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경기.강원.인천

정선 아우라지

아우라지는 작년에도 왔었고 벌써 4번째 오는 것 같다 

일행들이 같이 움직이다 보니 이렇게 자주 방문을 하게 된다 

다음에 옆지기와 다시 올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이 징검다리는 올 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홍수에 돌들이 뒤집어져서 자리 이동을 하는 것 같다 

이번에 보니 돌에 구멍을 뚫어 거대한 쇠말뚝을 박아 고정을 시켜놨다. 앞에 보이는 강은 골지천이다

옆의 송천과 앞의 임계천(골지천)이 만나는 곳이 아우라지다 

이곳은 구절리 쪽에서 흐르는 송천이다 바라보이는 다리는 아우라지 출렁다리다

저쪽 건너편에는  아래와 같은 아우라지 총각 상이 있는데 이번에는 담지를 않아서 예전에 왔을 때

사진으로 대체를 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싸릿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옆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서울까지 목재를 실어 나르는 시발점이 이곳 아우라지였다 

여송정

여송정 정자 천정에는 아우라지 풍경을 그림으로 잘 표현을 해 놨다

임계천을 받아들인 골지천은 구미정九美亭을 지나 정선군 북면 여량리, 즉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받아들인다.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 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터로, 평창군 대관령면의 황병산과 구절리에서 흘러내린

송천, 동쪽에서 흘러온 임계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이 아우라지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 즉 〈정선아라리〉가 처음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부터였다고 한다. 고려 왕 조를 섬기고 벼슬에 올랐던 사람들 중 일곱 선비

(전오륜, 고천우, 김충한, 변기 수, 김한, 이수생, 신안)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을 다짐하면서 개성의

깊은 산골 두문동에 은신하다가 지금의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으로 옮겨와 살면서 지난날 섬기던 임금을

사모하고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들 이 멀리 두고 온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본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애달픈 모습을 보고 한시로 지어 읊은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옛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 는 총각이 연애를 하였다.

그들은 동백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유천리에 있는 싸리 골에서 서로 만나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처녀는 총각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몽땅 잠 들여놓고서

이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그러나 〈정선아라리〉는 사회적, 시대적 흐름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반달 같은 우리 오빠는

대동아전쟁 갔는데 샛별 같은 우리 올케는 독수공방 지키네”라거나, “사발그릇은 깨어지면은 세네 쪽이

나고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치네”라고 분단 상황을 노래하기도 하였으며, “아우라지 건너갈

때는 아우라지 더니 가물재 넘어갈 때는 가물감 실하네”라고 날 가문 날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면같이 경치 좋은 곳에 놀러 한번 오세요. 용산 소, 폭포수 물 밑에도 해당화만 핍니다.

산천이 고와서 뒤 돌아다봤소. 정든 곳이라서 뒤 돌아다봤지”라는 구절도 있고, “겉눈은 슬쩍 감구야.

속눈으로 보니, 대 관령 서낭님도 돈 시구 가잔다.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 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 치고, 꼬리는 마당 치고, 마당 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받아치는데, 우리 집 그대는 낮잠만 자느냐”

라고 노래하기도 하였다. 햇살편지님 글에서 

주막촌은 여름이라서인지 썰렁한 모습이다 장사도하고 있지 않은 듯 

이곳에서도 어항을 놓았는데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아우라지

여량면 여량리에 위치해 있으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생지 의 한 곳으로서, 예부터

강과 산이 수려하고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발원되어 흐르고 있는 구절쪽의 송천과 삼척시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임계쪽의 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우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적인 배경에서

송천을 양수,골지천을 음수라 칭하여 여름 장마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예상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옛말이 전해오고 있다.정선읍으로부터 19.4km 거리에 위치한 아우라지는 산수가 아름다운 여량8경의 한 곳으로

송천과 골지천이이곳에서 합류되어 한데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 라 불리고 있다.

이곳은 주위에 노추산, 상원산, 옥갑산, 고양산, 반론산, 왕재산 등이 둘러싸여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맑아서 옛부터

풍요로움과 풍류를 즐기던 문화의 고장이다. 오래 전 남한강 상류인 아우라지에서 물길따라 목재를 한양으로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터로 각지에서 모여든 뱃사공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으로 정선아리랑의

가사유래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뗏목과 행상을 위하여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달프게 기다리는 남녀의

애절한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아리랑 가사로 남아 널리 불리고 있다.

송천 출렁다리

골지천의 뼝대(뼝대는 강원도말로 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를 말한다)

여송정과 아우라지 처녀상이 있는 곳

 

Venezia Noturna(베네치아 야상곡) - Rondo Venez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