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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트래킹 올레전통시장

송악산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산이수동 송악산 해안에

구축한 일본 해군 자살 특공부대 시설

해상에서 상륙해 들어오는 미군 상륙정에 잠수정, 작은 목조 보트 등을 이용, 폭탄을 싣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일본 해군의 특공기지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일본군이 미군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수도(隧道)

[평지나 산, 바다, 강 따위의 밑바닥을 뚫어서 굴로 만든 철도나 도로] 550㎡, 병사기지 6동, 인양장 500㎡로 되어 있다.

 송악산 천연 해식동굴 2곳을 포함하여 총 17개 동굴이 일본군 군사시설로 이용되었다. 이 시설에는

일본 해군 특공부대 가운데 교룡, 해룡, 회천대 중 1개 부대가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실제 배치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양 전쟁 말기 패전 위기에 직면하자, 일본 육군이 결7호 작전을 위해 제주도에 축성을 본격화한

 1945년 2월부터 일본 해군도 특공소형선의 비밀기지 구축에 나섰다.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는

 이때에 구축된 것이다. 공사는 진해경비부 소속 제201부대가 담당했고, 제주도 주민들도 굴착작업에 동원됐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신방산은 높이 395m이며, 모슬포로부터 동쪽 4㎞ 해안에 있다. 유동성이 적은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상화산이다. 신생대 제3기에 화산회층 및 화산사층을 뚫고 바다에서 분출하면서 서서히 융기하여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산정부근에는 구실잣밤나무·후박나무·겨울딸기·생달나무 등 난대림이 숲을 이루고 있다.

유일한 섬회양목 자생지이기도 하다. 암벽에는 지네발란·동백나무겨우살이·풍란·방기·석곡 등 해안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1966년 천연기념물 제182-5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또한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 산의 남쪽에는

 화산회층이 풍화된 독특한 경관의 용머리해안이 있으며, 이곳에 하멜 표류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다. 제주10경의
하나이다. Daum백과 산방산

형제섬

바다 한가운데 바위처럼 보이는 크고 작은 섬 2개가 사람의 형과 아우처럼 마주보고 있다 하여 붙여진 형제섬

형제섬은 산방산 바로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무인도로, 사계리 포구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크고 작은 섬이 마치 형제처럼 마주하며 떠 있다. 길고 큰 섬을 본섬, 작은 섬은 옷섬이라 부른다.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으며 옷섬에 있는 주상절리층은 일품이다. 바다에 잠겨있다가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새끼섬과 암초들이 있어서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갯수가 3~8개로 그 모양도 계속 변하는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일출.일몰시 최고의 사진촬영 장소가 된다. 이곳은 낚시포인트로도 유명한데 형제섬의 수중아치는

다이버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해송, 연산호, 군락과 함께 자리돔, 줄도화돔 떼들의 유영이 만들어 내는 비경을 즐길

수 있다

 

오른쪽 멀리보이는게 주상절리

송악산 아래 상가들 이마을이 산이수동 앞에 보이는게 마라도가는 산이수동 선착장

계요등

‘닭’과 연관된 풀 종류로는 닭의난초, 닭의덩굴, 닭의장풀이 있으며, 나무로는 계요등이 있다.

계요등은 길이가 5~7미터 정도에 이르며 잎이 지는 덩굴식물이다. 근처에 있는 다른 식물의 줄기를

만나면 왼쪽감기로 꼬불꼬불 타고 오르지만, 신세질 아무런 식물이 없어서 땅바닥을 길 때는
덩굴을 곧바르게 뻗는다.

 

어떻게 해서 ‘계요등(鷄尿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자.

계요등이 한창 자랄 때 잎을 따서 손으로 비벼 보면 약간 구린 냄새가 난다. 그래서 계요등의 다른 이름은

 구린내나무다. 또 속명 Paederia’는 라틴어의 에서 유래되었는데, 역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봄과 여름에 냄새가 더 심하고 가을이 되면 거의 없어진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혐오감을 줄 정도로 냄새가 지독한 것은 아니며, 더욱이 양계장에서 풍기는 진한

 닭똥 냄새와 비교하여 그다지 역하지도 않다.Daum백과 계요등

 

 

풍화작용에의해 변형된 시루떡바위군

 

송악산은 초기에 얕은 바다속에서 마그마가 터져 나올 때

마그마가 바닷물과 격렬히 반응하며 폭발하여 잘게

부서진 화산재를 뿜어 내리게 되고

이 화산재가 쌓여 나지막한 고리형태의

화산체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직경이 약 700m인 용화활안에 분석구와 용암호가 있는

독특한 형태의 화산이다

 

 

이렇게 휴식년제를 시행하나보다 앞으로 송악산에 오르는 분은 정상에 오를 수 가 없으니

참고하시길

소라 전복 멍개로 간단히 이곳 해산물로 소주한잔하고

여길보니 이곳이 산이수동에 속하나 보다

 

 

왼쪽은 2년전에 다녀온 마라도 오른쪽은 오전에 다녀온 가파도

 

 

 

 

줌으로 담아본 가파도

 

 

 

검은 모래백사장 

으아리

마주나며 3~7개의 작은 잎으로 구성된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길이 3~10cm의 달걀꼴 또는 달걀 모양의

댓잎피침형으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간혹 깊게 패여 들어간 자리가 있다. 양면에 털이 없고 3~5개의

맥이 있다. 잎자루는 구부러져서 흔히 덩굴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

7~9월에 흰 꽃이 원추 꽃차례 또는 취산 꽃차례를 이루며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달려 피는데 향기가 있다.

