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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 이바구길 2

 

소설 이야기 공원에서 출발하며 이정표를 잘봤어야 되는데 여기 구세군을

 범일성당으로 착각을하고 계속 올라와 버렸으니 국제상사 양정모회장

옛집을 찾는데 정말 어려웠다 겨울인데도 땀을 흘렸으니 운동하는샘 처야지~~

6번길에서부타 착오가 생겼다

 

 계속 올라가며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석불사를지나 무작정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 오른쪽으로 오르니 아주머니들 몇분이

계시는데 알고 있는 분이 딱 한분 알려주는데 반대편으로 또 가란다 여기 범일동 길은

골목길도 좁지만 마차 미로 같아서 찾기가 정말 불편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오늘 여러곳을 많이도 헤매고 다녔지만 또 찾았다

 

 

 

70년대 국제그룹 회장의 집 앞이다.

세월의 흥망성쇠가 느껴진다. 70년대 한국재계 7위권에 속하던 국제상사 양정모 회장도

망하면 아무것도 없다. 당시 신군부의 괘심죄(?) 를 받아 몰락하였다고 훗날 말이 많았다.

현재는 한식집으로 바뀌어져 있는데 아직도 쓸 만하다. 1백평은 넘어 보인다

 

문이 굳게 잠겨 들어 갈 수도 없고 밖에서 몇장 담아본다

 

 

야생화의 노래

반야사 사찰의 담벽에 야생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싯글이 붙혀져 있다.

반야사 안쪽으로 들어가니 조그만 정자가 있고 정원이 잘 단장되 있다.

 ‘좋은 인연입니다’ 라는 안내글이 나온다. 그래 시절 인연이니까

이렇게 보고 느낌을 자아 내는 것 아니겠는가.

  

여러 가지 야생화 그림으로 장식한 암자의 담장!

그리하여 '야생화의 노래'라고 이름지어 놓았는데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들어간 안도현 시인의 싯귀가

그림과 함께 붙어 있습니다

범일동 블루스/손택수

 

문을 담벼락으로 삼고 산다. 애 패는 소리나 코고는 소리, 지지고 볶는 싸움질 소리가 기묘한

 실내악을 이루며 새어나오기도 한다. 헝겊 하나로 간신히 중요한 데만 대충 가리고 있는

사람 같다. 샷시문과 샷시문을 잇대어 난 골목길. 하청의 하청을 받은 가내 수공업과 들여놓지

 못한 세간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간밤의 이불들이 걸어 나와 이를 잡듯 눅눅한 습기를

 톡, 톡, 터뜨리고 있다. 지난밤의 한숨과 근심까지를 끄집어내 까실까실하게 말려주고 있다.

 

간혹 구질구질한 방안을 정원으로 알고 꽃이 피면 골목길에 퍼뜩 내다놓을 줄도 안다.

삶이 막다른 골목길 아닌 적이 어디 있었던가, 자랑삼아 화분을 내다놓고 이웃 사촌한 햇살과

 바람을 불러오기도 한다. 입심 좋은 그 햇살과 바람, 집집마다 소문을 퍼뜨리며 돌아다니느라

시끌벅적한 꽃향, 꽃향이 내는 골목길.

 

코가 깨지고 뒤축이 닳을 대로 닳아서 돌아오는 신발들, 비좁은 집에 들지 못하고 밖에서

노독을 푼다. 그 신발만 세어 봐도 어느 집에 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어느 집에 자고

가는 손님이 들었고, 집 아들은 또 어디에서 쑥스런 잠을 청하고 있는지 빤히 알아맞힐 수 있다.

비라도 내리면 자다가도 신발을 들이느라 샷시문 여는 소리가 줄줄이 이어 진다.

 자다 깬 집들은 낮은 처마 아래 빗발을 치고 숨소리를 낮춘 채 부시럭부시럭 거린다.

 그 은근한 소리, 빗소리가 눈치껏 가려주고 간다.

 

마당 한 평 현관 하나 없이 맨몸으로 길을 만든 집들. 그 집들 부끄러울까봐 유난히 좁다란

 골목길. 방문을 담벼락으로 삼았으니, 여기서 벽은 누구나 쉽게 열고 닫을 수가 있다 할까,

나는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다만 한바탕 울고 난 뒤엔 다시 힘이 솟듯, 상다리 성치 않은

 밥상 위엔 뜨건 된장국이 오를 것이고, 새새끼들처럼 종알대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또한

 끊임없이 장단을 맞춰 흘러나올 것이다. 젖꼭지처럼 붉게 튀어나온 너의 집 초인종

 벨을 누르러 가는 나의 시간도 변함없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질 것이다

높은 담벼락에는 산복도로에서의 삶을 노래한

손택수의 '범일동 블루스'가 걸려있는데

  마당 한 평 현관 하나 없이 맨몸으로 길을 만든 집들,

 그 집들이 부끄러울까봐 유난히 좁다란 골목길.

