 신전(밸리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신전에는 23개의 파라오 상이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9개의 상만이 알려져 있다.
양팔은 주름 잡힌 짧은 kilt 위에 올려져 있고, 그중 한 손으로는 옷을 살짝 잡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표현방식이다. 머리에는 파라오의 머리 장식인(두건) 가슴까지 내려오는 Nemes를
쓰고 있다. 이마에는 성스러운 벰 우라에우스가 보이고, 머리 뒤쪽에선 왕의 수호자인 매 모양의
신 호루스가 날개를 펴고 왕을 보호하고 있다. 카프레 왕이 앉아 있는 왕좌의 다리는 사자 모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위쪽엔 이시스를 상징하는 상형문자가 있다. 왕좌 양쪽으로는 상하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sema-tawy 문양 (상 이집트를 상징하는 연꽃과 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가 결합된 문양)
이 새겨져 있다.
계곡 신전과 장례 사원 유적지에는 이것 말고도 다수의 멘카우레 상이 발견되었다.
서기관
석회암을 조각하며 칠을 입힌 작품.
서기관이라는 직업은 대단히 중요하고 고귀한 세습의 직업이었다.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조각은 행정고위 관료 경우에만 사용
멘카우레 삼신상
중앙은 멘카우레 파라오 상이집트의 흰색 왕관을 쓰고 있으며 짧은 주름의 센디트칼트를 착용
오른쪽은 하토르 여신 태양원반과 쇠뿔로 구성된 특유의 왕관을 착용 왼쪽은 상이집트의
신격화된 수호신
파라오와 왼쪽은 호루스신 우측은 아누비스신. 신과 파라오를 동격으로 여긴 조각상이다
하토루여신을 지키는 암소상
쿠푸왕 조각상
이집트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를 만든 왕이다 다른 왕들은 조각상들이 거대한데
쿠푸왕은 아주 작은 조각상만 나왔다 큰 조각상들은 도굴로 추정
하트셉수트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여왕으로, 기원전 1479년부터 1458년까지 약 2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그녀는 파라오의 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남성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하여
정통성과 권위를 강조했다.
그녀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여성 파라오 중 하나로 평가되며,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그시대 여왕은 인정하지 않아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붙여 남장을 하였다
하트셉수트 왕의 스핑크스
나무로 만든 투탕카맨왕의 실물 크기 조각상
파노포스함
죽은 왕의 장기를 넣어 보관하는 함
왕의 유해가 마르기 전에 내장을 추출하는 것은 미라 제작의 첫 단계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왕이 사후에도 삶을 계속 영위하기 위해서는 내장을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왕의 내장을 네 개의 단지에 넣어 무덤 속에 보관했다 구함
아누비스 상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중요한 장례용품 검은 자칼 형태의 아누비스 신상은
나무로 제작 석고와 타르로 도포됐다 귀안 쪽 목 주변 밴드 눈 테두리와 눈썹은 금박으로
장식 눈은 방해석과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다 발톱은 은으로 제작 아누비스는 미라
제작과 무덤을 수호하는 신으로 투탕카멘의 영혼을 보호하고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다
투탕카멘 왕의 황금의자
이왕좌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가장 아름다운 유물이다
금박으로 전체가 도금되어 있으며 유리페이스트와 준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팔걸이는 사자 머리로 장식되어 있으며 다리는 사자 발톱으로 장식되어 있다
날개 달린 우라에우스(신성한 코브라)가 왕의 카르투슈를 보호하고 있다
등받이는 아마르나 양식으로 투탕카멘과 왕비 안케세나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왕비가 왕의 어깨에 향유를 바르는 친밀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위에는 태양신
아텐이 그들에게 빛을 비추고 있다
이시스 여신의 날개 끝에 투탕카멘의 카르투슈들이 보호를 받고 있다.
왼쪽은 네브카페루라..라고 쓰여있고 - 신으로 나타난 라.
