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고 달팽이요리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이동을합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고대.중세.근대.현대.그리고 미래의 문화가 함께 숨쉬는 곳이다.
파리는 유럽 최대의 도시권 가운데 하나로서 2000여년전 세느강의 시테섬에 세워졌다.
세느강은 파리시의 한 가운데를 흐르며 시를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고, 북쪽은 상업이 성하고
남쪽은 소르본대학등 교육기관이 많아 문화활동이 활발하다.
지난 몇 백년간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도시가운데 하나였으며, 현재도
세계의 예술 패션 유행 등을 선도하는 주요한 도시다.
몇백년된 건물들이 이렇게 잘 보존된 것도 놀랍고 매장 간판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어서
상점을 찾아 갈때는 주소를가지고 찾아간다고함
달팽이 요리집에 도착을 합니다
이렇게 6마리를줍니다 처음먹어보는 것이지만 매력적이지는 안습니다
맛도 별로인 것 같고요
다음에 이렇게 감자와 스테이크가 나옵니다
점심시간에 주로 한국인들만 들어옵니다 2층에도 꽉찼습니다
달팽이가 에스카르고인지 아스까르고인지?
겔러리 건물인데 무슨겔러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파리는 인구 220만이라고하며 집이 평당 4천오백~칠천만원 한다고 하며 저위에 다락방은
예전에 주로 하인들이 살았는데 5평정도 지금은 월세로 80만원정도 한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 “빛의 도시” 낭만과 고독이 함께 숨쉬는 도시“
”꿈과 사랑의 도시“ 등으로 부르고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최대의 관광도시다.
파리시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서울의1/5 정도로 추정, 가로9km.세로 12km)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파리는 밤이 더 아름답다.
연인들이 밤새워 애기를 나누는 세느강변, 상젤리제거리의 화려한 불빛 등이 파리의 꿈과 낭만을 보여준다.
파리는 유럽에서도 숲이 가장 많이 우거져있는 도시중 하나로서 , 현대식 빌딩사이로 수많은 정원과
공원등 녹지대가 조성돼있고, 무수히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 기념물. 박물관. 초현대적인 패션 및 예술이 있다
몇백년전에 마차가 다니던 길을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데 그래서 차들도 소형차이며
그들의 소박한 국민성을 볼 수 있습니다
콩코드광장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콩코드는 화합의 의미라고 합니다
콩코드 광장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상징입니다
꽁꼬르드 광장엔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다.
광장은 1757년~1779년(22년간) 쟉크 앙주 가브리엘의 설계로 건축되어 루이 15세에게
바쳐졌는데, 프랑스 혁명(1789년) 당시 이곳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1,3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장소이고,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으면서 민심이 피폐해져 혁명이 일으났고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루이 16세는 이곳으로 끌려나와 왕비와 함께 목이 잘렸다.
콩코르드 광장에는 프랑스 해군을 기념하기 위해 2개의 청동 분수대가 1840년에 세워 졌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의 분수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콩코르드 광장 둘레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도시 8개를 상징하는
조각상 8개가 서 있다.
루이 15세 광장 등으로 불리다가 프랑스 시민 혁명 이후 콩코드 광장으로 로 바뀌었습니다.
콩코르드 광장 중앙에 설치된 룩소르 오밸리스크는 콩코르드 광장을 대표하는 상징탑이다
광장 우측에는 앵벌리드 전쟁기념관이 있고 가로등과 기념물등에 곳곳에 금박을 장식해 한층 고급스럽다.
광장 가운데 오벨리스크(obelisk)는 이짚트 테베 강변의 람세스2세 신전에서 가져 온것이고(아마 약탈해왔을 것이다.)
무려 3,200년이 지났으며 높이가 23m나 되는 분홍색 화강암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230톤의 무게에 23미터의
높이인 이 기둥은 원래 이집트 룩소의 테베사원에 있었던 것을 1831년 이집트
고관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헌납한것이고 기둥에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앞에 건물은 호텔 건물인데 굉장히 비싸다고하며 뒤에는 대통령궁이 있다고합니다
오페라 하우스
이렇게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도 있는데 우리는 보지도 못하고 지나첬습니다
그랑 팔레(Grand Palais).
중앙에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고 겉 모양은 화려한 궁전의 모습이지만 지붕은 현대식으로 철골에
유리로 마감된 공간입니다. 유리 지붕을 올리기 위해 사용된 철골의 무게만 6천여톤으로
에펠탑에 사용한 철보다 양이 많다고 합니다. 에펠탑 처럼 쇠에 주기적으로 색을 칠해 주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초록색 페인트의 무게만도 60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기획 전시를
비롯해서 매년 40여개가 넘는 행사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코엑스와 같은 공간입니다.
뮤지엄 패스와는 관계가 없는 전시가 대부분입니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세계 박람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설계로 세워진 에펠탑은 원래는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철덩어리’라 하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09년엔 철거될 뻔하는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최신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는
이유로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에펠탑 전망대에 오르기위해 입장료 16유로인데 50유로나 주고 옵션으로 오른다
50인승 푸니쿨라 같은 에레베이타를 타려고 무려 1시간을 기두렸다
그의 성을 딴 파리의
에펠 탑으로 유명하다. 1855년 국립중앙공예학교를 졸업한 뒤 금속
구조물, 특히 다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에펠 탑(1887~89)을 건설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는 '철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공기역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에펠 탑에서 많은 실험을 했다.
파리 교외의 오퇴이에 최초의 공기역학 실험실을 만들어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작업을 계속했으며,
1921년 이 실험실을 국가에 기증했다.
