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중 옆지기 배내골 벚꽃 피었으려나 옆구리 찔러본다
오늘 한 번 나갈까 하면 될텐데 돌려치기로 마음을 떠보는데 오늘 할 일도 없으니
또 봉사정신으로 드라이브에 나선다(4/5)






위에 사진은 그제 볼일이 있어 온천천을 잠시 지나가며 담은 꽃인데 튤립도 활짝 피었고
이틀 사이에 벚 꽃도 거의 만개를 해서 축제 날과 잘 맞아떨어졌다
(4월 3일부터 5일까지 벚꽃 축제다) 벚꽃이 아주 좋은 곳은 축제 부스들이 자리하고
있고 장사 천막들이 많고 벚꽃 구경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진을 담기도 어렵다

언양 석남사를 거쳐 이곳 배내골로 접어드니 높은 곳은 아직 벚꽃이 피고 있는 중이고
낮은 곳은 거의 만개를 했다 눈으로만 보며 지나쳐도 되지만 꽃을 보니 또 욕심으로
자꾸 사진을 찍게 된다


어디를 가나 벚꽃이 만개를 하면 자목련도 만개를 한다
자목련나무로써는 상당히 큰 키다 지금 만개를 넘어지고 있는 것도 보인다

꽃잎이 갈색으로 멍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종지나물


산당화 (명자나무)

천천히 온다고 왔는데 벌써 배내골 끝자락에 왔다
잠시 쌍미륵사에 들려보기로 한다

쌍미륵사
양산 원동면 배내골 쌍미륵사는 밀양댐 상류에 자리 잡은 황금빛 사찰로 절벽에 쌍미륵부처가
출현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남알프스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쌍미륵사는 향로봉 자 씨 미륵대불의 출현 지이다.
조계종 사찰로 입구에 12 지신상과 함께 포대화상, 보리달마,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
황금빛으로 채색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찰이다.
배내골과 밀양호의 수려한 풍광 속에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드라이브 코스 중 한 곳이다

아전인수 같은 이야기

자 씨 미륵대불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다 (파란 선 안)


세상에서 가장 근심걱정 없는 포대화상

달마상으로 보인다

이곳은 배내골에서 밀양댐으로 흐르는 물줄기다
만수 때는 저 바위벽 위까지 물이 차는데 겨울가뭄으로 수위가 엄청 내려갔다

자두나무 꽃 같은데 또 배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농암대(籠巖臺)
밀양댐 수몰지역인 고례천(古禮川) 상류부근, 즉 사희동(四熙洞) 상류 부근 1km 구간의 계곡을 농암대(籠巖臺)라고 한다.
계곡 양편에 화강석 바위덩이가 농(籠)과 같이 겹쳐 쌓인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며. 행정구역으로는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이다.
지금은 농암대 마주 보는 곳에 농암정을 세우고 수몰지역에 대한 사연이 적힌 비가 세워져 있는 쉼터가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기도 한다.
천길 벼랑이 깎아 세운 듯하고 그 밑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에 은어 떼가 뛰노는 수석이 빼어난 경승지로서,
조선시대 사림파의 거봉이신 김종직(金宗直 : 1431 ~ 1492) 선생께서 만년에 머물렀다는 곳이기도 하다.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시
九曲飛流激怒雷
구곡비류격노
落紅無數逐波來
낙홍무수축파래
半生不識桃源路
반생불식도원로
今日應遭造物猜
금일은 조조 물 시
아홉 구비 폭포마다 성난 우리 부딪치고
낙화는 가이없이 물결 따라 쓸려가네
반생토록 몰랐어라 도원길이 어디멘지
오늘에야 만났거늘 조화옹이 시기하네.

