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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통영 박경리 문학관

 

착량묘에서 박경리 문학관과 달아공원으로 가는중 잠시 통영대교를 담아본다

 

 

 

통연운하 예전에는 해저 턴널을 통해서 통영과 산양을 오갔다고 합니다

거북선 모형을한 호텔이 있어 한컷 역시 통영은 이순신장군을 빼면 어떻게 됐을까?

달아공원은 일몰을 보기위해 박경리 문학관을 먼저 둘러본다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전체를 탈고하였다

1980년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 자리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였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9년토지문화관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되었다.

 

 

박경리선생의 생애에 업적도 살펴보고 일일히 두고보기 위해서 담아 본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이 안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은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얹고 곰곰히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채바퀴 돌듯 한땀한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게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것이 가장 순수하고 밀도도 짙은것은 연민이에요

연민 연민이라는 것은 불쌍한 데에 대한것 말하자면 허덕이고 못먹는 것에 대한 것

또 생명이 가려고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에 대한 아픔이거든요

그것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예요 가장 숭고한 사랑이예요

1969년 이후 부터는 대하 장편 토지에 몰두하고 있다 하동의 대지주 최팜판네 일가를

중심으로 한말에서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처 조국 광복에 이르는 민족사의 변천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작품에서 보여지는 광대한 스케일과 한국근대사의 전개에 작가의 독특한

시각은 우리  소설사에서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72년에는 토지

제1부로 제7회 월탄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고 보름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채 토지 원고를

썼던 것이다 .중략 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 였더란 말인가

토지로 대표되는 박경리의 작품세계는 민족적 삶의 총체상을 보여준다 며 박경리 문학의

밑바닥에는 인간적 품위와 낭만적 사랑의정신 우리문학에 대한 애정이 한 줄기로 흐른다

고 말한다 하층민부터 상층민까지 한 사회의 모든 삶을 아우르는 총체소설의 양상이야말로

박경리 문학의 업적이요 특징이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의 말

경리라는 이름은 필명이다 김동리 선생께서 지어주셨다고한다

김약국의 딸들 토지의 원고들이 빽빽히 정리되어있다

집필하셨던 책상과 필기구들 그리고 제봉틀 생전에 사랑했던 것들이다

 

 

 

 

 

 

 

박경리()가 지은 장편소설.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지방의 유족한 한 가정이 얼킨

욕망과 운명에 의하여 몰락해가는 과정과 그 부()가 신흥세대로 이동하는 사회적 변동이 한말에서

민족항일기까지 이르는 사이에 걸쳐 펼쳐지고 있다. 선비적 성품을 지닌 김봉제는 김약국의 주인으로

 지방의 부유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아우 봉룡은 형과는 달리 충동적이고 격정적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 아내 숙정을 출가 전

사모한 송욱이 있음을 알고 극단적으로 시기하여 그를 살해한다. 숙정은 간부를 두었다는 누명을 벗으려고

 자살한다. 이 격정적 사태로 인해 스스로 책임을 느낀 봉룡은 가출하여 자취를 감춘다.

그리하여 봉룡의 아들 성수가 봉제의 아내인 송씨의 손에 자라나게 되나, 죽은 동서 숙정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송씨는 성수를 심리적으로 괴롭힌다. 한편 봉제의 딸 연순은 미모이고 심성은 고왔으나 결핵환자라는

 약점 때문에 몰락한 양반가의 강택진과 혼인한다. 강택진은 처가의 재산을 노리고 장모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나, 그 사실을 안 봉제 영감은 사위를 경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봉제 영감이 불행히도 사슴 사냥 현장에서 독사에 물려 사망하게 되고, 그에 따라 상당한 재산이

사위 강택진에게로 돌아간다. 그의 처 연순은 간교한 강택진과는 애정도 없는 데다가, 강택진이 옥화라는

 여인과 관계함을 알고 병이 더욱 악화되어 죽는다. 성수는 김약국을 이어받았고, 혼인도 하였다.

그러나 생소한 어장사업에 손을 댐으로써 가산이 조금씩 기울어간다.

그 장녀 용숙은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그녀의 아들 동훈을 치료하는 병원 의사와 정을 통하게 된다.

이 사단의 악화로 용숙은 고통을 받으나, 금전에 온갖 정신을 쏟고 금전의 노예가 된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교육을 받아 지적이었지만, 그 애인 홍섭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고 교원생활을 한다. 셋째 딸 용란은 미모이나

 관능적이며 지적 헤아림이 없어 애욕에 빠지며, 급기야는 아편중독자에게 출가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의 과정에서 김약국은 점점 몰락하고 보잘 것 없었던 정국주의 손으로 재산은 옮겨가기에 이른다.

 넷째 딸 용옥은 애정 없는 남편과 별거하다, 시부의 겁간을 피하여 남편을 찾아가던 뱃길에서 죽게 된다.

용란도 그녀를 사모했던 머슴이 나타나 도망칠 것을 제의하였으나, 사단을 안 그 남편에 의하여 머슴과 그녀의

 어머니 한실댁이 살해된다. 그 충격으로 용란은 정신이상자가 된다.

이 작품에는 욕망의 엇갈림과 부의 사회적 이동과 여성의 운명이 한데 어울려 주제화되어 있다.

 한 집안의 몰락이 지닌 비극성이 사실적으로 조명된 역작이다.

 

고등학교때 이책을 읽었지만 이제는 한대목도 생각이 안난다

 

 

 

 

 

박경리선생의 동상은 토지의 배경 악양리에 있는 기념관의 동상과 별반 차이가 않나는데

박물관 시설과 진열품들은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겨울에 꽃을피우고 열매를 맺는 팔손이나무

줌으로 당겨본 미륵산과 봉수대

박경리선생 묘역으로 오르는길

 

아직도 붉은 빛의 잎이 지지 않고 열매도 빨간 남천

 

"옛날의 그 집"

빗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께서 50년만에 통영을 방문하여  지금의 문학관위 양지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은 것이

인연이되어 주위사람들에게 죽으면 통영에 묻히고 싶다 양지바른 곳에서 그래서 이곳에 묘소를

정했다고 한다

박경리선생의 묘 참 소박하고 단조롭다

선생께서는 평소에 묘지에는 마무것도 놓지말고 쓰지도 말라는 부탁을해

이렇게 소박하게 꾸몄다고 한다

봄.여름.가을 같으면 여기 정자에 앉아 시라도 한 수 읆으며 쉬어가면 참 좋겠다

배산 임수라 했던가 뒤에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앞에는 푸르른 바다가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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