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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카이로 계단식 피라미드(사카라)

아침에 식사를 한 후 8시에 숙소를 떠나 사카라로 간다

아직 주위는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주위는 어둠이다

사카라

카이로 남서쪽으로 24㎞ 지점, 지금의 아랍 마을 사카라의 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북쪽의 아부 시류에서

부터 남쪽의 다수르까지 8㎞ 정도 뻗어 있는 사막 고원 가장자리를 따라 퍼져 있다.

가장 오래된 유적은 이 고분터의 북쪽 끝에 있는 고대의 무덤지역에 있는 것들인데, 이곳에서 이집트 역사의

아주 초기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진흙벽돌무덤(마스타바)들이 발견되었다. 분묘 안에서 발견된 저장

단지에는 제1 왕조 왕들의 이름이 씌어 있지만, 고대 왕들은 상이집트의 아비도스에 묻혔기 때문에 이 무덤들은

당시 고위 관리들의 것으로 보인다.

사카라 지역은 고왕국 시대 공동묘지라 할 수 있다.

당시 수도였던 맴피스 바로 옆에 있어 왕과 귀족들의 무덤인 피라미드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다.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열주랑을 지나야 한다.

내부에는 파피루스 줄기를 본떠 만든 20개의 기둥이 양쪽으로 이어진다.

위에 기둥이 파피루스 줄기를 본떠서 만들었다 하여 참고로 파피루스 실물을 올려봅니다

계단식 피라미드(현지 설명문)

제3왕조(기원전 2700년경) 첫 번째 왕인 조세르가 건설했다 

계단피라미드는 역사상 최초의 피라미드이자 최초 대형석조건물이다

한꺼번에 다지어진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지어졌다 

한 변의 길이가 약 63m 높이가 약 8.5m인 정사각형 마스타바가 먼저 지어졌고

그다음 각 변에 3m씩 동쪽에 9m씩 더 지어서 건물을 조세르 가문의 11개 샤프트와 연결했다

나중에 마스타바는 서로 위에 지어진 4개의 마스타바를 더해 확장한 끝에 현재 형태인 높이

60m인 마스타바가 되었다 피라미드의 바닥은 약 121mX109m이다

매장실은 피라미드중앙의 갱도 바닥에 있으며 깊이는 28m이다

피라미드 아래에는 최대 40m 깊이의 여러 층이 있으며 3만 개가 넘는 단단한 돌로 만든 항아리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화강암 설화석고 편암으로 만들어졌다 피라미드 바닥에는

Heb-sed 축제를 기념하는 조세르왕의 비문과 독특한 파란색과 녹색 세라믹 타일도 찾을 수 있다

계단피라미드는 조세르왕이 부활한 후 태양신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올라간 거대한 계단으로

여겨진다

계단피라미드

고대 무덤지역의 남쪽에는 제3왕조(BC 2650경~2575경)의 2번째 왕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건축물이 있다.

조세르의 건축가 임호테프는 왕을 위하여 6개의 계단으로 된 피라미드 모양의 새로운 무덤을 고안했다.

맨 밑바닥에 진흙벽돌·나무·갈대로 만들었던 본래의 건축 구조를 바꾸어 처음으로 양질의 석회석으로 거대한

현관과 마당을 만들었다. 제4왕조의 셉세스카프는 관 모양의 무덤인 마스타바트 알파라운을 건축했고,

제5왕조의 여러 왕들도 사카라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제5왕조의 마지막 왕인 우나스 때 처음으로

자신의 피라미드 방 벽에 사후 보호와 내세의 삶에 대한 보장을 위해 피라미드 텍스트를 새겼으며, 지하

밀실에 피라미드 텍스트를 새기는 이러한 관행은 제6왕조 때에도 계속되었다. 테디를 제외한 제6왕조의

왕들은 우나스의 피라미드 남쪽에 자신들의 피라미드를 세웠는데, 남쪽 끝에 있는 것은 제13왕조(

BC 1756경~1630경)의 것이다.

왕들의 피라미드 부근에는 고왕국시대(BC 2575경~2130경) 귀족들의 분묘가 있고 무덤 안에는 그들의

일상생활이 묘사된 벽화가 새겨져 있다. 중왕국시대(BC 1938~1600경)에는 지방 무덤이 유행하여

사카라에는 상대적으로 무덤을 적게 지었다. 그러나 신왕국시대(BC 1539~1075)에 들어와서 멤피스가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가 됨에 따라 그때부터 수많은 무덤들이 사카라에 만들어졌으며, 그중에는

BC 1975년에 재발견한, 아름답게 장식한 호렘헤브 장군(후에는 파라오)의 무덤도 있다.

