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에델 베르그 대학들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하이델베르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도시이다 .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1836 년 로마 교황의 허가를 받아 프리호트 1 세가 설립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독일 대학 역사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 . 철학자 헤겔이 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여 더욱 유명하다 . 또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되었던
하이델베르그에는 여전히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낭만과 젊음이 가득하다 .
학생감옥
학생감옥은 한국식당 돌아가면 있습니다과거 대학이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던 시기,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학생들 내부 규정을
어기는 이들을 벌하기 위한 감옥이 필요했고, 대학 자체에서는 학생감옥을 운영하였다.
이 과거의 유산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이후 이 기능은 점차 대학생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되어서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 즈음 이 곳에 머물게 되는것을
영예롭게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왠낙서가 이렇게~~
마르크트광장의 성모마리아상
마르크트 광장과 하우프트 슈트라세
두 곳은 모두 하이델베르크의 활기찬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마르크트 광장은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의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성령교회, 시청사 등이 있다. 또 하우프트 슈트라세(Hauftstrasse)는 레스토랑, 상점, 기념춤 가게 등이
빽빽이 늘어서 있는 활기찬 거리. '붉은 황소', '제펠하우스' 등의 비어가든이 유명하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620년 깊은 역사를 지닌 대학으로
괴테, 칸트, 헤겔, 야스퍼스, 베버 등의 철학자들의 발길이 머문 곳이며
특히 자연과학부문에 있어 여덞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낼 만큼 유명하다.
원승이의손을만지면 행운이 오고 손가락을 만지면 하이델베르그에 다시오고
원숭이가 들고 있는 청동 거울을 만지면 부자가되고 머리의 빈공간에 머리를 넣으면
지혜롭고 똑똑해 진다고합니다
교량탑과 칼 테오도르 다리
옛다리(Alte Bruecke)라 불리는 칼 테오도르 다리(Kari Thedor Brucke)
네카강에 놓여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 '철학자의 길'에서 슈랑겐 골목으로 내려오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칼 테오도르가 1786-1788년에 개축하여 이 다리의 본래 이름은 칼 테오도르 다리이지만,
시민들은 그냥 구다리(舊橋)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다리위에는 이 다리를 만든 테오도르상과 여신 아테나상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성의 경관이 일품이다.
또 다리의 입구에 있는 흰색의 쌍둥이 탑문은 외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이다
칼 테오도르 동상 아테네의 여신상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
하이델베르그의 산책길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노이엔하임 교외에 있는 베르크 거리에서
출발하여 기슭으로 올라가는 거리이다.
도보로 약 1시간 가량이 소요되며, 정상에서는 시내와 하이델베르그 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강 건너 장엄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헤겔, 야스퍼스, 괴테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철학적인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칼 테오도르 다리에서 바라본 하이델 베르그 성
네카강
독일 남서부를 흐르는 라인강의 오른쪽 연안 지류. 총길이 367㎞.
슈바르츠발트 부근의 높이 706m인 네카어 습지에서 발원하여,
슈바르츠발트와 슈베비슈 할 사이를 북쪽으로 흘러 만하임에서 라인강에 합류된다.
유로(流路)는 완전히 운하화되어 라인강으로부터의 대형선이 네카어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연안에서는 포도재배가 성행한다.
슈투트가르트, 하일브론 등의 공업도시가 입지해 있고 만하임 동쪽으로는 대학도시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가 있다
칼 테오도르 다리에서 인증
쥐를 만지면 다산의 축복이 있다고 합니다
13세기초에 건축된이래 거듭증축되어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등의
다양한 양식이 복합되어 있는 건물들
칼 레오도르 다리 부근에 있는 기념품상입니다
마르크트 광장은 전에는 죄수들의 공개 처형하였던 무시무시한 장소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이쁜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가 열린다고 하였다.
중앙 분수 주변에는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가 많아 관광객이 많았다.
헤라클레스 상이 있는 중앙 분수를 지나 우리는 붉은 빛의 성령 교회를 찾아갔다
성령교회
교회는 1693년 전쟁에서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중 하나인 성령교회(1400~36 건축)이다
당시 개신교회와 카토릭교회 사이에서 몇번씩 오가는 분쟁이 있었던 역사적인 교회인데
그후 지금은 개신교 교회이다.
