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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탈리아 로마 시내관광

  

 

로마 이 외의 도시에서 이 문 안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 로마시는 75유로의 출입료를 물린다고 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로마는 경차나 오토바이를 제외한 일반차량에 대해서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한다.
로마에 <모닝>처럼 작은 차와 오토바이가 많은 이유는 바로 이런 세금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숙소에서나와 로마 시내로 들어가며 로마의 휴일 영화를보며 이동합니다

 

콜로세움


콜로세오는 72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원형 경기장으로, 80년 베르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총 5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기장이 그 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 데 30분, 퇴장하는 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개폐형 지붕과 같은 놀라운 시설을 갖춘 콜로세오는 2007년 새롭게 선정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1층부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는 이 경기장에서는 맹수의 시합이나

 검투사 경기가 개최되었고,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으며, 1층은 귀빈석, 2층은 일반석, 3층은 입석으로 이루어졌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다가, 450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경기를

중지시키면서 끝이 난다. 이후 콜로세오는 지진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중세 교회를 짓는 재료로

쓰이기 위해 외벽 절반 이상이 뜯기게 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는 못해 아쉽지만

 2,000년 전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의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 옆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이 서있다. 폼페이의 티베리오 개선문과 흡사하다.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라이벌 막센티우스를 밀비아누스 다리 전투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해 315년에 세운 승리의 개선문이다. 높이 21m의 개선문 벽에는 그의 업적과

전쟁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다.

 

 

 

 

 

고고학자들과 건축가들에 따르면 콘크리트와 바위로 된 거대한 타원형의 축대를 세우고

그위에 콜로세움을 세웠는데 건물의 엄청난 무게와 지진의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함 일설에 따르면 0070년 에루살렘을 정복한 티투스는 10만명 가량의 포로를

로마로 데리고와 그중 4만명을 콜로세움 공사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내부 전체를 수리중이라 겉 모습만 보게됩니다

개선문의 뒷모습

 

팔라티노 언덕(Monte Palatino)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병사들에게 그늘을 내어주었다는 소나무 길을 오르면 팔라티노 언덕이 나타난다.

로마의 초대 왕이었던 롤물루스와 쌍둥이 동생 레무스가 언덕에 있는 동굴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건국 신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로물루스를 따라 많은 황제와 귀족들이 이곳에 저택을 짓고

 살았으며 신화 속 동굴 위에 세웠다는 로물로스의 집과 아우구스투스의 저택 등이 남아 있다.

도심의 중심에 있어 유려한 전망으로 유명한 팔라티노 언덕에선 대전차 경기장과 테베레 강,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대전차경주장 벤허에 등장하는 곳

팔레티노 언덕아래 마차경기장이 있다. 여기서 2두.3두. 4두마차가 경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벤허” 영화의 경기 장면이 떠오른다.

( 2008.4.5.)에 84세로 고인이된 영화의 주인공 주다 벤허( 찰톤 헤스톤)의 광채나는 눈동자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마차의 바퀴가 생생히 떠오른다.

마차 경기장은 길이 664m. 넓이 124m 에 이르고 기록에 의하면 관광객석만 2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라니, 로마 제국이 이곳에서 말 발굽소리를

내기시작하면서부터 약소국을 짓밟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성 베드로 성당 :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베드로 무덤에 세워진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개축이 시작되어 마침내 1626년 교황 우루반 8세때 성베드로 성당으로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며 성당 내부에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이 있다.

베네치아 궁전 국기가 걸려있는 저 발코니에서 무소리니가 세계2차대전을

군중을향해 선포한 곳이라고함

 

베네치아 광장에서 보이는 통일 이탈리아를 이룩한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과 기념관
타이프라이터 처럼 보인다고 해서 저 건물의 별명은 타이프라이터이다.

관광객을 실고 유람하는 마차

각종과일과 음료수들 이탈리아에서 가장 싼게 포도주 같다 한병에 대략 5천원

트레비 분수

고대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처녀의 샘(Aqua Virgina)’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로 만든 것이다. 분수의 정면 오른쪽 위에 이런 일화를 담은 조각품이 있다.

고대 로마 시대는 풍부한 수원과 총 14개의 거대한 수도망이 있었고 로마 전역에 물을 공급했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많은 이민족들이 침입하면서 이 수로망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물 부족은 15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로마를 재정비하려던 교황들이 여러 수도교와 분수를 만들면서 해소되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이 트레비 분수이다. 평범했던 이 분수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13세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에게

 명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은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 걸작품이라고도 한다.

이 트레비 분수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스페인 계단’이 유명해졌듯이,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에서 주인공인 마스트로이안니와 여주인공이 분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레비 분수의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며, 양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다. 종종 테베레 강이 범람해서 이곳까지 물에 잠길 때가 많자 바다의 신을 만들어 이를 막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

 건물 제일 위를 보면 라틴어로 ‘CLEMENS VII’라고 클레멘스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AQVAM VIRGINEM이라고 적혀 있는데‘처녀의 샘분수’라는 것을 명명하고 있다.

