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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탈리아 밀라노

  

 

파리에서 제네바까지 3시간반 제네바에서 샤모니까지 1시간 몽탄베르 올라 몽블랑보고

내려오는데 2시간 또 미라노까지 3시간반 차타는 시간만 8시간이다

 

몽블랑 터널 요금소를 지나 터널로 들어갑니다

터널은 왕복 2차선입니다 길이는 11km 이터널로인해 200km를 돌아갈거리를 그만끔 단축했다고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이 공동부담으로 공사를 했다고 함

 

이탈리아 아오스타 쪽에서본 알프스 산맥입니다

산악지대에 큰마을이 보입니다

 

 

 

 

 

아오스타를 지나며 산간 마을을 담는데 차가 많이 흔들려서 화질이 선명하지를 못합니다

 

 

3시간정도 달려 미라노에 진입 했습니다

 

비옥한 곡창지대 롬바르디아 평원에는 패션과 예술.이태리 최고의 산업도시 밀라노.

밀라노는 깨끗하고 정비되고 모든 건물이 계획적으로 건축되어 부의 냄새가 짙다.

아르마니와 프라다. 베르사체.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등 이타릴아의 명품들이 모여있고,

레오나르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작들.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인 라 스칼라.

 두오모로 대표돼는 아름다운 건축물.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린 명문 축구팀(AC밀란.인터밀란)

등은 밀라노의 자랑이고 밀라노를 예술과 산업중심도시로 만든다.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된 이후 밀라노 시민들은 여러 역사적인 이유로 밀라노가 수도로 되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다. 밀라노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공업화된 경제중심도시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통일국가 성립 이후 경제·문화·사상의 분야에서 선두적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밀라노 시민들은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지역주의에 근거하여, 또한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특성을 들어 밀라노가 이탈리아의 정신적 수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밀라노가
로마에 밀려 제2의 도시로 된 데에는 로마의 역사적·신화적 상징성,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문예부흥의 흡수·통합, 고전적 도시경관을 선호하는 경향 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Daum백과]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로마의 보르게제, 피렌체의 보볼리가 있다면 밀라노에는 바로 셈피오네 공원이 있다.
스포르체스코 성은 바로 이 셈피오네 공원에 있다. 원래 이 궁전은 비스콘티 가문의 성이었으나

나중에 그의 사위인 스포르차 가문의 성곽으로 개축되었다.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와 전쟁 때 이 성곽에서

서로 대치하였는데 지금도 성곽에는 당시 사용되던 돌로 만든 투포환을 확인할 수
있다.

성 건설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피렌체 도시 건설을 담당한 브루넬리스키,

 바티칸을 만든 브라만테, 가디오 크레모나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을 들 수 있다.

스포르체스코 성 안에는 여러 박물관, 즉 고고학 박물관이나 이집트 박물관, 악기 박물관이 있는데

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공원이기 때문에 천천히 쉬면서 시간을 보내기 좋다.

바로 옆에 카도르나 기차역이 있다.

스포르체스코 성 분수대

 

이렇게 인도와 자전거길이 엄연히 분류가 돼있고 자전거 횡단보도도 따로 있다

걸어서 몬테나 폴레오 거리로 가고있습니다

몬테나 폴레오거리가 가까워오니 상가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리에는 악사들이 연주를하며 구걸을 하는것 같습니다

 

시내를 두칸 짜리 전차가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50년대 처럼

이것도 전철인데 객차수가 많습니다

 

 

 

앞에 건물은 프라다 본점건물이랍니다

 

황소자리 모자이크에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여듭니다

 황소의 생식기에 뒤굼치를 대고 세바퀴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기렸는지 움푹파였습니다

 

 

 

시청사 건물이라 하는데 자세히 알지를 못합니다

19세기 중반 유명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 : 건물이 완공될 무렵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에 의해 건립된 이곳은 두오모 광장에서 스칼라 광장까지 이어진 200미터 길이의

대형 아케이드(arcade :열주列柱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군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

 쇼핑공간이다.글라스로 이루어진 드높은 천장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이곳 거리를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어 준다.

스칼라극장


원래 이 극장은 1778년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교회의 터에 세워졌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때 큰 피해를 입었다가 곧 복구되어 1946년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역사적인 콘서트로 재개장하였다.