또 그때부터 이집트인들은 사카라에 큰 지하 회랑을 지어 성우(聖牛)를 묻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세 라페움이다. 사카라에 지어진 무덤들 중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웅장한 무덤들은 사이스 왕조 시대와

페르시아 시대 여러 통치자들의 것이다. 사카라 북서쪽 부분에 있는 제3왕조와 제4왕조의 분묘터 아래에는

지하 통로가 있으며, 그 안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아이비스(ibis:따오기류) 미라가 수천 개 들어 있다.

이 피라미드를 지은 건축가는 임호텝.

조세르 왕의 재상이자 이집트 최초로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든 역사상 최초의 건축가이다.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 주변으로는 후대 왕과 귀족들의 무덤들도 많다.

오랜 세월이 흐름에 무덤이 모래언덕처럼 보였다.

카이로는 아랍인들이 들어와서 수도로 삼은 곳이다. 과거이름은 Heliopolis (그리스식).
고대에는 멤피스가 수도였다. 고왕국시대,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었다다.

사카라는 멤피스의 Necropolis 였다.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 은

당시(중~신왕국)의 수도 테베(현재의 룩소르)의 Necropolis 였다.

이집트인들은 지역을 동서로 나누어, 해뜨는 동쪽은 생전의 업무공간,

해지는 서쪽은 사후의 공간으로 정해놓았답니다.

 

그래서 궁전이나 신전 등은 동쪽에, 무덤은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변천'은 계단식 피라미드는 '최초의 피라미드' 로서,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이후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100 년이 지나자

너무나도 완벽한 대 피라미드가 나타나게 된것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당시 재상이었던 임호텝이 맡아 지었는데, 형태도 과거의 무덤과 비할 수 없이 크고

독특했지만 재료에 있어서도 이때 비로소 돌을 써서 지었다고 한다.

흙벽돌로 지은 궁전 등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으나, 신전이나 무덤 등 석조건축물 등은 그대로 남아

수천 년 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피라미드는 '최초' 부터 이렇게 거대합니다. 높이 60 m 라니 아파트 20 층이 넘겠지요.

관을 넣은 현실과 통로를 빼고 전체를 돌로 빈틈없이 쌓았습니다.

총 무게 100만 톤. 밑변은 140 m x 128 m.B.C.2700 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한다니,

약 5,000 년 전의 건물이다.


공중에서 본 계단식 피라미드와 그 주변. 파라오의 무덤은 본건물인 피라미드와 그를 둘러싼

신전, 장례식장 등 부속건물을 포함한 거대 복합단지(pyramid complex)인데, 조세르왕의

이 무덤은 외부경계가 544 m x 277 m 에 달하였다고 gks다.

사카라는 제1 왕조시대부터 묘지로 사용되었던 길이 6km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으로

카이로 남쪽 1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적은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제3 왕조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다.

높이 60m에 달하는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모두 여섯 단으로 되어있고

지하에는 복잡한 미로와 매장실 등이 산재해 있다.

 

사카라 계단 피라미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고대 이집트 건축의 혁신과

창의성을 대표한다

사카라 계단 피라미드는 단순히 파라오의 무덤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 건축의 기초를 다지고, 이후

건축물의 발전을 이끈 혁신적 작품입니다.

이 건축물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기술력과 종교적 신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그들의 지혜와

창의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최초의 석조 건축물이자, 이후 피라미드 건축의 기초를 마련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이 피라미드는 멤피스 인근의 사카라 지역에 위치하며, 고대 이집트의 장례 건축물로 시작된 마스타바

(직사각형의 평평한 무덤)를 발전시켜 계단 형태로 설계되었다.

사카라 피라미드가 전하는 건축의 혁신석조 건축의 시작:

사카라 피라미드는 최초로 석재를 사용한 대규모 건축물로, 건축 기술의

혁신을 보여준다.

피라미드 건축의 발전: 계단 형태의 설계는 이후 기하학적 완벽함을 추구한

기자 대피라미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과 종교의 결합: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징적 건축물로 여겨졌다.

묘지로 가는 지하 통로인 듯

사카라 계단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을 넘어, 파라오의 권위와 영원한 생명을 표현하는 상징적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생과 부활을 중시했던 종교적

신념을 잘 드러낸다.

David London - Now and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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