 

최천택 선생은 1896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최천택 선생은 학우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렸고 독립운동에도 참여했었습니다.

최천택 선생은 1919년에는 3․1운동을 돕기 위해 독립신문 등사를 도왔고, 1920년에는 독립운동가

 박재혁 선생과 함께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기 위해 준비하였고, 폭파에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박재혁 선생과 최천택 선생은 옥중에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난

최천택 선생은 1923년 군자금 모금활동을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의열투쟁, 청년운동을 진행하며

 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1920년 9월경 독립운동을 위하여 중국 상하이로 갔던 박재혁 선생이 돌아와 부산경찰서를 폭파할

 계획을 밝히자 함께 거사를 논의하였습니다. 9월 14일 박재혁 선생은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뒤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단식 중 순국하였습니다. 최천택 선생도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습니다.

최천택 선생은 폭파 사건이후 옥에서 풀려나, 1923년 7월경 의열단 단원 강일 선생을

만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고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1927년에는 신간회 부산지회 설립총회에서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처럼 일제에 항거하는 의열투쟁과 청년운동을 전개하면서 모두 54차례나

구금·구속되었으며, 8·15광복도 옥중에서 맞이하였습니다. 

 

정발장군쉼터

증산은 옛 부산진 성이자 정발장군이 왜구에 대적해 최후까지 전투했던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정발(鄭撥.1553.명종 8~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고(子固), 호는 백운(白雲). 판윤 지례(之欚)

고손으로, 할아버지는 돈녕부도정 세현(世賢)이고, 아버지는 군수 명선(明善)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남숙(南淑)의 딸이다.

1579(선조 1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곧바로 해남현감·거제현령이 되었다.

이어 비변사의 낭관이 되었으며, 위원군수·훈련원부정이 되었다. 1592년 절충장군(折衝將軍)

 품계에 올라 부산진첨절제사가 되어 방비에 힘썼다.

이 해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에 상륙한 왜병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성이 함락되고 그도 전사하였다. 이 때 첩 애향(愛香)은 자결하였고, () 용월(龍月)도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동래의 충렬사(忠烈祠:뒤의 樂安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왜성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및 범일동에 있는 증산 왜성은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4일 임진왜란

으로 부산진 첨사 정발()이 전사하고 본성인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왜장() 모리 데루모토[]가 부산진성을 허물고 서북쪽에 있는

증산()[130m]에 쌓은 왜성이다.

범일동 산동네

50년대부터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동네 꾸준히 진화 해왔지만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

고달픈 동네다 시대에 따라 한집 두집 빈집으로 남아 있지만 가난이 대물림 않되기를 바랄 뿐이다 

 

 

산복도로 풍경 골목/윤현주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어디로 들어가도 입구가 되지만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발견하기가 힘들

길을 잃은 바람이 이집 저집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버럼 잘 날 없는 골목은

동내의 소문이 흘러 다니는 혈관이다

삶의 실마리를 놓친 사람들을

오랜 인질로 잡아두기 위해

낮에도 얼굴 가린 그림자 풀어 감시하고 있지만

자고 나면 하나 둘 늘어나는 빈집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어진 골목길엔

배고픈 개와 고양이들이

혈전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게이트볼장 오늘은 께임하는 팀도 연습하는 팀도 안보이네

 

증산전망대

 

증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부산대교

영도와 중앙동과 용두산쪽

감만동부두와 신선대 부두쪽

 

 

 

 

 

증산성의 벽에 그려진 벽화 아기와 엄마의 정겨움이 눈길을 끌어 담아 봤다

내려올때는 성북시장 쪽으로 내려 왔는데 이중섭거리를 보기위해 들리지 않고 바로 내려왔다

부산진 자성인 것같다

정발장군의 전투장면을  모자이크로 벽화처럼 조각해 놨다

 

내려오면서 보니 어느 한집 계단이 없는 집이 없다 그 마저도 이제

한집 두집 빈집으로 남게 되었으니~~~동구와 영도구는 현재 인구가

많이 줄었다  2030년도에는 반토막 날거라니 암담한 현실이다

현상유지라도 시킬 수 있는 무슨 묘안이 없을까?

 

부산 이바구길 유명한 곳을 버스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070-4651-4113/010-8686-7751

부산역 출발오전10시와 오후2시

요금은 성인2만원

 

 

 

 

 

 

 

Pokarekare Ana - Si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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