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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서

금주도 역시 더위가 꺽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며칠 바람이 조금 불더만 오늘은 그조차도~~

집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역마기가 발동 또다시 배낭챙겨 지리산 대원사 계곡으로

달려간다 (8/13)

월요 총무이신 산새님의 산행일정 설명을 들으며 대원사 주차장에 11시에 도착한다

 

여느때와 같이 준비운동과 단체사진 촬영을하고 산행에 들어간다

허늘은 맑고 공기 또한 최상으로 좋은날 가을을 알리는 흰구름이 눈을 즐겁게한다

산청의 관광 안내지도도 살펴보고

산청 9경도 살펴보며 대원사를 향해 출발을 한다 9경중 8경은

가봤는데 정취암은 아직 못가봤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유평마을 표지석도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소나무도 지나고

날은 덥지만 걷는것이 아주 힘차보인다

항상 계곡물이 철철 넘첬는데 비가 안내려 계곡물이 고갈될 일보 직전 같다

대원사 일주문도 만나고

대원사는 내려오며 들리기로하고 유평마을 안내도 부터 살펴본다

계곡에는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지만 벌써 많은 피서객들이 진을치고

즐기고 있다

보기만해도 시원하다 벌써부터 풍덩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우리는 더 올라가서 진을칠 것이다

오늘은 A팀이나 B팀이 인원이 비슷할 것 같다

 몇번 혼줄이 났기에 미련없이 B팀으로 합류한다

 

 

 

여기가 용소가 아닐까?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했다는 곳 용소

유평마을을 지난다 그 많던 올망졸망한 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비를 한 것인지 다들 새로운 삶을 찾아서 떠나간건지?

여기서부터는 유평계곡으로 접어든다

그 많은 홍수 때도 저바위는 거기 그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A팀은 저곳으로 해서 무재치기 폭포를거처 치밭목 산장까지 다녀올 것이고

우리 B팀은 새재쪽으로 더오른후 계곡에서 물놀이를 할 것이다

유평마을과 새재 중간 우리가 오늘 휴식을 취할 곳으로 점찍고 짐을 풀어 놓는다

그늘이 적당한 곳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때가 됐으니 식사부터  하고

 

 

맑은 하늘이 너무 좋아 찍고 또 찍고

 

우리가 식사를 한 곳 아래에도 이러한 계곡이 자리하고 있으니 자기가 선호하는 곳에서 즐기면된다

수영도하고 물장난도 치고 너무 깊어서 수영 못하는 사람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이렇게 겁 많은 아낙들에게 장난질도 하며 시원함을 만킥하고 있다

다이빙도하고 물맞이도 하는 모습을 일행이 촬영해 보내주었다

10여년 전에 다이빙하다 앞이를 부어트려 다시는 안하려 했는데 젊은이들이

쩔쩔 매는 모습을 보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물속에 있다가 이렇게 나와 있으면 으시시 한기를 느끼게 된다

이제 돌아갈 시간 우리가 즐겼던 소(沼)를 다시 담으며 하산을 서두른다

넓다란 저바위 아래로 들어가면 비맞을 일은 없겠다

 

주차장에서 치밭목 산장까지 10km가 넘는데 과연 몇명이나 20km가 넘는 산행을 할 것인지

다녀오는 분께 박수를 처주고 싶다

등골나물도 만나고

 평화롭게 즐기고 있는 계곡이 아름다워 또 담아본다

'지리산 대원사(智異山 大源寺)',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548년(진흥왕9년) '연기조사(緣起祖師)'에 의해 창건 되었습니다. 처음의 이름은 '평원사(平原寺)'로 불리웠는데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1685년(숙종11년)에 들어서 '회암 운권(檜巖 雲捲)'

선사가 덕산에 있던 '불장암(佛藏庵)'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평원사 옛터에 사찰을 중건하면서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천광루(天光樓)를 지어 '선불간경도량(禪佛刊經道場)'을 개설하여 설법하면서 영남 제일의

 강당이 되었습니다.

 

암자로 중창 되었던 대원암은 경종4년(1724년) 담암 태흠 선사가 사리탑을 보수하고, 고종7년(1870년)에 이르러

'구봉 혜은(九峰 慧昕)'선사가 조사영당을 보수하며 방장실과 전각과 누각을 중건하였고 이름을 대원사(大原寺)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1914년 1월 2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절집 전체가 소실 되었고, 이 후 50여명의 스님들이 중창을 서원하여

 1915년 3월에 중창불사를 시작으로 1917년에 이르러 12동의 전각, 184칸의 대가람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1948년

 여순반란사건때 진압군에 의해 다시 전소 되었고 이 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9월, 비구니 '법일(法一)'스님이 주지로 들어 오면서 탑전을 짓고 중창을 서원하여 하나 둘 전각을

 짓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리산 대원사는 경남 양산의 석남사, 충남 예산의 견성암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예쁜꽃이 한창인 맥문동

대원사 '대웅전(大雄殿)'

정면3칸, 측면3칸으로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대원사 내에서는 오래 된 건물로 속합니다.