망향비 내용
상전벽해라더니 일찍이 점필재 선생이 무릉도원에 비견했던 이곳 고사천 상류일대가
오늘날 경남 도민의 생명원으로 거듭나매 이는 마땅히 경축할 일이로되 한편으로 대대손손
가꾸어온 삶의 터전을 상실한 채 외지로 떠나야 했던 넉 달. 사희동. 죽촌. 고점. 주민들에게는
애고지정을 금할 수가 없기에 가뭇없이 사라진 옛 보금자리를 회억 하는 당신들의 허탈한 심기에
행여 한가닥의 위안이라도 될까 하여 삼가 이 자리에 돌을 세웁니다
2003년 5월 31일 밀양시장

밀양다목적댐



흰 제비꽃

보라제비꽃

고례리
2001년 밀양댐이 완공되기 이전까지 고례 평리 덕다리 사희동 죽촌 등 5개 행정마을을 아울렀던 고례리는 비록 오지였지만
밀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마을로 통했다. 백마산과 향로봉(726.8m) 뇌암산 등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구곡천
(九曲川)이라고도 불리는 고사천(姑射川)이 관통하며 수많은 기암절벽과 깊은 소,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밀주 구지(密州舊誌)에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계류와 전답이 아름다우며 기암절벽이 마치 옥(玉) 기둥을
세워 놓은 듯 깨끗한, 인세(人世)의 진경(眞境)'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인동장 씨가 임진왜란 때부터 400여년을 살아온 집성촌이다

낙주정
조선 숙종 때 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던 낙주(洛洲) 장선흥(張善興)과 그 후손인
농산(聾山) 장영석(張永錫)을 추모하기 위해 1918년 인동 장씨 가문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낙주정 아래 암벽에 새겨진 척망대. 장민식(울려다 본다는 망대인데 정자를 올려다본다는 말인지 부모님 산소를
올려다 본다는 것인지?)


옛날에 왔을 때 담은 사진으로 대체

시계방향으로 임경대 낙주정 사산정사 증연서실이라는 현판들이 걸려 있다

농산 헌. 한 청으로(한청루라고 하는데 맞는지요?)

낙주정은 자물쇠가 두 개로 굳게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낙주정(洛洲亭)은 고례리 구석촌(龜石村) 입향조인 洛洲공(휘 선흥)과 그의 9 세손聾山공(휘 영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다.
이곳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그 운치와 아름다움은 밀양 제일가는 곳이라고 하며, 밀양댐 아래 시리소의 병풍
같은 절벽 위에 자리한 낙주정은 절벽과 마주한 아름다운 강까지 조형미의 극치를 이루었으며, 정자에는
현판과 시편이 즐비하며 임경대로 부르기도 하였고 강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1918년 인동장 씨 문중에서 고례리 장제산 아래 시루소 절벽에 낙주 장선홍, 농산 장영석을 추모하기 위해
정자를 지은 것으로 고례리는 해발 1,000 고지가 7개나 된다는 영남알프스 고산 준봉 아래 위치한 거대한
협곡 산중 마을로 고례리는 인동장씨 집성촌이다.
고례리는 산고수장 산수가 수려하고 물 좋기로 이름나 점필제 김종직, 퇴계 이황 등을 비롯한 나라의 이름난
시인 묵객들이 시 한 줄은 남기고 갈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명승고적들은 밀양댐에
수몰되고 말았다.

인동장 씨들 사당

고사천 (구곡천)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앞을 흐르는 하천은 고사천이라고도 불리지만 옛날부터 구곡천(九曲川)으로도 불렸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밀양호에 수몰된 고례리 사희동마을에서 단장면 사연리에 이르는 구간의 하천을 일컫는다.
구곡천이란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른다'라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조선 초기 학자인 채지당(採芝堂)
박구원(朴龜元)이 당시 사희동 마을에 살면서 지은 고사구곡가(姑射九曲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박구원은 하천 유역의 9개 명소를 구곡(九曲)으로 꼽았는데 사연, 정각산(正覺山), 범도리, 승학동(乘鶴洞), 단애(丹崖),
증소(甑沼), 도장연(道藏淵), 농암대(籠岩臺), 선소(船沼)를 가리킨다.
유익종 - 사랑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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