오른쪽은.... 엇 투탕카멘이 아니고 투트-앙크-아텐이다!!
투탕카멘도 처음에는 아케나텐처럼 아텐신을 따른다고 하여
투탕커튼이었다가 여러 세력과 기존 아몬 사제들의 압박에 못 이겨
다시 전통신으로 회귀하며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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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사냥하는 투탕카멘과 옆에서 지켜보는 안케세나멘
뚜껑에는 왕에게 수줍게 연꽃을 주며 사랑을 얘기하는 왕비
연꽃을 들고 태양을 숭배하는 아케나톤과 이시스의 왕관을 쓴 네페르티, 그리고 두 딸들. 둘째가 안케세나멘
이러한 관들이 수도 없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여자관
남자관
육중한 나무관
유야 투야의 마스크
Yuya와 Thuya는 18 왕조 중반에 살았던 고대 이집트 귀족이었다.
이 부부는 Akhmim 출신이었고 지역 신인 Min의 숭배와 관련된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왕족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딸 Tiye는 파라오 Amenhotep III의 아내가 되었다.
그들은 왕들의 계곡에 있는 개인 스타일의 무덤에 묻혔다
유야의 미라
석관
정교한 상형문자들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멘 투호테프 2세. 아예 까만 석상이라 꽤 신기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쓰고 있는 빨간 왕관은 세드 축제(파라오가 즉위한 지
30년이 되었을 때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축하하고자 했던 축제)의 복장이다.
투탕카멘을 발견한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유물이라고 한다.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가면.
위 사진은 전시되어 있는 '투탕카멘'왕의 '미라' 얼굴 부분에 싸웠던 황금마스크이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고대 왕(파라오)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무려 18세
(19세라고도 한다.)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소년 왕이다.
투탕카멘은 이집트의 전설적인 여왕 네페르티티의 의붓아들로
기원전 1361년경 왕이 됐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18대 왕조의 왕으로
9세에 즉위하여 18세에 죽은 무명의 왕이다. 황금 마스크에 조각된 앳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묘는 왕묘로서는 가장 작은 규모였으나 다른 왕묘들이 철저하게 도굴된 것과는
달리 거의 원형 그대로 발굴돼 고고학상 불후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투탕카멘의 관
네페르티티(Nefertiti:이집트 왕비)
BC 14세기에 활동한 이집트 왕 아크나톤(BC 1353~36 재위)의
왕비로서 남편의 종교 혁명을 도왔으며, 왕이 구체제 옹호자들과 타협한 뒤에도
태양신 아톤을 숭배하는 새 종교를 신봉했다고 한다. 텔 엘아마르나
(옛 이름은 아케타톤:아크나톤 왕이 새 수도로 정했던 중이집트에 있는 도시)에서 그녀의
석회석 채색 흉상이 발견되어 유명해졌다.
출신은 분명하지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미탄니
출신의 아시아계 왕녀였다고 추정한다. 남편을 따라 새로운 신을 충실히 섬겼으며
딸 6명을 낳았고 그중 2명은 후에 이집트 왕비가 되었다. 새 수도에서 발견된 부조에는 그녀가
남편과 함께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아크나톤이 즉위한 지 12년이 되던 때에 왕의 총애를 잃고 왕궁에서 물러났다는 설도 있고, 이보다 가능성은 적지만 그즈음에 죽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녀의
유물들이 아마르나 북부 왕궁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왕비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머물렀다는 해석도 있다.
라호텝왕자와 노프레트공주
라호텝은 스네프루 파라오의 아들이자 쿠푸의 형제로 추정되며 노프레트는 그의 아내이다
이 석화암 조각상은 눈동자 표현과 뛰어난 샛채보존 상태로 유명하고 고대 이집트 귀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호대도 없고 질서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데 차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운전을 아주 잘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같으면 충돌사고가 빈번히 일어날 것 같다
Endless Love - Lionel Richie ft. Diana 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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