 어칸의 창호를 솟을빗살창으로 짰고, 사분합의 여닫이문을 달았습니다.

 양옆의 협칸은 빗살창입니다.

대웅전 바닥은 마루를 천정을 우물반자로 마감을 하였고,

석가삼존상과 후불탱, 좌우로 독성탱과 칠성탱이 걸려 있습니다.

대원사 대웅전은 돌층계를 따라서 오르고 양옆에는 석등이 있다       

 대웅전은 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이다

 대웅전에는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는 수미단과 신중을 모시는 신중단

그리고 영가를 모시는 영단을 두고 각 단마다 탱화를 모시고

촛대와 향로 등의 불구를 마련해둔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에는 좌우에 협시불을 세우는데,

문수보살보현보살을 세우기도 하고, 아미타불약사여래를 세우기도 한다.

이 중 후자의 경우에는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한다.

 

 

봉상루

범종각

많은 신도들의 기와 불사

대원사 인근은 가락국의 마지막왕이었던 구형왕(仇衡王)의 전설이 유독 많은 곳입니다.

왕이 소와 말에게 먹이를 먹였다는 곳을 '소막골'이라 하며, 그가 넘었다는 고갯길을

'왕산', 망을 본곳을 '망덕재', 군장미를 저장한 곳을 '도장굴'이라 부릅니다. 또한 절집에서

산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용소가 자리하는데 이곳에는 용이 100년간 머물던 자리로 항아리

 모양의 소에 바위가 뚫려 동굴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도 전합니다.

 

노스님이 거처하는 방

 

대원사 '원통보전(圓通寶殿)'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의 규모로 대웅전의 옆에 자리합니다.

1950년대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금동관음보살좌상과 천수천안관음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광전(天光殿)

 

       이 건물은 앞면 6칸, 옆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로 근래에 지어졌습니다.  전광전은 예전에

       간경선불회(刊經禪佛會)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원통보전 오른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원사 요사는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또한 기도하러온 신도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창고, 우물, 장독, 세탁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한데 모여 있다

염화

경전을 공부하는 곳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를 상징하는 사찰 당우 중 하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 이라고도 한다.

 명부전내 지장보살상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 2구, 녹사  2구, 문 입구에 장군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을 갖추게 된다

 

 

 

 명부전내 시왕상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소상. ·대상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를 모시게 된다

 .

이 무더운 여름에 왠장미꽃 시들시들하다

봉상루 옆의 배롱나무

대웅전과 명부전에서 바라본 대원사 안의 풍경

 

지리산 계곡의 비구니 청정도량, 방장산 대원사(方丈山 大源寺)


대원사는  보기 드문 우리나라의 대표 비구니 참선도량 으로

울창한 숲과 아름답고 맑은 계곡이 유명하며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인 대원사는 계곡을 간직하고 끼고 있으며

바위틈을 흐르는 청정한 물소리와 더불어 비구니들의 맑은 미소를 벗하는 곳이다

절안에는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제1112호),

대원사 구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30호) 등의 문화재들도 있다

 

방장산 대원사승탑전

옛날에 있었다고 전하는 철조여래좌상과 석등은 아는 사람도 없고 흔적도 없었다. 삼장사가 번창했을

 때는 스님이 수백명이고 신도와 손님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겨우 전해지고 있었다.

 

경내의 사리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8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기단의 위층은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는 대신 인물상(人物像)을 두었고, 4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지붕돌은

 처마가 두꺼우며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있다. 8층 지붕돌에는 금방이라도 고즈넉한 경내를 깨울 듯

풍경이 달려 있다. 자장율사가 처음 세웠던 탑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자 조선 정조 8년(1784)에 다시 세워

놓은 것으로,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이다. 전체적인 체감비율이 뛰어나고 조각은 소박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탑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했다고 하며,

마음이 맑은 사람은 근처 연못에 비친 탑의 그림자로 탑안의 사리를 볼 수 있었다고도 한다.

 보물  제1112호 대원사 다층석탑으로 명칭변경 및 승격지정됨에 따라 1992년1월15일 해지.

산행을마치고 덕산으로와서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고 부산으로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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