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년(우왕 12)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년(선조 14)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지능(智能)이, 1735년(영조 11)
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과 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해탈문(解脫門)·현충각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과 보물 제232호인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拜禮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석문(石門),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연화 3개가 연지(蓮枝)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에는 1499년(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몽산법어(蒙山法語)』·『심우십도(尋牛十圖)』 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永明)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백과사잔에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제218호. 높이 18.2m. 거불로 예로부터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이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권18 은진조와 1744년(영조 20)에 세워진 사적비(寺蹟碑)를 보아
광종연간(950~975)에 승려 혜명이 조성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상의 특징은 우선 크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불상예배의 경외심을 돋우어주는 신앙적인 효과가 크다. 이러한 위압감은 얼굴과
손이 신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그 효과가 더욱 강조되었다. 상의 크기에 비해 불신의
표현은 소홀하여 어깨가 좁고 가슴이나 허리의 구분이 별로 없는 원통형이다.
천의(天衣)의 표현이나 옷주름도 매우 단순하다. 이마 위에 늘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나 두 귀의
가운데로 걸쳐 있는 보발(寶髮)의 표현, 허리 밑으로 늘어진 앞치마처럼 생긴 둥근 옷자락의 표현 등은
고려초 보살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강릉 신복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
(神福寺址石造毘盧遮那佛像)이나 연산의 개태사석조삼존불(開泰寺石造三尊佛)의 협시보살상과 같은
고려 초기의 불상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관촉사 불상은 보다 도식화된 면을 보여준다.
높은 원통형의 관(아마도 금속관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짐) 위에 다시 사각형의 이중 보개를 얹고
있는 것이라든지 연화가지를 들고 있는 수인(手印) 등은 도상면에서도 매우 특이한 요소이다. 보개는
중국의 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아마도 상을 보호한다는 의미 또는 상의 위용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독특한 모습의 보살상은 이후 고려에서 유행하여 비슷한 상이
여럿 조성되었는데, 그중에 부여 대조사(大鳥寺)의 석조보살입상이 대표적이다. 백호를 수리할 때
발견된 묵기(墨記)에 "正德十六年辛巳四月十五日"이라고 적혀 있어 조성시기의 파악에 참고가 된다.
백과사전에서
반야산 관촉사를 나와 돈암서원으로 향한다
돈암서원의 외삼문인 입덕문 앞에 세워져 있는 산앙루(山仰樓),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누각 2층에는 글씨족자, 시판(詩板) 및 중수기 편액들이 걸려있습니다
문화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하고 계시다
돈암서원의 외삼문인 입덕문(入德門),
【논산 돈암서원】김장생(1548∼1631)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인조 12년(1634)에 건립한 서원.
서원은 훌륭한 분들의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양성하던 지방교육기관.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은 예학의 대가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힘쓰고 이후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양성을 하였다. 후세에 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우고 김장생을 추모하여
후학에 힘썼다.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추가로 모시었다. 이 서원에는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사우(祠宇), 응도당, 장판각 등의 건물들과 하마비,
송덕비가 남아 있다.
이 서원은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있는 곳이다. <출처; 문화재청>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서울 출신. 할아버지는 지례현감 호(鎬),
아버지는 대사헌 계휘(繼輝),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우참찬 영(瑛)의 딸.
아들이 집(集)이다.
김집(金集, 1574~165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서울 출신. 아버지는 장생(長生),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대건(大乾)의 딸.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으며, 송시열에게 학문을 전하여 기호학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세영(世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응서(應瑞), 아버지는
영천군수 이창(爾昌).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김은휘(金殷輝)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조산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또는 우재(尤齋).
봉사 송구수(宋龜壽)의 증손, 할아버지는 도사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 곽씨(善山郭氏)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돈함서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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