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오벨리스크(unfinished obelisk)는 이집트 아스완의 채석지대 북부에 자리한 거대한 옛 오벨리스크를
말한다. 말 그대로 세워지지 못하고 미완성된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하트셉수트 (기원전 1508~1458년) 여왕의 명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라테라노 오벨리스크 (원래는 이집트 카르나크에 있다가 로마의 라테라노 궁전으로 옮겨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해당되는 오벨리스크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서
그간 세워진 제일 큰 오벨리스크보다도 3분의 1 정도가 더 컸다.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대략 42m, 무게는 1200여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아프리카 코끼리 200마리의 무게와
맞먹는다
오벨리스크의 제작자들은 기반암에서 바로 오벨리스크를 깎아 옮기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화강암 부분에
균열이 가는 바람에 전체 계획이 취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벨리스크의 바닥 부분은 여전히 기반암과 이어져 있는 상태이다.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의
석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경험을 제공하며 인부들의 도구로 생긴 흔적과 황토색 선으로
작업 부분을 표시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2005년에는 미완성 오벨리스크 부근의 아스완 채석장에서 작업하다 말고 버려진 또 다른 오벨리스크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여기서 돌을 깎아낸 흔적과 유적들이 여럿 발견됐는데, 이에 따라 이집트의 유명한 오벨리스크들은
거의 다 여기서 제작된 것이 아니냐는 추정도 이뤄지고 있다. 아스완 채석장과 미완성 유적들은 야외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집트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고고학 유적지로 보호받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화강암은 대부분 이곳에서 채석해 고대 이집트 전역으로 이동되었는데
기자지구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도 이곳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세계변방에 있던 그리스가 중심으로 등장할 즈음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르토스가
이뾰쪽하게 생긴 것을 보고 오벨리스크라 처음 언급했다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오벨리스크는 침 못 뾰쪽한 기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큰 돌을 잘라내어 어떻게 기자지구 같은 곳으로 옮겼을까 궁금증이 발동하는데
아마도 나일강 물이 범람하면 배로 이동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한다고 함
완성이 되었더라면 가장 큰 오벨리스크로 의미가 있어 지중해를 장악했던 로마제국이 이탈리아나
튀르키예로 가져 갓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균열이 생기는 바람에 작업이 중단 흙속에 묻혀 있다가
20세기 초 발견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현존하는 오벨리스크는 총 25개인데 그중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포함한 11개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있고 나머지 14개는 이탈리아 8개 프랑스 1개 영국 2개 미국 1개 튀르키예 1개
그리고 바티칸에 1개가 있다
콩코드광장에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과정(1836년 콩코드광장)
선물로 받은 오벨리스크를 프랑스까지 옮기는 데에 약 3년간 전용선박과 운반기계를 제작해 기계를 이용
오벨리스크를 수평으로 눕혔다 이때 약 200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약 400m 떨어진 선박까지 이동
하는데만 몇 주가 소요되기도 했다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강한 바람과 나일강의 수위가 최대치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오벨리스크를 실은배는 출항준비까지 약 8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력 끝에 파리 콩코드광장에 23m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다 이것을 보기 위해 20만의 인파가 모였다고 함
신왕국시대에 활약했던 역사적 인물은 투탕카멘. 하트셉수트. 람세스 2세 등이다
세 사람 중에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사람은 하트셉수트다
그녀의 아버지는 18 왕조의 세 번째 파라오 투트모세 1세로 전임 파라오 아멘호테프
1세의 아들이라는 설과 파라오 집안이 아닌 이집트장군출신이라는 설이 공존한다
투트모세 1세의 딸로 태어난 하트셉수트는 이복남매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
투트모세 2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라오 자리에 오르지만 제위 13년에 사망한다
정실인 하트셉수트와는 외동딸 네페루르를 두었고 후실과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다음에 왕에 오르는 투트모세 3세다
투트모세 2세가 사망할 당시 왕의 계승자인 그의 아들이 너무 어려 하트셉수트가
섭정에 나선다 그녀는 파라오 투트모세 1세와 정실 아트모세간에 태어난 외동딸
이고 파라오 투트모세 2세의 아내이고 누이였던 만큼 어느 누구도 파라오 혈통을
가진 그녀에게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민생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 이집트의 막대한 부를 가져왔다
그녀는 많은 조각상을 남겼는데 고대이집트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어느,
박물관에 가더라도 그녀의 조각상을 쉽게 볼 수가 있다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그녀의 오벨리스크가 있으며
왕가의 계곡 근처에 그녀의 장제전이 있다
하트셉수트를 소개할 때 빠트려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투트모세 3세다 두 사람은 아주 복잡한 가족관계를 맺고 있다
하트셉수트가 그의 고모이자 계모이며 장모가 된다 어린 투트모세 3세는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하트셉수트가 섭정을 하고 하트셉수트가
사망을 하자 투트모세 3세측에서 하트셉수트에 대한 기록을 지우고 없앴다고 한다
하트셉수트는 내치에 투트모세 3세는 정복왕이라 불릴 정도로 외치에 공을 들였고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는데 오벨리스크 제작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서있거나 엎드려 있거나 누워 있지만 투트모
세 3세의 것은 로마와 이스탄불 그리고 런던과 뉴욕등 외국에 있다
하트셉수트가 사망한 후 약 120년이 지나 투탕카멘이 파라오에 올랐으나 약체여서
18 왕조는 문을 닫고 19 왕조가 탄생을 한다
투탕카멘이 사망한 후 약 45년 후에 람세스 2세가 19 왕조의 세 번째 파라오에 오르게 된다
옆지기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했더니 이렇게 다리를 잘라놨다 ㅎㅎ
Omar Akram - Dancing With The Wi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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