성전 내부를 보면 구교(카톨릭 성당)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한때 루터파와 칼빈파와의 신학적 논쟁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학적, 그외 중요한 역사적인 자료들이 이곳에 보관이 되었는데 하이델베르그대학측에서
이 자료들을 뻬돌려 그들이 보관되고있기에
지금도 반환 소송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령교회 내부
1693년 전쟁에서 파괴되지 않고 남은 고딕 양식의 건물 중 하나가 성령교회입니다
당시 개신교회와 카토릭교회 사이에서 몇 번씩 오가는 분쟁이 있었던 역사적인
교회인데 그후 지금은 개신교 교회입니다
스테인그라스
정면에 보이는 스테인글라스는 독일의 한 미술가가
일본 히로시마원폭때 줏어온 재료들을 모아 스테인그라스 로 만든 작품이라고 들었다
히로시마 원폭을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특히 많이 찾는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촬영한 주점이다.
하이델베르그 대학으로 유학온 칼스버그 왕실의 황태자와 하숙집 딸과의 슬픈 사랑이야기
유럽의 가상국가 칼스버그의 황태자 칼 프란츠는 황제의 명에 의하여 스승 엥겔 교수와 함께
하이델베르그 대학으로 유학온다. 그는 곧 데틀레프, 루카스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폰아스터부르크 백작과는 다투기도 한다. 그리고 황태자는 호텔 주인의 질녀 케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황태자는 이미 이웃 나라 마가렛 공주에게 정혼된 몸이고,
황제가 서거하면서 귀국하게 된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황태자는 2년 뒤 황제의 자격으로
하이델베르그를 방문하여 케시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케시는 황제를 위하여
자신은 곧 다른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황제는 귀국하여
그 아름답던 하이델베르그 시절을 회상하며 노래부른다.
네카강의 다리위로 전차가 지나고 있습니다
네카강의 모습을 또 담아봅니다 언제 또 내가 여기에 올지 기약은 없지만
떠나면서 아쉬움이 남아 자꾸 샷다를 누르게 됩니다
이제 프랑크푸르트로 떠납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연합이 출범한 이래 유럽중앙은행이 위치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금융, 상업도시입니다. 독일 최대 공항이 있고, 수많은 박람회가 개최되어 세계 곳곳에서
여행객들과 사업가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호 괴테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미래학자 철학자인
현재 활동하는 최고의 철학자 중의 한명으로 손꼽히는 위르겐 하버마스를 키워낸 곳이기도 합니다
뢰머광장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뢰머 광장은, 프랑크푸르트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뢰머라는 말은 ‘로마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광장이 고대 로마인들이 정착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던 세계 최초의 박람회 때 참여했던 로마인들이
머물렀던 숙소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15세기 초 이 광장에 있던 저택 3채를 시에서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하면서 중심 광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1562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구시청사 2층에서 거행되기도 했다. 광장 주위에는 구시청사 이외에도 대성당과 니콜라스 성당
등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동상이 있는 분수대가 있다.
이 분수대는 1543년에 세워진 것으로 여신상 오른손에는 검이, 왼손에는 저울이 들려 있다.
[Daum백과] 뢰머 광장 – ENJOY 유럽, 문은정 외, 넥서스
중앙에 리콜라이 교회
시청사 오른쪽의 하얀 외벽과 빨강색 벽돌로 지은 고딕식 니콜라스 성당은 14세기까지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1405년 시청사가 만들어진 이후 개신교인
루터교회로 바뀌었는데, 종탑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세 번 종이 울린다고함
니콜라이교회와 정의의 여신상
광장 중앙에는 1543년에 세운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Justia)의
동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와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 디케(Dike; Justia)는 개인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자를 칼로 제재하는 정의의 여신이다.
저울은 법과 정의의 형평성 공정성을, 칼은 엄정한 심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유스티아는
오늘날 정의(Justice)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뢰머베르크 대성당 (성 바돌로메오 돔)
라인강 연안에 세워진 대성당은 뢰머 광장을 끼고 동쪽으로 자리잡고 있다.
95m의 높은 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위풍당당히 서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서,
1562~1792년 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곳으로 '카이저 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식으로는 성 바돌로메오 돔이라고 부른다. 돔의 전신교회는 프랑크 왕국시대의
7-8세기로 보며 1152년 이래로 황제나 국왕이 선출되던 곳이다. 역대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며,852년 카롤린 왕조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후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갈색 건물의 대성당은 975년 건축하기 시작하여 1239년에
완성되었는데 계속되는 화재와 전쟁으로 재건과 복구를 거듭한 후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곳은 14세기에 돔의 상단부와 성당의 중랑을,15세기초에 천정부 및 지붕부를 완성하였다.