 파리와 빈의 오페라 하우스와 더불어 유럽 3대 오페라 하우스인 이곳은 오페라 하우스로는

 유럽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오픈한 이래에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한 극장이다. 우리나라 인물로는 성악가 김동규와 조수미가 여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극장 옆의 스칼라 극장 박물관에는 베르디의 유품과 오페라 공연 때 사용하던 무대 의상과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칼라 극장 앞의 스칼라 광장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다 빈치는 스칼라 극장을 바라보며 서 있으며, 그의 아래에는 다빈치의 네 명의 제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Daum백과] 스칼라 극장

네오나르도 다빈치 상

15~16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예술가이며, 주요 작품은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도제가 되어  회화,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훈련을 받았다. 밀라노 대공의 후원으로 17년간
밀라노에 머무르면서 ;최후의 만찬 등의 대작을 그렸다. 회화, 건축, 기계, 해부학 등에서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생애 후기에 그는 그림보다 과학에 매달려 인체를 해부하고 신체기관을 연구했으며, 새의 비행이나 물의 성질 등을 연구했다. 말년에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 의해 '왕의 수석 화가·건축가·기술자'라는 자랑스런 칭호를 부여받았고, 왕의 궁전 근처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이 시기에
신비감을 주는 그림을 소작 남겼고, 과학 연구를 분류·편집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Daum백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멘고니의 설계로 1877년에 완공된 쇼핑 아케이드이다. 특히 밀라노 대성당과 스칼라 광장을
연결하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등이 있어 쇼핑과 먹거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1495년경부터 다 빈치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 빈치의 최고작이자 서양 미술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구성, 빛, 원근법에 대한

그의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통적인 프레스코화 방식이 아닌 마른 회반죽 위에
템페라로 그리는 실험적인 방식을 택했고, 모든 인물의 배치와 동작, 크기는 고도의 계산 아래 이루어져 있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제자들이 예수에게 누가 배신할 것인지 묻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다 빈치는 상징물을 사용하여 각 인물을 드러내는 대신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게 했다.

갤러리아는 십자형태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637피트길이, 나머지는 341피트이다.

둥근 천장은 철제와 유리로 되어있고 정상의 높이는 152피트이다.

 팔각형 마당 위 루네트(lunette : 둥근 지붕이 벽과 접촉되는 곳에 생긴 반원 공간)에는

 네 개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나타내고,

개개의 팔 끝에 있는 루네트는 농업과 예술, 과학, 산업 등을 묘사한다고 한다.

몬테나 폴레오거리에는 대리석으로 마치 실내처럼 장식을 해놨다 너무화려하다

 

두오모성당

밀라노의 두오모는 세계 최대의 고딕 건축이며, 5세기의 세월을 걸쳐 많은 예술가에 의해 완성되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통해 성당에 올라갈 수있다.

두오모의 체적은 프랑스 보베 대성당(Beauvais Cathedral)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이고,

 넓이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두번째이다.왼쪽 금으로된 마돈니나상

두오모에는 135개의 첨탑이 있고, 첨탑 꼭대기에는 하나하나마다 성인이 서있다. 108.5m의

가장 높은 위치의 첨탑에 마돈니나(Madonnina)상이 빛나고 있다.

밀라노의 유명한 습기차고 흐린 기후로 인해, 밀라노인들은 자주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마돈니나가 먼 거리에서도 보이면 날씨가 좋은 날이라고 여겼다.

예전에는 이 마돈니나 상보다 높게 건물을 지울수 없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은 롬바르디아주의 주도 밀라노의 상징이다. 도시의 중심인 두오모 광장에 위치해 있고,

 성모 마리아에게 헌납된 두오모(이탈리아의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을 말하며 대부분 대성당을 의미한다)이다.

밀라노의 두오모는 500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세계 최대의 교구인 밀라노 주교를 총괄하는 수도대주교의 주교좌 성당이다.

이 두오모 광장의 남쪽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가 있고,

 밀라노 스칼라 광장(스칼라 극장)으로 이어진다.

두오모의 건축은 1386년에 대주교 안토니오 다 살루초(Antonio da Saluzzo)와

 밀라노의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의 요구에 따라 고대부터 있었던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당(Sta. Maria Maggiore)의 자리에 지어졌다.

종교 개혁으로 인한 중단을 거쳐 첫 돌이 놓여진것으로부터 약 500년 후인 1813년에 완성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첨탑과 모든 장식이 마무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중인 1943년에 밀라노는 폭격을 받았지만, 이 건물은 연합국 측의 판단으로

폭격을 피했다. 그리고 대전이 끝나고 바로 두오모는 대부분 복구됨과 동시에 나무문을

 청동으로 대체했다.

 

 

왼쪽 금으로된 마돈니나상

외벽의 장식들

성당내부 장식

비토리오 임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 두오모 성당 앞에 세워져 있다.

풀네임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마리아 알베르토 페르디난도 에우제니오 톰마소(

Vittorio Emanuele Maria Alberto Eugenio Ferdinando Tommaso). 사보이 왕가

사르데냐-피에몬테왕국의 마지막 왕이며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

이탈리아 건국 3걸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통일에 큰 기여를 한

인물 중 하나이다. 국부(Padre della Patria)의 칭호를 받았다.

 

전차와 전철 다양한 형태로 운행이된다

스포르체스코 분수대에서

비교적 깨끗하고 우리나라 만은 못해도 괜찮은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속에 갖힌 아침해

시골이라서 그런지 호텔 대지가 엄청 넓어 아침산책도 가능하다

아침 8시에 베네치아로 떠난다

Erste Liebe Meines Lebens
(내 인생의 첫사랑)
Monika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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