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리제를 떠나 세느강 유람선 투어에 들어갑니다
유람선 선착장
유람선을 운영하는 바또무슈(Bateaux Mouches) 회사는 1949년에 장브뤼셀에 의해 탄생되었다.
기발하고 창조적이었던 장브르셀은 2차 대전의 종말은 여행, 여가선용 또는 국제적교류에 새로운 문화의
장이 열릴 것을 예상하고, 그는 1900년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던 최후의 증기선중의 한척을 구입해,
바또무슈 설립자라는 명칭하에 장세바스티엥무슈라는 가상인물을 주인공으로 홍보작업을 벌임으로써
오늘날 세느강에서 가장 유명한 크루즈회사인 바또무슈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14척의 크루즈 배가 있다.
알렉산드르 3세다리
다시 젊음을 되찾은 파리의 19세기 정신을 완벽하게 반영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파리 센 강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다리로 손꼽힌다.
다리는 1896년~1900년에 지어진 것으로서 당시로는 최신식의 등과 천사 등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명칭은 프랑스-러시아의 공조를 1892년 성사시킨 러시아의 알렉상드르 3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다리의 초석을 내린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던 니콜라스 2세였다
다리의 건설은 19세기 기술이 결집된 것으로서 6미터의 높이로 지어져있다.
철제 다리로서 아치 형으로 뻗어 있으며, 다리가 샹젤리제와 앵발리드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건축이
고려되어 단일 구간으로 된 107m의 다리의 높이는 고작 6m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너에 있는 17m 높이의 네 개의 화강암 기둥 덕분에 먼 곳에서도 눈에 들어오는데,
이 기둥들 꼭대기에는 각각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와, 과학, 예술, 산업, 상업을 우의적으로 나타낸
금박을 입힌 조각상이 얹혀 있다. 다리의 양쪽 면을 장식하고 있는 램프, 아기 천사, 님프들도 역시
발전과 성취를 표상하는데, 이들은 함께 중세, 르네상스, 루이 14세, 그리고 현대의 프랑스를 상징한다.
콩코르드다리
1772년 지금의 콩코드 광장인 루이 15세 광장이 만들어지면서 그 옆에 같은 이름인 루이 15세 다리를
만들기로 계획했으나 공사자금이 부족하여 1788년 8월에 와서야 겨우 초기 공사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는데 우연찮게도 파리혁명의 도움을 받게된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면서 애국자 Palloy가 무너져 내린 바스티유 감옥의 일부의 돌을
이 다리 건축에 사용한 것이다. 이유인즉슨 “모든 애국자들이 매일 이 가혹한 요새를 구성했던 돌 조각을
발로 짓밟으며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1791년 마침내 다리가 완공되고 1792년 혁명다리로 명명되어지다가 1795년 다시 콩코드 다리로
불리어지게 된다. 복고왕정시대에 다시 잠깐 원래의 이름인 루이 15세 다리로 불려지다가
루이필립왕에 의해 다시 콩코드 다리라는 이름을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셍고르인도교
오르세미술관
로얄교
이 다리는 Pont Neuf, Pont Marie와 함께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중의 하나이다.
1632년 Sieur Barbier 백작이 나무로 된 다리를 짓게 했는데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동물을
포함한 모든 통행자들에게 통행세를 부과시켰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이 통행세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 한 통행인이 세를 받는 사람을 검으로 찔러 죽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연구소 프랑스 조폐공사
퐁네프 다리
퐁네프는 '새로 지어진 다리'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의미와는 달리 퐁네프 다리는 파리시내 석조로 지어진
다리 중에서 제일 먼저 지어졌다고 한다. 노숙자와 화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졌다.
노숙자와 화가는 보이지 않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만 북적이고 있었다.
루브르박물관
사요궁 같아요
노테르담성당
노테르담 성당
루이 6세의 왕비인 아델라이드 드 모리엔느(Adélaïde de Maurienne)가 과부가 되어 오베르에 머물게 되면서
기도실로 사용했던 곳이다.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본당의 오른쪽 반원은 고딕 양식이고 제단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특히나 프랑스 벡센 지방 양식인 이중 경사의 지붕을 가진 사각형 종루가 독특하다.
