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광주.제주

익산 교도소 쎄트장과 남궁찬의 묘 석상

익산 '교도소 세트장'은 국내 유일한 영화 촬영용 교도소이다.

죄짓지 않고 구경하는 교도소 세트장은 흥미를 유발하였다. 영화나 드라마의 교도소 장면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촬영이 있는 날은 관람을 제한한다. 

먼저 확인하고 방문하면 착오가 없을 것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월요일은 쉬는 날로

 정해 있었다. 입장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정문 입구에는 세상과 교도소를 격리하는 높은 담장 있었다.

여기는 본래 성당초교 남성분교가 있던자리로 폐교후 위에 교도소 건물을 올려

촬영소로 사용하고 있다

잔디 밭은 그때 학교 운동장으로 사용한 곳이다

 커다란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운동장 너머로 2채의 살벌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회색 담장은 베를린 장벽이라도 되는 양 높이 솟아 있었다.

안과 밖을 철저히 나누는 담장의 위엄과 그 옆에 붙은 감시초소가 이곳이 교도소임을 말해준다.

죄를 지어야만 들어가는 교도소는 아니었다. 죄를 짓지 않아도 교도소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화와 드라마 촬영용으로 설계 시공한 익산 교도소 세트장이다.

 

고백커피는 또 뭘까 사랑을 고백한다는 말일까?

사랑의 자물쇠가 여기서는 사랑의 수갑으로 둔갑했나 보다

 


징역형이나 금고형 등을 선고받아 복역하는 장소를 교도소라 한다.

18세기 이전에는 사람을 가두고 굶기는 등 고통을 주던 감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19C

초부터 인신을 구속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근대적인 교도소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교도소 역사는 서대문 감옥, 서대문 형무소, 경성

형무소, 서울 형무소, 서울 교도소, 1967년부터 현재의 이름인 서울 구치소로 변경하였다. 

한편 사회에서 쓰는 비속어인 ‘콩밥 먹어라’의 유래는 보릿고개 시절 재소자에게 영양

공급을 충분히 할 수 없어 영양가가 풍부한 콩을 많이 넣어 제공한데서 나온 말이다.

또한 교도소에서 출감할 때 두부를 먹는 이유는 빠른 영양가의 보충과 부드러운 두부로

속을 진정시키고 배탈을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2005년 영화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거룩한 계보' '부러진 화살' '해바라기' '타짜' 등 각종 영화의 세트장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익산의 교도소 세트장은 처음부터 촬영 용도로 만들어진 교도소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 최근에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을 촬영한 곳으로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7번 방의 선물'은 류승룡, 오달수, 김정태를 비롯해 감초 연기로 이름난 중견급 배우들이 출연하여 크게 흥행했었다.

 수감자로 분한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극중 '예승이'로 출연한 아역배우의 자연스럽고 깜찍한 연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영화로 전해진다. 극의 흐름상 몇 장면만 등장하는 기존 영화들의 교도소 장면과 달리 이 영화는 거의

 모든 배경이 교도소이다. 7번 방 죄수와 그의 어린 딸이 함께 겪는 교도소 에피소드를 표현하였다.

 교도소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래서인지 그 영화가 흥행한 이후 교도소 세트장을 찾는

호기심 어린 관광객의 발길이 차츰 늘고 있다고 전해진다.박재우님글에서

 

교도소는 일반인들이 쉽게 출입하거나 체험할 수 없는 장소이다.

일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한 장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교도소 세트장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연인들에게는 이색적인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하였다

 

 

 

 

 

 

 

옛 학교의 교실을 리모델링한 수감장... 곳곳에 표어가 붙어 있다.  

‘내일의 희망이 새로이 피어난다.’ ‘인간에게 최상의 성공은 실망 뒤에 온다.‘

‘우리는 젊을 때 배우고 나이 먹어서 이해한다.’ ‘악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반드시 돌아온다.’

‘선으로서 악에 정의로써 허위에 이기도록 하라.’ ‘도덕성 함양으로 건전한 삶을 살자.’

‘양보는 미덕으로 남고 다툼은 후회로 남을 뿐이다.’

‘자아실현 인격완성, 반성하는 삶의 자세’ ‘받기보다 칭찬하기를 즐겨라.’

‘인생의 아침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충고를 하고 밤에는 기도 하라.’

