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청.대전

법주사

법주사

사적 제503호.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 553년에 의신 조사가 창건했으며, 절이름은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에 진표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등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23) 

연륜이 느껴지는 '법주사 일주문'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편액에서

충청도에서 제일 큰 절이라는 자부심이 배어 나오네요.

글씨는 구한말 김제 출신 서예가, 벽하 조주승(1854~1905)의 작품입니다.

'속리산 대법주사'라 쓰여있는 절 이름의 편액을 또  하나 불수 있는데

 속세(俗)를 떠난(離) 산, 부처의 법(法)이 머무는(住) 큰 절이라는 뜻의

편액 글씨 왼쪽에 '광무 6년 임인년 4월 중건'이라고 쓰여져 있어

일주문을 고종 6년 1902년에 다시 지었음을 알수 있죠.

 

<사진 좌측>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의승장 '벽암대사(1575~1660)'를

기리는 비석을 자연석 암반 위에 홈을 파 세웠습니다.

 

<사진 우측>

 

 

벽암대사비와 함께 서 있는 작은 비석은 '봉교비(奉敎碑)'입니다.

봉교 금유객제잡역(禁遊客除雜役)이라고 새겨 있는데요,

봉교란 '왕이 내린 명령'으로

'속리산에 들어와 놀지 말라' 는 뜻을 비변사를 통해 내린 명입니다.

법주사의 위엄을 알리는 일종의 금표(禁標)라 할수 있죠.

 

 

 

 

 

 

 

속리산의 내력을 기록한 속리산 사실 기비를 모신 비각으로.

1666년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지었습니다. 

정이품송이 가지를 들어줬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 세조의 행차도 적고 있고

수정봉 거북바위가 당나라를 향해 있어 재물을 빼앗아 간다고해

당 태종이 돌거북 위에 탑을 쌓아 정기를 누르라고 했다는 얘기도 쓰여 있답니다.

 

 

법주사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

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염화실·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

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鑊: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2018년 6월 30일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함께 등재된 다른 여섯 곳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Daum백과] 법주사

금오대종사 부도비와 부도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 밑에 계주가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근형으로 살이 쪘으며, 턱 밑의 주름과 짧은

 목에 표현된 삼도가 목걸이처럼 늘어져 있다. 눈꼬리가 길게 위로 치켜올라가 있고, 납작하게 눌린 듯한

 코는 살찐 뺨에 파묻혀 있는 듯하다. 상체는 두 어깨가 각이 진 편으로 허리가 지나치게 좁게 표현되었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으로 옷을 입고 있다. 두 무릎 역시 어깨처럼 각이 지게 표현되어 있다.

 신체비례로 보면 하체가 허리와 상체에 비해 매우 빈약하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는 것같다.[Daum백과] 법주사

 

 

 

금강문은 인왕문, 해탈문이라도 하지요.

금강문 안에는 절을 수호하는 신장(神將) 금강역사 한 쌍과

 문수와 보현, 두 보살상도 모셔져 있습니다.

 

전나아마도, 곧고 당당하게 자라고 늘 푸른 전나무에서

올곧은 참선 수행 자세를 본받겠다는 뜻이 깃들어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금동미륵대불'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약 8m 에 이르는 기단 위에

높이 약 25m의 거대한 이 청동대불은 국내에서 최대의 규모이며,

소요된 청동은 약 160톤에 이릅니다.

 

조성 당시 불신을 13 등분하고 다시 각 등분한 것을 4조각으로 나누어

총 52 조각을 용접으로 이어 붙여 올라가는 어려운 공법으로 조성된 미륵불입니다.

 

기존 조성 시멘트불상의 크기와 형상을 그대로 복사해서 청동물로 바꾼 것입니

2000년에 들어서 석지명 주지스님이 국난 극복과

2002 한,일 월드컵행사의 성공 게최 및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검푸른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시작했고,

2년여의 노력으로 2002년 6월 7일 '금동미륵부처님'을 복원했습니다.

 

제원은 신심어린 3만여 불자의 시주금으로 충당된 금동미륵대불은

황금30kg이 소요되었고,

공사 연 동원인력은 총 4,500명이었다 합니다.

 

국내 천왕문 중 크기가 제일 크며

충북 유형문화재 46호로 지정된 법주사 천왕문입니다. 

 

 

 

 

 

팔상전의 (전)은 '팔상도를 모신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부터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는 장면까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지요.

 

어느어느 방향에서 보든 똑같은 모습에 안정감이 있는 팔상전은

아래 월대와 계단은 통일신라 때 것이 그대로 남아 그 위에 목탑을 쌓았고

사방 중앙에 계단을 놓고 출입문을 냈습니다.

 상륜까지 합친 높이가 22.7m.인 팔상전 뒷모습.

 

 

법주사 범종각

범종각은 법고,범종,묵어,운판 등

불교 의식에서 필요한 네가지 사물을

다 갖추어져 예식 때 마다 사물을 울립니다.

 

 

법고는 지상의 중생을 소리로서 구제하는 큰 북으로

 

새벽에는  북쪽의 "양"황소가죽을 두드리고

저녁에는 남쪽의 "음" 암소가죽을 두드립니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소리로서 구제하기 위하여 아침에는 28번 올려치고

저녁에는 33번 내려 칩니다(보신각종도 33번 칩니다)

 

 

목어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를 소리내어

수중의 중생을 소리로서 구제 한다

운판은 천상의 중생을 소리내어구제한다

 

 


국보 제5호. 높이 3.3m. 간주(竿柱)에 변화를 주어 특색을 발휘한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8각석등이다.