양쪽에 있는 4개의 여인 조각상은 4계절을 상징한다.

로마 시대 때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도 시설이었던 것을 1732년 개선문을 본딴 벽화를 배경으로

바다의 神 '트리톤'과 양 옆에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는 여신의 조각상으로 아름다운 분수를 만들었다.

 

트레비는 삼거리란 뜻으로 세개의 길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분수대에는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번 던진 동전은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ㅡ     두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워지고ㅡ

세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스페인광징은 스페인대사관이 있어서 부처진 이름 앞에건물이 스페인 대사관

 

스페인 계단

스페인 계단은 로마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래 시 당국은 포폴로 광장이 중심지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늘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스페인 계단은 총 137개의 계단으로,

늘 수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스페인 계단의 원 명칭은 ‘트리니티 데이 몬티 계단’이다. 이 계단은 트리니티 데이 몬티(Triniti dei Monti) 성당으로

 가는 길을 잇기 위해 1726년에 만든 곳이다. 이곳에 주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으며,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에티엥이 1723년 기부금을 걷어 스페인 대사관을 설계한 스펙키와 데 산티스에게 부탁함으로써

스페인 계단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페인 대사관 앞에는 큰 기둥 탑이 하나 있는데 로마 제국 시대에 건물을 지지하던 기둥을 하나 가지고 와서

 1854년 피오 9세에 의해 선포된 ‘무원죄 수태교의(마리아는 아무런 원죄가 없다라는 교의)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했다고 한다.

스페인 계단에서 괴테, 바이론, 스탕달, 발자크, 안데르센 같은 최고의 작가들이 그들의 감성을 키웠다고 한다.

 지금도 스페인 계단에는 키츠가 한때 살았던 집에서 늘 전시회가 열린다. 아직도 젊은 문학도,

예술가들은 이곳을 찾아 자신의 창작열을 드높이고 있다.

 

  바르카차분수

                 물에 반쯤잠긴 오래된 배모양의 분수는 이탈리아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베르니니가

                만든것으로 트래비 분수와 함께 가장 맛있는 물로 유명하다

        바르카차 분수는  홍수로 떼베레 강이 범람하면서

배가 스페인 광장까지 떠 내려 왔는데 이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작은 조각배 모양으로 제작 했다고 한다

스페인광장.

스페인계단

137개의 로마에서 가장 길고 넓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스페인 광장'은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고

'로마의 휴일'의 공주인 오드리 헵번이 계단에 앉아 아이스 크림을 먹는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위로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 삼위 일체 성당)이 자리하고

계단 아래로는 명품을 파는 거리로 항상 북적인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햇번이 스페인계단 난간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장면

마르셀로극장

         이 로마 시청사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 폴록스 형제의 기마동상이 서 있더라!

 

로마시청사나, 서양화가 정정신이 서있는 뒤로 보이는 건물이 현제 로마시청!

                             시청사 아래로 보이는, 가운데 동상은 보라빛 옷을 입고있는 전쟁의 여신인 '미네르바'이고,

                                  왼쪽엔 로마를 흐르는 테베르강의 신, 오른쪽으로는 나일강의 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 콘세르 바토리'

캄피돌리오 광장에 서니, 중앙에 지금 로마 시청으로 쓰고있는 '세나토리오' 궁전이 보인다.
  양 옆으로는 오른쪽으로 ' 콘세르 바토리' 궁전과 왼쪽의 누오보궁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두궁전을 '카피돌리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위에 좌측에 있는 궁전은 누보이궁전

                                            , 로마제국 16대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의 동상으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로서 존경을 받은 로마제국의 다섯번째 현제(현명한 황제) 란다.

미네르바

마메르티노 감옥( 성베드로가 갇혔던 지하감옥).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 세베루스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해 203년에 세워짐) 등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고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있는곳이다.

포로 로마노 유적지는 유명한 “시저”가 친한 친구인 브루투스의 칼에 찔러 죽으면서 “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브루투스는 “ 나는 시저를 사랑했다. 그러나,로마를 더 사랑했다”

는 말로 자신을 변호하는 기록이 있다고 전해진다.

 

포르노마노언덕 역광이라 선명치가 않습니다

포로 로마노 (로마인의 광장) 유적지

 

콜로세오에서 성스러운 길이라는 의미의 ‘Via Sacra’ 거리를 따라가면 포로 로마노를 만날 수 있다.

팔라티노 언덕과 연결되어 있는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시대의 민주 정치와 상업, 법률의 중심지였다.

