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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독일 하이델 베르크 성

바티칸을 끝으로 우리는 L.H 239편으로 18시40분(2시간소요)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암미인 공항에 도착 바로 숙소로이동 Holiday Inn By Express Frankfurt Airport

호텔에 투숙합니다

 

역시 잘사는 나라여서 인지 호텔도 깨끗하고 침실도 넓고 부대시설도 잘되어있다

우리나라의 호텔이 얼마나 좋은지 여행 다녀보면 압니다 우리나라 모텔 수준도

못되는 곳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밖 풍경을 담아봅니다 아침노을이 아름답습니다

호텔 외부 모습입니다

주위에보니 숲이 아주 넓습니다 도시가 이렇게 드넓은 숲으로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솟아오르는 해를보며 우리는 하이델 베르그로 이동을합니다

한없이 펼처지는 들판에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주위에 흐르는 개울에는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처럼 투명하고 깨끗합니다 그만끔 폐수처리를 완벽하게 잘 한다는 것이겠지요

들판 가운데에 있는 주택들 농촌가옥 같은데 도시의 주택처럼 깨끗하고 거대합니다

역시 공기가 참으로 맑습니다 매일 이렇게 맑은 공기가 지속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 부러움을 가득 안고 바라봅니다

넓은 들을 지나 어느 좁은 길로 꼬불꼬불 겨우 버스가 경사길을 올라가 주차장에 파킹을한다

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옛 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낭만주의의 중심지

 하이델베르크는 넥카강과 라인 강이 합류하는 독일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1142년 소나우 수도원을 세우면서 보름스 성곽을 발판으로 조그만 촌락인

하이델베르크로 발전하게 되었다. 1196년 처음으로 쇠나우 수도원의 문서에

 하이델베르크라는 말이 나타났다. 1386년 제국의 7대 선제후 중의 하나였던

 궁중 백 루프레히트 1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하이델베르크는 젊음의 도시 대학가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을 면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고성들을 고스라니 보전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는 고전 영화인 〈황태자의 첫사랑〉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칼스버그의 황태자가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가면서 사랑이 시작되는데,

대학 도시의낭만 넘치는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으니,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기 전 미리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듯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는 독일 라인 강의 지류, 네카르 강변의 대학도시·관광도시이다.

인구는 약 14만 5,000(2007)이다. 1386년에 창설되었다는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있으며,

이를 무대로 한 희곡 〈알트하이델베르히〉는 유명하다. 아름다운 고성(古城)과 함께

 독일 유수의 관광도시이다.

 

 

엘리자베스의 사랑의 문입니다 이문을 부부가 같이 지나면 백년해로를 한다고 합니다

프레드리히 5세가 영국출신 왕비 엘리자베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하룻밤 사이에

완성했다고 하며 엘리자베스 사랑의 문으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혼자 지나가면 백년해로를 못할까 아리송 ㅋㅋㅋ

 

하이델베르크 성의 정원은 1616년 착공해 1619년 완공되었습니다.

 프레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

(Electress Palatine and queen of Bohemia, 1596. 8. 19 – 1662. 2. 13)를 위해

 정원을 만들 것을 주문하여 정원 건축가 살로몬이 설계하였습니다.

 전망대에는 괴테에대한 설명도 있습니다

이델베르크 성은 1225년 축조된 이래 증축을 거듭하였으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성이다. 1537년 낙뢰를 맞아 파괴되자, 당시 산허리 부분에 있던 성을

 재건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 후에도 30년 전쟁 등으로 황폐해진 성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성에는 18~19세기의 의료용품을 전시하는

 독일 약제 박물관이 있으며, 성의 지하에는 1751년에 만들어진 높이 8m의 거대한 술통이 있는 술 창고가 있다.

 이 술통은 전쟁 때 식수가 부족할 것을 대비해 와인을 채워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22만 리터의

 술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와인을 팔고 있으니 기념으로 한번 마셔 보는 것도 좋다.

[Daum백과] 하이델베르크 성 – ENJOY 유럽,

성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시내의 전경이 아름답고, 네카어 강과 카를 테오도르 다리도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여행 시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지다.

성 정원에는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라는 괴테의 시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괴테는 이곳에서 유부녀인 빌레머 부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그 마음을 담은 〈서동시집〉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성 입구에 있는 엘리자베스
문은 프리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아내 엘라자베스를 위해 세운 문이다.

