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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광한루원과 요천 볼거리


남원시(南原市)는 대한민국 전라북도 동남부에 있는 시이다. 시의 동남쪽으로 지리산과 인접한다.
남원분지를 흐르는 요천이 시의 중심을 지나 서남부의 섬진강으로 흐른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가야 세력이 있던 지역이다. 신라 통일 후에는 고구려의 유민들을
남원으로 이주시키고, 남원경을 설치하였으며, 거문고 등 고구려 문화가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매년 5월 초에는 광한루 일대에서 성춘향을 기리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춘향제와 전국춘향선발대회가 열린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지역이다.

남원시는 동북에서 동서로 점차 경사지고 시가지 주변에 교룡산이 솟아있으며, 군사적 천연의
요새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에서 뻗어온 지리산 자락은 시의 동북을 종단하여 일대 분수령을
이루고 있어 동으로 흐르는 물은 경상남도 진주를 거쳐 낙동강으로 유입되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남원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요천을 이루어 섬진강에 유입된다.

동북부는 소백산맥의 지맥인 성수산맥으로 서부는 부흥산맥으로 둘러싸여 대분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중앙부에 평지와 주변부의 산간으로 구분된다. 산간부는 운봉읍을 중심으로 한 전북 지방 최고
고원지대를 형성하여 중간산 지역으로 총 면적의 67.2%나 되고 평야부는 적성강, 요천, 옥율천 지역은
토질이 비옥하다.권진순님 글에서

 

                          추어탕으로 늦은 점심도 때우고

      광한루원은 2층 누각인 광한루를 중심으로 완월정, 영주각, 방장정, 삼신산과 연못, 오작교 등을 비롯해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사, 월매집 등이 설치되어 있다. 본래 이곳은 1419년 황희가 ‘광통루’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그런데 세종조에 정인지가 누원의 경치를 보고 감탄하여 마치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살고 있는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하여 광한루로 이름을 고친 것이라 한다.

     그 후 남원부사로 부임한 장의국은 광한루를 중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들여 은하수를 상징하는

     못을 만들었다. 이곳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도 함께 설치했다


전설에따르면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고 은하수위에 오작교가 놓여있다

계관(달나라궁전)의 절경 속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이 노닐었다고한다 이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광한루에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완월정은 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위해 지은 누각이다. 겹처마 팔짝지붕의 전통적 조선 건축 양식이다

완월정에서는 남원의 민속행사인 춘향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광한루 잉어의 유래

옛날에는 누각 앞에 좁다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전라 관찰사 정철이 은하수를 상징하는

넓은 연못을 만들었다 이곳 연못에는 광한루원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증으로 3000여마리의

토종 잉어와 비단잉어가 살고 있다 잉어는 수명이 7~80년 정도이며 이곳에는 사람 얼굴 모습을

닮은 인면 잉어가 10여마리 살고 있어 이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지나가는 연인을 붙잡고 한컷 부탁 인증도하고

 

자라돌(鼇石)

漢書에 '渤海에 有大 鼇하야 背負三山(발해에 큰 자라가 있는데 삼산을 등에 업고)'
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연상해서 湖中에 三神山(瀛洲, 蓬萊, 方丈)을 선조 15년(1582) 관찰사
松江 鄭澈이 만든 뒤 이 고장에 재난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여기에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을 지켜 보게한 뒤 부터 재난이 없어졌디는 전설이 있다.

높이 4척, 폭 4척, 길이 8척

 

                     오작교

 

칠월 칠석날 (음력 7월7일)견우와 직녀 두별이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들이 은하수에

모여 몸을이어 만들엇다는 전설의다리 지리산 계곡물이 모여 강이된 요천수를 유입시켜 만든

호수는 은하수를 상징한다 전설과 함께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는 오작교를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광한루

보물 제 281호

춘향전으로 한층 유명해진 광한루는 황희정승이 1419년에 [광통루]를 세우고
세종 16년(1434)에 중건되고 정인지에 의해 [광한루]라 개칭(1444)되었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전소되어 인조 4년(1626)에 남원부사 신감으로부터 복원되어 오늘에 전한다.
선조 때 南原府使 張義國이 요천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광한루 전면 동서 양편에 平湖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하게 하였으며, 못 안에는 三神島를 만들어 한 섬(방장섬)에는 대나무를, 또
한 섬(봉래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영주섬)에는 蓮亭을 지었다. 또 가운데에는
하화연(荷花蓮)을 심고 못을 가로지르는 오작교를 놓았다.
연못을 앞에 둔 누각으로 마루주위에 난간을 둘렀고 본채 동쪽에  연접된 두 칸의 부속건물은
정조 때(1776~1800)에 증축한 것이다.