이 성당은 고흐의 작품 〈오베르 성당〉으로 유명해졌는데,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이 작품 속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던 고흐의 불안한 정신 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성당 앞에는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Daum백과] 노트르담 성당
엥발리드다리
1413년 샤를 6세에 의해 건설된 이 다리는 1421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의 유행에 따라 다리 위에는
동일한 모델의 집들과 (양쪽으로 30채씩, 모두 60채) 서점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499년 갑자기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그 위에 있던 집들까지
모두 무너져 내린 대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돌로 된 새 다리가 건축되고 그 위에
다시 68채의 집들이 세워졌다.
이 집들 문가에 처음으로 금으로 된 숫자가 새겨졌는데 파리 역사상 처음으로 집 번호가 매겨지게 된
이 집들은 한 쪽에는 짝수, 한 쪽에는 홀수로 되어있어 현재 파리 주소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우아한 장소로 알려졌던 이 다리는 1660년 루이 14의 아내가 될
Marie-Therese d'Autriche의 파리입성을 기념하여 새로 재건되었다.
그냥지나첬는데 역사성이 있어 퍼왔습니다
에펠탑에서 센 강 하류 쪽으로 세 번째 놓여 있는 다리. 자유의 여신상이 마주 보인다.
1895년에 완공됐으니 로마 태생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열아홉 나이로 파리에 입성하기 4년 전에 생겼다. 다리의 서쪽 끝에는 작은 명판과
‘미라보 다리’를 새긴 시비가 붙어 있다.
유람선이 미라보다리까지 가지 않아서 빌려온사진입니다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서 간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고등학교다닐 때 한번 쯤은 읆어봤을 시한구절이 생각나서
예술의다리
루브르 궁전과 프랑스 학사원(Institut de France)을 이어 주는 철제 다리로 카루젤 다리(Pont du Carrousel)와
퐁 네프 다리(Pont Neuf) 사이에 있다.
19세기 초반 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로 만들어졌으며 당시에는 지나는 이들에게 통행료를 징수 받았다.
프랑스 건축 기술자 루이 알렉상드르(Louis-Alexandre de Cessart, 1719~1806)가 설계와 시공을 맡아
건립되었지만 세계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폭격 등으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오늘날의 다리는 1981년과 1984년 공사를 통해 대대적으로 확장 보수된 것이다.
센 강에 있는 다리 중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로 예술의 다리라는 명칭답게 화가,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로얄교
1642년 이 다리는 홍수로 인해 무너져 내려 1651년 새로운 다리가 건축되었으나 1654년에
화재가 발생하고 1656년에 다시 홍수로 무너져 내려 1660년에 다시 건축되었으나 1684년에
새로이 발생한 홍수에 의해 다시 붕괴되는 등 수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보다 못한 루이 14세가
돌로 된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로 작정하여 1689년에 새로운 다리가 세워졌는데 그때부터
pont royal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다.
노테르담 대성당을 뒤로하고
콕시에르 주리는 왕의 거주및 집무관 이었는데 14세기에 감옥으로 사용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5세의 애인 뒤바리 부인등이 처형되었든 장소이며 감옥치고는 매우 아름답다
엥발리드
프랑스 시내 알렉산더 다리를 마주보고있는 이 엥발리드는 예전에 군사 병원이였던곳을 지금은 성당으로 쓰고있다
특히 주목할점은 이곳에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과 그의 가족 손자들까지 이곳에 뭇혀있다
참고로 엥발리드=병원 이라는 뜻
콩코드광장
알렉산드르 3세다리와 오른쪽 콩코드광장
에펠탑과 이에나다리
센강의 다리에서는 에펠탑이 변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 또한 색다른 묘미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은 때로는
거대하게 때로는 아득하게 강변을 지키고 서 있다.
에펠탑 앞을 가로지르는 웅장한 다리는 이에나 다리(Pont d'Iéna)다. 1806년 프러시안과의 전쟁에 승리하자
나폴레옹이 다리의 건설을 명령했으나 그의 실각과 함께 건축과 파괴의 지난한 세월을 거쳐야 했던 다리다.
이에나 다리는 에펠탑과 샤요 궁전(Palais de Chaillot)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으며,사람들은 에펠탑을 감상하며
이에나 다리를 걸어서 건넌다. 다리 밑 교각에는 독수리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에나 다리는 나폴레옹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과시해주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선전물의 역할도 하였다.
비르하켐 다리
전철과 보행자가 위아래로 오가는 복합적인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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