검고 중후한 지붕이 인상적인 동탑은 19세기 때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장식이 많은 서탑은 1767년 벼락으로 불탄 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미사 시간 외에는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보물창고(Domschatz)에는 추기경과 사제들이
입었던 호화로운 가운이 있고,탑 안의 어두침침한 332계단을 통해 95m높이의 꼭대기에
이르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높이 95m인 탑은 1415년에 건축되어 1877년에
완성되었다. 탑에도 올라갈 수 있는 대성당이므로,걷는데 자신있는 사람이라면 332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이 탑위에서 프랑크푸르트의 전경을 바라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곳에는 14C 양식의 성가대도 존재한다
프랑크 프르트 시청건물
뢰머광장은 각각 개성 있는 건물들로 사방이 둘러싸인 것이 커다란 특징인데, 광장 남쪽인 구시청사는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서진 것을 재건한 건물이다. 2층의 넓은 홀은 1562년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장소여서 ‘카이저 자르(Kaiser Zar)’라고 하는데,
2층 황제의 방에는 역대 신성 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특히 3개의 건물 중 가운데 건물 2층에는 다른 건물과 달리 발코니가 광장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이곳은 대관식을 마친 황제들이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장소라고 한다.
뢰머광장은 지금 크리스마스 축제와 기념품상과 먹거리 상점들의 임시건물들이
설치돼 있고 지금도 계속 건물을 조립하고 있다
임시건물들이 이렇게 예전부터 있던 것 처럼 보입니다
유럽은 카톨릭신자가 많은 지역이다보니 우리나라의 설날처럼 크리스마스는 아주 큰 명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그런지 저때가 11월 하순인데 너무나 크리스마스 분위기
프랑크푸르트 하면 뢰머광장. 밖에 볼게 없다는데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가건물 가게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광장이 아니라 상가로 변모해버렸습니다
극장 건물 같습니다
뒤건물 시청사 발코니는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도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인으로는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축구팀 선수였던
차범근(Cha Boom) 선수가 UEFA 우승트로피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구내의 기둥 벽에는 차범근 선수의 사진이 걸려있다고 한다.
마네킹이 아닙니다 사람이 변신을 했는데 사진을 찍었더니 돈을 내라고 합니다
이제 돌아 갈 시간 유로를 다 털어버리고 없는데 어쩌나 난감
프랑크푸르트 대중교통수단 전차입니다
성바울교회
1789년 부터 1833년에 걸쳐 세워진 네오클래식 분위기의 원형 교회이다.
이곳에서 1848년,독일의 제 1회 국회가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즉,이것은 첫 독일 국민의회가 헌법을 기초하였으며,그 후 100년 뒤 독일 연방기본법의
근간이 되었다. 독일국기의 검정,빨강,노랑색도 이 때의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결의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장중 한 느낌이 드는 교회인데,
현재의 건물은 제 2차세계대전 후 재건된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 지은 새로운 교회로서,
이곳에서현재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견본시 Buchmesse의 평화상과 괴테상의
시상식을 하고 있다. 다시말해,현재에도 자유와 통일,민주주의의 심볼로서 회의장으로도 쓰인다.
지금은 교회로서의 기능은 빈약하고,주로 경축 및 제전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성바울교회 옆에 세워진 유태인 학살의 고통을 형상화 한 조각상
시계방향으로 괴테의 집 괴테동상 괴테 초상화 괴테 서제
괴테는 독일 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시·극·소설뿐만 아니라 과학자·정치가로서도 업적을 쌓은
사람이다.그는 프랑크푸르트의 명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재질을 보였다.
그의 일생은 보다 높고,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 하는 데에 바쳐졌다.
그의 소설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외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이 유명하다. 극으로는 죽음을 앞두고
쓴 그의 불후의 대작 《파우스트》가 있으며, 그 밖에 자서전인 《시와 진실》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광장에 있는 괴테 동상과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 코메르체방크 타워가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괴테를 극찬했다
"이제껏 괴테만큼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인간이 있었던가?
괴테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괴테를 사랑한 사람은 니체만이 아니다. 헤겔, 쇼펜하우어, 토마스 만 등도
자신의 저서에서 괴테의 글을 인용했고, 모차르트, 슈만,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바그너, 말러도 괴테의 작품을 이용하거나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괴테 초상화
독일화가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타인이 그린 이탈리아
여행중의괴테(1787)
서재에서 괴테는 그의 동생 코르넬리아와 함께 공부했다.
괴테 아버지의 직업은 황실 고문관이었다.
명예직에 가까워 남는 시간을 자식 교육에 쏟았다.
직접 괴테와 코르넬리아를 가르쳤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은 일일이 가정교사를 두어 가르쳤다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
보행자 전용다리 이이제르너 다리
이로서 유럽 5개국 여행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이동하는데 숲이 발달한 서양
숲인가하면 도시 도시인가하면 숲 살기 좋은 프랑크 푸르트입니다
이제 장장 10시간 반 비행기를 타려니 즐거움도 잠시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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