‘일은 지루함과 잡념 그리고 가난을 멀어지게 한다.’ ‘가장 밝은 빛은 어둠이서 나온다.’

명심보감에 나올만한 옳은 말씀만 즐비하게 붙어 있다.

 

 

 

 

전국 최초의 교소도 세트장인 익산교도소세트장은 2005년 영화 ‘홀리데이’ 촬영장으로 조성된 이래 현재 방송 중인 ‘

이름 없는 여자’를 비롯해 ‘해바라기’, ‘타짜’, ‘7번방의 선물’ 등 25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으로

현재 주말 1천여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다.

 

 

 

 

 

 

 

감방 벽에 적힌 낙서 하나도 이 안에서는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본관을 둘러보고 나면 배우들이

 사용하였던 분장실과 휴게실도 둘러볼 수 있었다.

쇠창살과 철문만봐도 기분이 으시시하다

 

 

 

교도소 세트장에서는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죄수복이나 교도관 복장을 입고 세트장을 돌아보는 체험을 비롯하여, 드라마 따라하기,

 독방, 감옥 체험, 감옥 속의 인생 사진 찍기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야외 감옥에서 체험을하고 있는 관광객

 

밖으로 나오면 죄수들이 운동을 하는 공간인 넓은 잔디구장이 훤하게 펼쳐진다.

주말에는  주민들이 이곳에서 축구도 할 만큼 넓다

 

본관을 둘러보고 나면 배우들이 사용하였던 분장실과 휴게실도 둘러볼 수 있었다.

 배우들이 대기하며 촬영을 준비하는 별관은 폐교를 활용해 마련되었다.


            

 

             쎄트장을 돌아보고 부근에있는 남궁찬의 묘역을 둘러본다

위치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 (성당면)    
 문화재 지정
[남궁찬묘석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6호(1999.11.19 지정)

 

 

 

 

웅장한 모습의 남궁찬묘석상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에 있는 석상이며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성종 때의 관료 남궁찬의 묘 앞에 세운 화강암재로 만든 두 기의 석상이다. 함열남궁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궁찬의 호는 호은(壺隱), 본관은 함열(咸悅)이며 개국원종공신 계(啓)의 증손이며 이조참판 순(順)의 아들이다. 성종 8년(1472)
생원시에 급제하고 성종 20년(1489) 대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올랐다. 중종 즉위 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상소문을 올리고 비판하여 용안 호항(壺項)에 유배되었다. 그 후에 대제학 과 이조판서로

 다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은거하다가 죽은 후 이곳에 묻혔다. Daum백과 남궁찬묘석상

조각수법 뛰어난 이국적 모습의 석상 일반 묘석상처럼 묘 앞에 시위하듯 좌우로 벌려 서 있다. 크기는 좌측 석상이 전체 높이 250㎝,
머리 부분 높이 65㎝, 밑 부분 폭 76㎝, 어깨 폭 81㎝이다. 우측 석상은 머리 부분 높이만 70㎝로 좀 더 크고 나머지는 같다. 두
석상이 같은 형식의 관복을 입고 있으며 모습도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광대뼈가 나온 긴 얼굴에 뚝 튀어나온 눈, 얼굴에 비해 작은 코 등
서로 비슷하다. 이런 형식은 여느 문·무인석상과 다른 특이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양손을 배 앞에서 소매 속에 감춘
모습만 일반 석상들과 같을 뿐 전체적인 모습도 이국적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승이나
돌하르방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Daum백과 남궁찬묘석상

5백여 년 세월 훼손 없이 보존이 석상은 화강암으로 조각하여 남궁찬의 묘 전면에 석등과 함께 위치하고 있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전혀 손상이 없는 입상이다. 정확한 제작년대는 알 수 없으나 남궁찬 사후 묘의 설치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중종 년간의 16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되며, 문인석으로 세웠던 것으로 판단되나 석상 자체의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양식에 있어서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고 비교적 조각수법도 뛰어나 문화재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Daum백과 남궁찬묘석상

 

 

 

 

위에는 조부와 부친의 묘인듯

 

 

삭상을 청소를 깨끗이 했는지 옛스럽지가 않다 그냥 놔두지

 

본래의 모습은 이랬는데

 

남궁 찬 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영모제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면서 길가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종부님과 몇말씀 나누며 함열남궁씨와 전주 남궁씨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잘 보존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가을이 오면 - 서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