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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스페인 타리파와 론다

 

 

 

 

 

모로코 페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4시간을 달려 탕헤르 부근에서 점십식사를 하고 페리에 탑승

지부롤털 해협을 건너 스페인 타리파로 이동을 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중해를건널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항구가 모로코 탕헤르에서 스페인 타리파이다

유럽인들이 가볍게 자전거나 자동차로 옆동네 구경하듯 아프리카로 건너가 여행을 즐길 수 있고

모로코인들이 가까운 유럽에서 상업에 종사 할 수있는 통로라고 한다

그만끔 가까운 거리로 페리로 40여분 걸리는 거리인데도 대륙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니 입국수속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페리에서 바라본 스페인 타리파 쪽 풍경

타리파(Tarif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인 카디스 주의 도시로, 인구는 17,793명(2009년 기준),

 면적은 419.67km2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최남단이다.

 

 

구즈만성

여객터미널 바로 뒤에는 구즈만성(Castillo de Guzman)은 960년 무어왕인 ‘압둘라만 3세’가 축성했으나,

 현재의 이름은 스페인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의 영웅 ‘구즈만 엘 부에노’를 추모해 붙였다고 한다.

항구의 예수상으로서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예수상을 세운게 아닌가 생각된다

 

타리파 항 입 출국 관리사무소

스페인의 산에는 이렇게 발전용 풍차가 특히나 많다

지브롤터의 면적은 6.5㎢이며 영국의 직할령으로 군사전략 요충지이자 황금의 땅이다.

스페인의 반환요구와 주민투표에 의한 영국령에 잔류의사 표현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영국령이 유지되는 곳이다.

지브롤터는 이베리아 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영국의 질할령으로 대부분의 지형이 석회암 암산이다

면적은 6.5펑방킬로미터이며 남북 4.5km동서1km 협소한 면적에 최고도 426m의 석회암 암산으로

서쪽의 시가지가 있느 완만한 경사지구 외에는 석회암의 급경사지로 현재 인구는 약3만명 스페인과는

너비 800m에걸처 중립지대가 설립된 국경을 가지고 있다

1704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 함스브르크가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개입한

영국에 의하여점령되어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성채인지 궁전이었는지 알 수 없는 건물

타리파에서 론다로 가는 주위풍경

스페인은 전국토의 삼분의일이 산지이며 평균고도600m 유럽에서 스위스다음으로 고지형이다

바다가 산중턱의 그림같은 집들

스페인의 북부지역은 리레네 산맥 대서양 연안에는 칸타브리아산맥 남부에는 모레나산맥

 네바다 산맥이 있고 중앙에는 메세타 고원이 자리하고 있다

버스로 2시간정도 걸려 론다에 도착

 

 

흔들리는 차창으로 담아서 흐리지만 스위스의 어느마을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론다성당

론다 시가지의 모습

안달루시아의 꽃이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마을 론다는 과달레빈강(Río Guadalevín) 타호 협곡(El Tajo Canyon) 위

해발 780m 고지대에 세워진 절벽 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론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경기 중 하나인 투우인데, 말을 타고 창으로 찌르던 전통 투우 방식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 천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방식의 투우를 창시한 곳이 론다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낭만적인 협곡 도시 론다는 산책하듯

둘러보면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누에보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에 있는 첫 번째 골목을 따라가면

 캄피요 광장(Plaza del Campillo)이 나오고 광장 오른쪽 끝의 전망대까지 가면 누에보 다리와 협곡 위에 자리잡은

론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시내의 가로수도 오렌지나무이다

투우사의 동상 

 

스페인에도 산들은 이렇게 발가벗은 암산들이 많다 해발780m 높이에

도시가 자리잡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120m 높이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론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 주는 '누에보 다리'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말라가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전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헤밍웨이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곳 론다에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120m 높이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론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 주는 다리로, 론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협곡 아래 과달레빈강이 흘러 옛날부터 두 지역의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 3개의 다리 중 하나이다. 당시 아라곤 지역의 천재 건축가였던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Martín de Aldehuela)가 4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1793년 완성했는데,

3개의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이 되어 ‘누에보(새로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이곳에서 포로들을 떨어뜨려 죽였고, 다리 중간 아치에 있는 공간은 감옥으로

사용했었다는 슬픈 역사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사진 촬영지로 전 세계 작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누에보다리에서 바라본 신시가지의 모습

 

다리아래는 유채 밭도 있네

론다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는 중세 때 만들어진 아라베(Arab) 다리다. 이 다리는 도심과 아라발레스 지역을 연결했다.

 그리고 17세기 들어 아라베 다리를 보완하기 위해 비에호(Old) 다리가 만들어졌다. 이 다리로 인해 파드레 예수스

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늦게 세워진 누에보(New) 다리는 1735년에 만들어졌으나 6년 후 붕괴되었다.