[Daum백과] 에펠
에펠탑에서 바라본 파리시내와 세느강
앞에 건물들은 화재에 노출될 염려가 있어 현재 사람이 살지 않고 있다고함
에펠탑에서 바라본 상드마르스공원
프랑스 어로 샹(champ)은 샹드리제의 샹과 같은 말로
'들판'을 의미하고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서 전쟁의 신(神)을 가리킨다.
따라서 샹드 마르스란
전쟁의 신인 ‘마르스의 들판’이란 뜻이다.
에펠탑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거의 1km 뻗어있는
거대한 공원으로
'마르스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이 마르스 광장의 남동쪽 끝에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가 있는데 원래는
1750년 루이 15세가 가난한 귀족 자녀들을 장교로
양성하기 위해 왕립군사학교로 건설한 것이다.
공원 끝에 보이는 건물이 위의 육군사관학교 거기까지 갈수 없으니 자료에서 가저옴
이 공사는 1752년부터 시작했고 정식 개교는
1760년이었다.
광장도 1760년대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나폴레옹도 이 학교 출신인데,
샹드 마르스는
바로 이 군사학교의 연병장이자
군사 훈련을 하던 곳이다.
그 때문에 전쟁의 신(神)인 마르스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 학교의 연병장은 지금은 공원이 됐지만
건물은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로
지금까지 건재하다.
저 돔건물은 앵발라드로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이 있는곳
앞에서 세번째 다리가 미라보 다리라고함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날씨가 별로입니다 안개인지 스모크인지?
자유의 여신상을 줌으로 땡겨봅니다
사요궁전
사진처럼 양쪽 날개를 가진 궁전으로 왼편으로는 인류박물관과 오른쪽에는 해군 박물관이다
두건물은 독립된 건물이며 사요궁전 앞에는 대형 분수대가 있고 전망대는 두건물 사이 공간이다
개선문도 가까이 보입니다
빅버스 시내투어 버스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건물 전체가 철골 구조로 되어 있고
그래서 강한 바람에도 13cm 이상 흔들리지 않고, 기타 위험으로부터 탑을 잘 고정시켜 준다.
또한 철골이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는 15cm가 더 길어진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꼭대기의 텔레비전 안테나를 포함하여 320m이고, 3층까지는 총 1,652개의 계단이
있고, 2천 5백만 개의 못이 있다. 총 무게는 10,000톤이고 4년마다 도색 작업을 하는 데 들어가는
페인트의 양만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Daum백과] 에펠탑
개선문 벽면에는 프랑스 혁명시기부터 나폴레옹 1세때까지 128번의 전쟁에 참전 했던
총 558명의 장군이름이며 전사한 장군 이름 아래는 검은 줄을 거으 놓았으며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중앙 아치 밑에 묻혀있고, 개선문에는 나폴레옹 1세의 공적을 기념하는
총 10개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의병들의 모습과 출정하는 의병들의 모습이 표현되어있다.
개선문이 있는 광장은 문을 중심으로 별모양의 12개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있고 12개의
도로에는 대부분 참던했던 장군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일명 “엘투알광장”“샤롤 드골 광장”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파리 개선문
파리 꽁꼬드광장에서 2.2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즉 상젤리제거리 끝에 우뚝 선 개선문은
높이 50m의 건축물이다.
1805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물리친 오스테리츠 전투를 기념하여 나폴레옹의 명으로 1806년에
공사가 시작, 1809년에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고,
1815년 나폴레옹시대가 끝나자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30년이 흐른 1836년 루이필립 시대에 완성했다.
공사를 명한 나폴레옹은 1821년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생전에
개선문의 완성을 보지못한셈이다.
무명용사의 무덤,
개선문 아래에는 세계 제 1차 대전 당시의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고,
저 불은 1년 365일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1810년의 승리,
1810년의 승리라는 작품으로 승리의 여신에게서 월계관을 받는 장면,
코르토 작품,샹제리제 거리쪽에서 봤을때, 개선문 왼쪽의 작품
개선문을 뒤로하고 상제리제 거리를 돌아봅니다
상제리제
나폴레옹3세때인 19세기후반 파리의 부호들과 정치인 예술가들이 개인 저택을 갖게 되면서
세련된 취향과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레스토란과 유명브랜드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유명해
젔다고하며 파리하면 떠오르는 먹거리 노천카페도 유명하다
고급 카페와 상점이 즐비한 세계적인 쇼핑의 거리 샹젤리제
뒤에는 부호들과 예술인들의 저택들이 즐비합니다
샹제리제거리는 2.2km의 대로이고 양쪽에는 유명한 건물이 즐비하며, 서점.식당. 카페.기념픔가게.오락실등이 있고,
그리스 신화에서 낙원이라는 의미의 엘리제를 따서 샹젤리제( 엘리지의 들판)라는 뜻입니다
프라타나스 나무를 일렬로 멋지게 다등어 놓았습니다
루이비통 본사라고 하네요
집 하나하나에 조각품들이 예술입니다
가격이 고가여서인지 명품점은 한산합니다
유명제품들의 본사가 여기에 많이 모여 있답니다
자유의 불꽃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1997년 8월31일 사망했던 자리입니다
파파라치와 추격전을 벌리다 아래사진에 보이는 지하차도 교각을 들이 받아 사망했습니다
시속100km로 달렸다고 합니다 이지하도를 통과 하면서 가이드가 알려주네요
신영옥 Shin, Young-Ok (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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