기둥위의 공포양식이 주심포식에 다포집 계통을 절충한 특수한 건물인데, 건축 양식보다
춘향과 이도령의 아름다운 인연이 얽힌 전설적인 누각으로 더 알려져 있다.권진순님 글에서

                                                                                   춘향각

                                                                     춘향의 영정

                               추석후에니까 꽃무릇이 한창 만발할때다

 

 

                               월매집 연못에는 수련이 삐쭉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춘향 이야기

전라도 남원의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다.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남모르는 사랑을 계속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춘향은 지조를 지키느라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지만 새로 부임한 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한다. 춘향은 죽기를 무릅쓰고 신관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서울로 올라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영주각(瀛洲閣)

軟柳疎篁小水東(연류소황소수동) - 보들보들한 버들과 대숲은 작은 물을 동쪽으로 트이고
飄然仙閣出塵中(표연선각출진중) - 표연히 신선의 집에서 속세를 벗어나며
襟懷灑落登軒日(금회쇄락등헌일) - 가슴이 깨끗하고 시원함을 품고 정자 누각에 오르는 날
如生三淸上界風(여생삼청상계풍) - 하늘의 바람이 선인이 사는 삼청(玉淸, 上淸, 太淸)과 같구나

久山 宋寅萬稿 - 구산 송인만의 원고

요천(蓼川)은 남원 남쪽을 가로 지르며 섬진강에 합류한다. 요(蓼)자는 여뀌 요자로
마디풀과에 딸린 일년초, 습지에 나며 잎은 맛이 맵다, 조미료로 쓰인다.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요천

남원의 젖줄인 이 요천변은 동학농민혁명(1894) 당시 전라좌도 농민군을 총지휘했던
김개남 장군이 전봉준 장군과 함께 7월 15일(음력) 수 만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남원대회를 개최하여 척양척왜(斥洋斥倭)와 보국안민(補國安民)의 기치를 드높인
역사적 장소이며 경복궁을 침입하여 국권을 훼손하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낸 일본군을
축출하기 위해 농민군이 훈련하였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훈련하였던 전라좌도 농민군의 정예부대는 청주성 공격에 남은 병력은 방아치
(남원시 산동면)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원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귀 기울이면 그 때 농민군의 함성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승월교(昇月橋)

광한루원(廣寒樓苑)과 승월대 사이 지리산 맑은 물 흐르는 요천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승월교라 이름합니다.

先人들은 신선이 되고픈 꿈으로 달나라 月宮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은하수 烏鵲橋 등을
땅위에 지었으니 광한루원은 천체우주의 상징이며 神仙思想이 깃든 곳입니다.

먼 옛날 팔월 한가위 둥근달이 中天에 떠오르면 광한루원에 선녀들이 내려와 춤과 노래로
三更을 보내다가 새벽닭이 울 무렵 승월대 높은 누각에 드리운 황금빛 달기둥을 타고
昇天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승월대에 있던 날아갈듯한 정자인 수임정(水臨亭)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누가 새겨 놓았는지 승월대란 글씨만 남아 옛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곳에 승월교를 놓은 뜻은 전설속의 선녀같이 세속을 씻고 천상을 넘나들며 明鏡같은
마음으로 평화를 찾으시라 함 입니다.

따라서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모두 신선이니 월궁의 선녀들 처럼 언제나 평화와 행복을
누리시며 춘향사랑, 흥부마음 가득 담아 소원을 빌면 반드시 소원성취 이루실

 

 

 

 

 

                       닥나무 한지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어렸을때는 많이 심었었는데

 

 

 

 

                         요천의 시원한 물줄기를 보며 춘향 테마파크로 이동한다

 

                              Anything That's Part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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