[Daum백과] 하이델베르크 성 – ENJOY 유럽, 문은정 외, 넥서스

프랑스군의 폭격으로 벽면만 남아있다

 

하이델 베르그의 중심부

 

왼쪽에 우리가 버스로 올라왔던 좁은 길이보입니다

성 전망대에서 한컷

대학 건물과 칼 데오도르 다리와 다리 건너편에 갈지자의 철학자의 길이 보입니다

 

 

성안에 있는 시계탑

하이델 베르그 성 안내도입니다

성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성의 역사

 하이델베르그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성의 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부분에는 오토-하인리히 건물과 프리드리히 건물이 있습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에서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교회 간에

 종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30년 전쟁이고 이 전쟁 기간 동안

 하이델베르크 성은 양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점령당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30년 전쟁이 끝난 이후 재건축 작업에 착수했으나 1689년과 1693년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제대로 된 복원 작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은 더욱 더 황폐해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성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1764년 번개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성의 일부가 또다시 훼손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이후 지역 주민들은 폐허가 된 성에서

필요한 돌이나 자재들을 날라갔습니다. 이러한 하이델베르크 성의 훼손에 대해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성은 유럽을 뒤흔든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왔으며,

지금은 그 무게로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앙의 뾰쪽한 건물의 상단에 해시계가 있는데 흐미해서 잘 안보입니다 

해시계입니다

전쟁으로 다 파괴되고 벽면만 남은 모습 역사의 증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듯하네요

 

 

프리드리히 궁전의 조각상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첬는지 짐작이 갑니다

 

프리드리히 궁전 지하에는 약사 박물관이 있고 거대 포도주 통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큰 와인통인데 기네스북에 등재된 엄청난 술통입니다

길이 8.5m 높이7m저장량 221.726리터 입니다참나무 130그루가 사용됐다고

하고 1756년 카를 데오도르에 의해 만들어 젔다고 합니다

전쟁때 식수를 구하기 어려워 술을 비축해 놨다는 설도 있고 왕이 술을

너무 좋아해 술통을 크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주 칼 테오도르는 독일의 정치적 통합을 위해 각 지역의 귀족들을 초대하여 만찬회를 자주 열었는데,

        한번 모일 때마다 3-4천 리터 이상의 포도주를 소비하였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커다란 포도주통으로도 모자라서 만찬회 중간 이후에는 포도주 10%에

 다른 술과 물을 섞어서 내놓기도 하였다.

        이 통 맞은 편 벽에는 궁정의 익살꾼 난장이 페르케오(Perkeo=warum nicht?)의 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영주 칼 필립의 총애를 받던 이로 하루에 18병분량의 포도주를

15년 동안 마신 애주가였다고 한다.

 

 

와인통을 지키는 난쟁이 페르케오목상

전쟁중에 와인통을 지키기위해 빨간머리 난쟁이를 고용했는데

몰래 하루에 18 리터의 술을 15년동안 마셨고 취해서 잠만자곤 했는데

병사들이 난쟁이를 깨우는 일까지 있었다네요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도 난쟁이는 80세까지 살았다고 함

의사가 건강이 않좋으니 술을 끈으라 했는데 그다음날 죽었다는

이야기

대학가와 성령교회 시청건물등이 보입니다

프리드리히 궁전

전쟁으로 파괴되어 다시 건립했다지만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옛날 궁전으로 사용하던 이 건물 앞에는 움푹 패인 발자국 하나가 있다.

 

옛날 이 성의 제후가 전장에 나간 틈을 이용하여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제후가 소문을 듣고 급히 돌아오자 남자가 2층에서 뛰어 내렸는데,

그때 찍힌 발자국이라고 한다.

지금은 발자국을 맞춰보아서 맞는 사람은 바람을 잘 피우는 사람이라는 속설이 있다는.

 

 

네카강변 저너머에 주택들은 꼭 별장 같은 분위기 전형적인 서양의 휴양지풍입니다

 성을 벗어나 이제 마르크트 광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무엇이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1701년에 세워진 시청건물. 광장에는 헤라클레스 분수대와 동상입니다

 

마주 보이는 오래된 건물 기사회관의 건물이 참 예쁘다.

 프랑스사람에 의해 세워진 프랑스풍의 우아한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꼬불꼬불 뾰족하게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나무처럼 세모꼴로 올라간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건물의 외관이 무척 화려하다.

 1592년에 지어져 파괴되지 않은, 남아 있는 몇 개 안 되는 건물의 하나로 외관문양이 화려한 붉은

사암으로 된 건물로 지금은 호텔로 쓰인다. 사백년이 넘은 건물이다. 우리로 보면 거의

임진왜란 때의 건물이다. 

마르크트광장 주위의 가게 풍경들  사진은 성령교회에 딸린 가게들입니다

서방에서는 교회의 제정상태가 어려워서일까 직영인지 세를 준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볼수 없는 광경입니다

 

 

                                                                      Spanish Eyes - Al Mart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