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거룡산악회 여름 물놀이 지리산 피아골계곡으로
예약된 펜션에서 단체기념 사진부터 찍고
지리산과 피아골쪽을 보니 구름이 많이 끼었고 또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다
우리가 오늘 하루 물놀이할 곳이 여기 신촌마을이다 연곡사주차장까지 차가 올라가면
이곳보다 더좋은곳들이 많은데 너무 아래에 장소를 정해 직전마을까지 다녀오기는
이더운여름에 포장길 4km 너무멀다
몇사람 연곡사까지 가기로 출발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모두들포기 나혼자서 출발한다
아담한 마을과 펜션들 그리고 물이 풍부한 계곡 5단6단폭포 멋진 풍경들이 펼처진다
공원과 주차장이 붙어 있는데 주로 카라반들이 진을치고 있다
조금오르니 평도마을 평도 교회가 나오는데 시골교회치고는 꽤나크다
평도 마을 풍경도 몇곳 담아본다 단풍나무 색갈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벌써 붉게 물들어있다
광주대교구 피아골 피정의집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영성 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일정기간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묵상과 성찰 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하는 일을 ‘피정(避靜)’이라고 합니다.
오른쪽이 연곡사 주차장이고 조금전진하면 연곡사 계속오르면 직전마을로해서 피아골거처
지리산 임걸령으로 오른다
피아골은
옛날부터 이곳에서 고대 오곡중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점차 발음이 피아골로 전환된 것이라 하며
지금도 피아골 입구에 직전(稷田)(피밭)이란 마을이 있어
이 유래를 실증하고 있다.
임진왜란,조선말 격동기,여순반란사건,6.25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일제 침략을 저지하기위해 의병을 일으킨 고광순 의사가
여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곳이다
순절비가 연곡사 경내에 세워져있다
천년고찰 연곡사다
30년 외길 커피 인생 황재복교수의 힐링커피 인도네시아에서 직접재배해 사용하는 연우 커피숍
천왕문은 이제 신축해 사천왕상도 아직 존치하지 못했다
연못에는 풀만 우북하다
삼홍루를지나 대웅보전으로
연곡사 3층석탑 멋진 굴뚝이 있는데 어느곳에서 연결됐을까?
종각
사찰 앞마당에서 바라본 삼홍루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인듯
무리를지어핀 상사화도 이제 서서히 수명을다하고 있다
연곡사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는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비신)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귀부)과 머릿돌(이수)만 남아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귀부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 수 있다.
돌거북 머리는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보물 152호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는 고려 전기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979년(경종4)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현재 비의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비문은 학사 왕융이 지었고, 글씨는 상주국 장신원이 썼다고 한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의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현각선사비명(玄覺禪師碑銘)’이라는 탑
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때 생긴 피탄 자국이
받침돌과 머릿돌 뒷부분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현재의 탑비는 귀부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조각난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8월9일날 찾았던 창평 삼지천마을의 고경명장군의 후손이시다
대적광전
절의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 동 승탑 옆에 있는 탑비(보물 153호)이다.
글이 새겨진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등에는 육각형의 거북등껍질 대신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비몸을 올리는 비좌에는 구름무늬과 연꽃무늬로 장식하고 있다. 머릿돌에는 용무늬는 없고
구름무늬만 새겨 놓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웅장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조각수법이 떨어지 머릿돌에 용무늬를 생략하는 등 형식적이며 간략해진 고려시대 탑비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비몸이 없고 탑의 이름을 적어 놓는 머릿돌 가운데 글씨가
남아 있지 않아 탑과 탑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구례 연곡사 동승탑비, 보물 153호,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동승탑의 주인으로 추정된 이 비의 몸돌인 비신은 소실되고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이 남아 있다. 귀부는 맨 아래의 돌과 한돌로 네 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있어 마치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이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든 귀부의 정상에는 장방형의 비좌를 마련하고
네 측면에는 구름무늬를 고부조(高浮彫)로 장식하였다. 귀부는 1개의 뿔이 달린 용모양의 머리,
날개달린 거북모양의 등을 갖춘 상상속의 동물인 ‘연’을 형상화 시켜 놓은 것이라 한다.
이수의 전면 중앙부에 비명은 남아 있지 않고 좌우에 구름속의 용이 힘차게 조각되어 있으며,
이수 뒷부분에는 구름 속에 있는 3마리의 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수 윗부분의
정상에는 화염보주가 있고 좌우 2개의 화염보주는 소실되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정밀하고
그 형상은 힘찬 느낌을 준다. <출처: 문화재청>
동승탑비에서 바라본 연곡사 전경
삼성각
템플스테이
삼홍문에서 바라본 연곡사 전경
하얀 무궁화꽃도 피었습니다
고려 초기에 생긴 마을이라고 하나 정확한 설촌 연대는 알 수 없다.
농평 앞 큰 당산나무가 있었다. 1989년 104세로 작고한 이영희가 어릴적에도
당산나무는 큰나무였으니 300년은 훨씬 넘었을 것이라 했다. 1998년 이 마을에
사는 이경의가 나무를 베어 팔았고 그 후 병이 생겨 죽었다고 한다.원래 문척면에서
엄씨가 이사와 거주했다는 구전과 현재 농평에 거주하고 있는 이점암의 조부가
5대조 때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서 이주하였다 하니 200여 년 전에 전주 이씨가
입촌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치에서 동북쪽 약 1.5㎞ 지점에 농평 마을과 독가촌
집단으로 1970년도 폐촌된 높은 터, 연곡사 북쪽 약 500m 지점에 2~3호 있는
물골까지 4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당산나무 집이 큰재밑에 있다하여 ‘당재’라 하고
당재에서 보면 높은 자리에 있다하여 ‘높은터’, 노호농 골에 평평한 터라 하여 ‘농평’이라 한다
오늘은 모처럼 부회장님과 한컷 연장자라고 많이 많이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시원해요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잘먹고 잘놀고 또 1kg은 불었겠지
마을에는 호두나무가 많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아름다운계곡 그림같은 집들 그리고 비가개인 산과하늘은 푸르고 높다
성묘를 다닐때쯤이면 저밤은 벌어저 떨어지기 시작하겠지 조금만 기두려보자
마을 길거리에는 달맞이 꽃과 칡꽃이 간간히 피어 있네
돌아올때쯤 맑게개인 하늘 공기가 너무도 깨끗해 돌아오는것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화개장터에 잠간
장날이 아니어서 시장은 한산하다
조영남군과 함께 그구수한 화개장터 노래나 한곡 들었으면 좋겠다
목포집에서 회장님께서 사주신 막걸리로 목도축이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부산으로 향한다
Rain - Jose Feliciano
조영남 - 화개 장터 노래 듣기 /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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