지표에 놓인 넓은 팔각 지대석(地臺石)은 아래위에 테를 돌리고 우주형(隅柱形)을

표시하였으나 각 면에 조식(彫飾)은 없고 상면에는 각형(角形)과 반원형 2단의 뚜렷한 굄이 표현되었다.
하대석(下臺石)은 8각으로 꽃잎 속에 화형(花形)이 장식된 단판복련(單瓣覆蓮) 8엽이 조각되었다.
8각기둥을 대신한 쌍사자(雙獅子)는 뒷발을 하대석에 버티어 가슴을 대고 마주 서서 앞발로

상대석(上臺石)을 받쳤으며, 머리는 들어서 위를 향하였는데 머리에는 갈기가 있고 다리와 몸에는

 근육까지 표현되었다.


상대석에는 서로 양식이 다른 단판의 앙련(仰蓮)을 이중으로 조각하였다. 화사석(火舍石: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은 8각으로 네 곳에 장방형 화창(火窓)을 내었는데, 화창 주위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은 다른 사실이 있었던 듯하다.


개석(蓋石)은 크고 8각이며 처마 밑은 수평이나 추녀 끝이 약간 반전(反轉)되었으며, 정상에는 복련을
조각하였다. 옥개 위에는 구형(球形)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석등 중에서도 간고한 조각수법과 넓은 지대석 및 옥개석 등의 비례에서 장중한
품격이 넘치고 있다. 법주사에 전하는 또하나의 사천왕석등과 함께 신라 석등의 걸작이며, 조성연대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Daum백과]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약사전은 중생을 병고에서 구제하시는 '동방 유리광세계(東方瑠璃光世界) 또는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의

 교주인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약사여래를 대의왕불(大醫王佛) 또는 동방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라고 하는데, 동방 정유리세계

(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보물 916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가 창건한 이래 776년 진표율사가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2년(1624) 벽암대사가 중건하였다. 이후 수차례에 중수를 거쳤으며 2010년 전체를 해체

.보수하였다.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는 전각을 일컫는 말이다. 건물 안에는

 높이 3m의 보물 제1361호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원통보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정방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이다.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인데 흔치않은 양식으로 불국사의 비로전과 법주사 원통보전 만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법주사 창건 때부터 있던 전각으로 임진왜란 후에 다시 지었고

용마루가 지붕 중앙 꼭지점에 모여 삿갓처럼 생긴 사모지붕 입니다.

 

지붕 양끝이 곱게 휘어올라가 날아갈 듯하고

지붕 꼭대기엔 석탑 상륜부처럼 돌로 만든 절병통이 서 있으며

화려한 건축미를 지녀 절집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報恩 法住寺 大雄寶殿)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전이다.

1987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15호로 지정되었다 대웅보전은 얇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6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칸,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 건축물이다.내부에는

앉은 키가 3.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이다.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불상이다.

 

세 분 부처님을 좀더 쉽게 설명하면,우리 사람에게는 정신 즉 마음이 있고, 공부를 하면 지식이 있게

되는 즉 덕이 있고, 사람마다 제각기육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셋을 포용하고 있다.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왼쪽 부처님은 더을, 그리고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 것이다.

 이렇듯 부처님은 원래 한 분이지만우리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몸으로 모셔 놓은 것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주불전을 가리키는데..

법주사 대웅전은 이름과 달리 비로자나불을 모십니다.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이라 붙여야 맞겠지만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주조한다며 안에 봉안돼 있던 비로자나불상을 헐어

징발해가는 바람에 '대웅보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대웅보전으로 가는길 양 옆,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걸 볼수 있죠.

달피나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보리수라고 하는데

석가모니의 득도를 지켜본 불교의 상징수입니다.

'보물 15호 사천왕석등' 

사천왕 석등은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높이 3.9m에 이르는 대형 석등입니다.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중창때의 작품으로 추정되니

무려 1200년이 넘었네요,

 

 

'진영각'

'조사각'이라고도 하며 '고승대덕의 영정을 봉안'하는 곳입니다.

 

 

본래 법주사에는 조사각(祖師閣)이라 하여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이었던 영빈 이씨가 원당으로 사용하던

선희궁원당(宣喜宮願堂)에 모셨었는데,

1991년 지금의 진영각을 새로 지어 법주사의 창건주 의신 조사,

전법초조 태고선사를 중심으로 모두 30분의 진영을 봉안하였답니다.

 

 

 

좌측, 지장보살과 명부세계 열명의 판관 시왕을 모셔서

지옥을 가리키는 명부에서 이름을 따온 명부전과

 

우측, 우리 토속신앙의 산신, 중국의 칠성, 부처님 제자 독성까지

삼성을 모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삼성각을 나란히 볼수 있죠.

 

 

지금은 미륵대불 아래 전시실에 있는 이 원숭이상은 원래 대웅전 계단 위에 있던 것입니다.

현재는 새로이 만든 원숭이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인도신화에 보면 비슈누의 화신 중에

 하나가 원숭이왕입니다. 이 신화가 중국에 와서는 손오공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날이 무척 덥습니다 땀이 줄줄 흐르네요

 

 

 

 

속리산의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봉우리 이름은 모르겠네요

 

법주사를 돌아보고 삼년산성이 있는 삼년산성 송어회집에서 늦은 점심식시를 하고

아쉽게도 삼년산성은 돌아보지 못하고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충청.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령 오서산  (0) 2018.10.14
청남대  (0) 2018.09.25
속리산 말티재 자연휴양림  (0) 2018.07.14
서원리 소나무와 선병국 가옥  (0) 2018.07.11
3월 마지막 주말을 공주에서  (0) 201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