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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통영 중앙 시장과 윤이상 기념관

동피랑을거처 통영활어시장과 통영중앙시장으로 왔다 생각보다 시장이 꽤나 컸다 바로옆에는 강구안이라는

항구가 자리잡고 있다

중앙시장은 수산물은 물론 공산품까지 없는 게 없다.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이나 시장 사람들이나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 모두가 강구안의 상쾌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고 또 향유한다. 밤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여수항이라면 낮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는 통영의 강구안이다

휴일이라 관광객들도 많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활기가 넘처보인다

길 옆으로 통영의 대표 간식거리 꿀빵 가게가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밀가루 사용 안하고 국내산 찰보리 만으로 만든 꿀빵도 있어 골라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꿀빵은 미륵산 케블카 휴게소에서 사먹었으니 그냥 패스

아직 이른시간인지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한산하다 건어물도 멍게도 해삼도

아직은 찾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한바퀴 돌아나오니 여기는 큰길거리에 종류가 다른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임진왜란 때는 군사도시로 일제강점기 때에는 군함이 드나드는 항구이기도 했던 통영은
국립해상공원인 한려수도의 동쪽 관문에 위치하는 아름다운 항구이다.

그 중앙에 위치한 통영중앙전통시장은 충무김밥, 꿀빵외에도 싱싱한 활어가 많이 보이는 곳이다. ​

해산물과 농식품 건어물 어패류 어느곳에 눈을 두어야될까?

 

반찬 가게도 여러 곳 보인다

여기도 어패류와 잡화점이 뒤죽박죽이다

멍게, 해삼 등도 보이는 활어시장에서 신선한 활어를 좌판에 펼쳐놓고 판매를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활어들이 조그마한 통속에서는 못있겠다고 시위를 하는것 같다
펄떡펄떡 힘차게 튀는 여러종류의 활어를보면 나도 생기가 나는 기분이다 부산에서 많이 봤지만

싫지가 않다  활어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그 주변으로 채소를 파는 가게도 즐비하다.

 

여기는 횟집과 옷가게들이 혼재하고 있는 곳이다

활어센타는 각종 어류들을 가득 가득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에 올까하고 회감을 물어보니 부산의 삼분의이가격이다

055-649-5225

통영시 중앙시장1길 14-16

'푸른 물이 넘실대는 남해를 마주한 중앙시장은 통영의 대표적인 전통 종합시장이다.

 바다와 인접해 싱싱한 활어회를 비롯한 수산물과 건어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뱃사람들을 위해 통영의 따뜻한 기후에도 상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달콤한 꿀빵이 유명하다.

 

 

 

중앙시장을 뒤로하고 가까운 윤이상 선생 기념관으로 왔다

 

윤이상 

출신지는 경상남도 통영. 1917년 9월 17일 산청군 시천면에서

 아버지 윤기현과 어머니 김순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통영으로
이주하면서 통영에서 수학하며 성장하였다.

     윤이상은 동양의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색채의 선율로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생전에 '현존하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혔다.

1959년 네덜란드 빌토벤에서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이,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이 초연되어 열광적인 호응을 얻음으로써

그의 이름이 세계 음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한국 중앙정보부는 그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귀국시켰으며 재판결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68, 1969년의 2번에 걸쳐 10년이 감형되었다가 동료음악가·교수들의 국제적
항의와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Daum백과] 윤이상 –

 

 

 

 

윤이상 선생의 생애와 업적

 

기념관 입구에 있는 윤이상 선생 흉상

 

 

 

 

 

 

 

 

윤이상 선생의 대한민국 여권과 독일 여권

 

윤이상 선생이 사용한 첼로

 

 

독일 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

괴테 메달(1995년)

 

 

 

 

 

윤이상의 친필 메모

 

 

 

통영 산양읍화양학원 교사시절 1939년

도천동 동네친구 이상용과 함께 이상용은 윤이상이 어려울 때면 찾아와 도와주고 아무일

없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윤이상이 일제의 감시를피해 서울에서 숨어 살때 산양

면사무소에 근무한 그는 김본(金本) 아무개라는 일본 징용 가서 죽은 사람의 호적 초본을

위조해 보내서 윤이상의 도피생활을 도왔다 1947년

통영여자 중학교 교사시절 경주 수학여행 오른쪽에전혁림 윤이상 1947년

통영현악4중주단 좌로부터 박기영 첼로 윤이상 제2바이올린 최상한 제1바이올린 탁현수 1947년

화염속의 천사 작곡당시 1994년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하는 윤이상 이수자 부부 1974년

도꾜에서 열린 사회주의 인터네셔날 전체회의에 참석한 빌리 브란트 위원장과 함께 1975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시절 1956년

부산 사범학교 교사시절 둘째줄 좌에서 두번째 1948년

부산시절 앞줄좌로부터 박태연 김세형 이흥렬 윤이상 뒷줄좌로부터 나운영 김대현 김동진 윤용하 1950년

베르린 음대 학생시절 슈발츠 쉴링 교수와 함께 1959년

오페라 심청전 연습실에서 좌로부터 릴리안 수키스 윤이상 대본을쓴 하랄트 쿤츠 1972년

광주여 영원히 연주회 베르린음악제 1987년

동베르린사건 재판중에 재판정에서 1967년

베르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묻혀있는 묘지의 사진

뉴스에 보니 윤이상선생의 유해가 20여년만에 2월25일 독일에서

통영으로 운구된다고 합니다

어느곳에 묻힐지가 궁금해집니다

파리 유학시절 1956년

독일에 있을때 타던 차인가봅니다 전시가 돼 있네요

 

베르린하우스는 굳게 문이 잠겨있는데 도서 열람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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