포로 로마노는 여러 황제를 거쳐 오면서 발전했지만, 5세기경 로마가 분열되면서 이곳 대부분의 건물들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여러 시대를 거쳐 온 다양한 시대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얼핏 보면 폐허와 같은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예전의 번성했던 로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포로(Foro)라는 말은 ‘포럼(Forum)’, 즉 ‘아고라’와 같은 공공장소를 지칭한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로마인들이 모여 생활하고 살던 중심이며

계속 발굴이 되고 있는 곳으로 사법, 정치, 종교 등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곳이다.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 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원로원, 에트루리아 왕에게 대항한 로마 반역을 추모하기 위한 사원,

로마의 중심부로 쓰인 아우구스투스 개선문 외 많은 건물들의 잔해가 있다.
주변으로 고대 로마의 중요한 건물들이 있었으나 4세기 말에 서고트 족의 침입으로 황폐화되었다

 

왼쪽으로 '사투르누스 ' 신전의 기둥들이, 정면 중앙으로는 '카스트로 폴록스' 신전이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긴줄이 서있어서 밖에서 찍을 수 밖에

진실의 입 Bocca della Verita 바로 요것!

바다의 신 트리톤이 진실을 심판한다는 곳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복도에 있어요~

원반에는 바다의 신 트리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먹어버린다는 설이 전해진답니다 딱 요거만 있는데

본래 헤라클레스 신전의 하수구 뚜껑이었다는 설도 있고

가축시장의 하수구 뚜껑이었다는 설도 있답니다~

이게 유명한 이유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남자 주인공 조가 손을 넣고 물린 척하는 장난을 쳐서

유명해진 곳입니다

 

 

 

 

 

싼타마리아 코스메딘성당

코스메딘 싼타마리아 성당은 로마에 있는 중세 성당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아름다운 바닥 모자이크와 대리석 장식이 돋보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7층 높이의 종탑이 있는 아주 검소하고 작은 성당에는

바다의 신 트리톤의 얼굴 모양의 둥근 원형으로 만들어진 '진실의 입'이 있다

로마의 휴일에서 조(그레고리펙) 조사 받던 그경찰서

 

판테온 신전( 일명 萬神展)

외형은 남루한데 내부는 신전답게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 라며 극찬했던 로마 최대의 원형건물로 가장잘 보존되어 있는 고대 건물로서

 서기 118~128년경에 세워졌다는데 높이가 43.2m. 벽뚜께 6.2m. 천정에 지름 9m 의 원구가 뚫여 있는데

 28열 격상의 모양이 모두 한개의 돌로 이루어져 수수께끼 란다.

 

그 원구로 빗물이 스며 들어와야 정상인데 내부의 공기가 세차게 치오르는 기류가 생겨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내부로 빗물이 들어오지 않아신비를 더해주고 있어 서양 건축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단다.

그 내부에는 제우스. 아폴로.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등 일곱 지상신을 모신 것을 비롯, 라파엘로등

이탈리아 왕들이 매장된 국가적인 묘소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벽만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9m 원구로 자연조명이되고, 기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시절 어떻게 이 높은 곳에 돔으로 건축을 했을까 놀랍기만합니다

 

 

 

 

 

 

바닥이고 벽면이고 기둥이고 천정이고 소흘함이 없는 거대한 예술작품에 눈을 뗄 수 가 없습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 한자어로 하면 ‘전신(全神)’이라는 뜻으로 다신교인 고대 로마에서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전이다.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물이라고 칭한 곳으로, 죽어 여기에 묻히기를 희망했으며 현재 그의 묘가 있다.

이 판테온 양식의 지붕인 돔은 이탈리아 전역 어디에서나 성당이나 건축물의 훌륭한 교본으로 사용되었다.

이 돔 양식은 현존하는 로마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판테온은 기원전 27년에 아그리파(아우구스투스 대제, 즉 케사르를 계승한 인물인 옥타비아누스 대제의

 사위)가 만든 것이다. 신전으로 사용되다가 80년에 화재를 입었으며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약 120년대) 때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이때 남쪽을 향해 있던 건물의 문을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로톤다 광장을 조성했다.

위로는 지름 9m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43.3m이고 바닥의

 지름도 43.3m이며 1873년에 복원된 것이다. 판테온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콘크리트로 만든

아치로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 부분의 벽은 두껍고(5.9m) 위로 갈 수록 얇아져서

 건축물의 하중을 최소화했다. 꼭대기의 벽 두께는 1.5m이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이탈리아 건국의 영웅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묘가 있다.

성모 마리아 상 아래는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코린트식의 웅장한 기둥

판테온에는 총 16개의 기둥이 있는데 기존의 이탈리아 건물들의 기둥과는 다른 색의 화강암이며 코린트 양식을 갖추었다.

 609년 비잔틴의 포카스 황제가 교황 보니파치오 4세에게 이 건물을 공식적으로 기증했다.

이를 받은 교황은 이 건물을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당으로 바꾸었다.

입구의 상단에는 이 건물을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내용의 글(MAGRIPPAIFCOSTER···)이 써 있다.

 입구에 있는 청동문은 이민족이 침입한 5세기 때 신성 로마제국 시대의 약탈과 이후 바티칸 건축 시에

 사용되어 지금 보는 것은 1500년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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