그래서 1758년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30년째인 1787년 9월 15일에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 다리로 인해 신시가지인 메르카디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현재 에스파냐 광장, 투우장, 카지노,

타호 공원 등이 있다. 누에보 다리는 현재 신시가지의 에스파냐 광장과 구시가지의 아르미냥 길을 연결한다.

누에보 다리에 접어들면 타호협곡의 동북쪽을 잘 볼 수 있다. 그곳이 신시가지 중에는 오래된 주택가인지라

 절벽 위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누에보 다리 위에서 조망한 신,구시가지 사이의 150m 아래의 타호강이 흐르는 절벽 사이로

 신,구 시가지가 누에보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누에보다리의 건설공사는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가 설계해 1751년 시작돼 1793년까지 무려 4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치형으로 건설하던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협곡 아래에서부터 돌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길이 120미터 높이 98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구시가지에 사는 사람들이 신시가지에 있는투우장에 가는 것이 불편해서 다리를 놓았다고 하는데, 투우장은

 1785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알데우엘라는 다리가 완공된 뒤 너무 감격해서 다리 측면 아치에 자신의 이름과 완공 날짜를

새기려다 그만 협곡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들 투우장으로가는데 혼자서 다리아래로 내려가 봤는데 폭포도 웅장해요

오른쪽 위여성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는데 정말 위험하게 보여요

파라도르 호텔

 

이 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길로 깎아지른 절벽 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율과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헤밍웨이는 이 절벽의 형상과 그곳에서 느끼는 절박함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제10장 '벼랑에서 던져지는

 파시스트' 에피소드에서 실감나게 표현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파시스트들에게 밀리는 공화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 로버트 조단(Robert Jordan)이다. 대학에서 에스파냐어를 가르치던 조단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세고비아로 와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소설에서 보면 공화주의 게릴라 집단의 리더인 필라(Pilar)가 그녀의 고향에서 파시스트들이 사형되는 장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은 1936년 론다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당시 시장이었던 돈 가르시아 등 500여명의

파시스트 동조자들이 성난 군중들에 의해 조르헤 협곡 아래로 던져져 죽음을 당했다. 헤밍웨이는 1954년 그 이야기가

완전히 자신의 창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론다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1936년 론다 사건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벽을끼고 도는 헤밍웨이의 길을 따라 투우장으로 이동을한다

1785년에 완공된 투우장으로 세비야 투우장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이다.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최대 6,000명 정도의 인원이 입장할 수 있는 규모로 오직 투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투우장이기도 하다. 1984년에는 내부에 투우 박물관도 만들어졌다. 이곳 론다

투우장에서 투우의 창시장 프란시스코 로메로에 의해 붉은색 천(케이프)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투우가 시작됐고, 그의 손자였던 페드로 로메로는 투우사로 지내는 동안 약 6,000마리의 황소를

단 한 번의 부상도 없이 쓰러뜨렸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도 가끔 투우

경기가 열리고, 경기가 없을 때는 경기장 투어와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사하라님의 글에서

헤밍웨이의 흉상

미국 영화배우이자 감독 흉상(ORSON WELLES)

스페인 투우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를 지닌 '론다 투우장'

 투우 경기를 하려면 소를 이틀 동안 캄캄한 곳에 가두었다가 투우장으로 내 보낸다고 한다.

그래야 소가 흥분을 하며 날뛰므로 좀 도 재미있는 투우 경기가 되기 때문이란다.

사람으로 치면 그 방법이 너무 비인간적이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들어보니 투우 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곧 도살할 소중에서 골라

투우 경기에 내 보낸다고 한다. 참 잔인한 경기다 지금은 금지하고 있한다

 

 

 

물레타를 창시한 전설적인 투우사 테드루 로메로의 동상이 투우장 정문에 서 있다.

론다 태생인 그는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으며, 자신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일생 동안 5천585마리의 소를 죽였다고 한다.

카라

목련

 주택가

 론다의 여러풍경들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중해를 따라 해발 428m 산 중턱에 동화속의 마을같은 온통 하얀색

 건물로 가득 찬 스페인의 테라스라 일겉는 하얀마을 "미하스" 인포메이션 센타에서 본 미하스 마을 전경

 

미하스 마을의 성모발현의 작은 성당 규모는 매우 작지만 교황 요한바오로2세도 다녀갔을 만큼 신성하다

성당에는 2가지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예전 무어왕조가 지배하던 이슬람 지배시기를 피해서 숨겨놓았던 마리아 상이 이 바위에서

발견되었다는 설과 예전 두 자매가 성을 산책하다가 종탑위의 비둘기를 봤는데 이 비둘기가

성모 마리아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그래서 이름을 바위의 성모 은둔지라고 붙여졌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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