 양성화이다. 꽃잎은 없다. 꽃받침 조각은 4개이며 길이 12mm 정도의 타원형이고 꽃잎처럼 보인다.

 수술과 암술은 많다.다음백과ㅣ참으아리

짚신나물은 얼마전에 설명해서 생략

사광이 아재비(며느리 밑씻개)

들에서 흔히 자라는 잡초이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면서 잎줄기가 1∼2m 뻗어가고 붉은빛이 돌며 네모진 줄기와

더불어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어 다른 물체에 잘 붙어 물체를 타고 오르는데 유리하다. 잎은 어긋나고 삼각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잎 같은 턱잎이 있다.

한방용으로 이 며느리밑씻개의 효능이 며느리의 부인병 치료에 탁월하여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부인병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즉 시어머니가 이 식물을 채취해서 물을 우려내어 며느리의

 부인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랑이야기도 동시에 있는 것을 보면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질시의

 대상으로도 여겼고, 사랑의 대상으로도 여겼음을 알 수 있다.Daum백과 며느리밑씻개꽃 (사광이풀)

 

 

 

 

2차대전 당시 남제주군 대정읍에 만든 일본의 비행장 시설입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결7호작전`이라는 군사작전으로 제주도(濟州島)를

자신들의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관동군 등

일본군 정예병력 6만-7만여명을 제주도(濟州島)에 주둔시켰습니다.

 

당시 제주도(濟州島) 인구 25만여명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제주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들은 각종 해안기지와 비행장, 용이한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건설 등 각종 군사시설 건설에 나서는 한편

제주 섬사람들에게 식량지원 등도 요구했으며 남제주군 대정읍 서남쪽 해안가에 있는 송악산 주변도

그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에도 상관없이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본토 사수를 위한 `옥쇄`지역으로 삼았던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군은 송악산 일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송악산-사계리-화순항-월라봉에 이르는 해안간에

연합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해안특공기지를 설치해

포대 및 토치카, 벙커 등을 설치했습니다.

  

 

알뜨르비행장

제주사람들은 대정읍 알뜨르 평야에 건설했던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을 이 지역 이름을 따 이렇게 부릅니다.

해안가에 맞닿은 알뜨르비행장은 중일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1926년 처음 계획된 비행장 건설은 193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1차로 이뤄졌습니다.

일본군은 1937년에 비행장 확장계획을 세워

기존 20만평에서 2차로 1945년까지 80만평으로 비행장을 확장해

사세보의 해군항공대 2500여명과 전투기 25대를 배치했습니다.

가미가제호 조종사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주민들이 지금 밭으로 사용하는 알뜨르 평야에는 당시 건설된 20여개의 격납고가 해안을 향해 자리잡고 있습니다.

50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으나 무척 견고하게 만들어져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부근에는 대공포 진지와 정비고, 막사로 사용했던 건물들의 흔적도 있습니다.

또 비행장 동북쪽 탄약고터는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으며,

그 안에는 2개의 탄약고와 2층으로 만들어진 복도가 있습니다.

몇년전 당시 일본군 장교로 알뜨르비행장에 근무했던 일본인들이

이곳을 방문한 뒤 이 지역의 한 학교에 성금을 전달하려다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송악산 일대에는 지하진지를 구축했던 흔적들이 있습니다.

일본군은 송악산 지하에 대규모 땅굴을 파고 지하진지를 구축했으며,

송악산 알오름쪽의 땅굴은 군수물자를 실은 트럭이 드나들 수 있도록 크고 넓게 건설되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파들어간 땅굴이 거미줄처럼 서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15개의 인공동굴이 뚫려있는데,

너비 3-4m, 길이 20여m에 이르는 이 굴들은 성산일출봉 주변의 인공동굴처럼 어뢰정을 숨겨놓고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했던 곳입니다.

제주도(濟州島)에 남아있는 많은 일제 침탈의 현장.

이 해안지역만이 아니라 도내 중산간지역에도 각종 토치카시설과 주둔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수십만명이 희생된 오키나와.

연합군이 만일 오키나와로 상륙하지 않고 제주도(濟州島)로 상륙했다면

일본군은 아마도 제주 섬사람들을 볼모로 오키나와처럼 옥쇄지역으로 삼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제주도(濟州島) 곳곳에 남은 전쟁의 찌꺼기.

아직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한반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국내 최대의 일제시대 군사유적지인 것입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비운의 흔적입니다

 

 

진지들도 이젠 숲에가려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외돌개는 몇번 왔지만  또 인증은 하고

외돌개 앞에 보이는 범섬

 

돌아오며 올레 전통시장에 들려 광어와 우럭회를 사고 꽁치 김밥도

비도오고 어쩐지 고등어회는 구미가 땡기지 않아 보는걸로 만족

이게 최고의 회로 처준다는 다금바리라고 처음보는 고기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현재 710m에 달하는
아케이드 상가다. 시장 안쪽은 '王' 자형이다. 공영주차장 쪽은 가장 먼저 꽁치김밥이 시선을 끈다. 시장 입구 우정회센타에서 곁들이로 내던 게
시장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김밥을 싼다. <BR><BR>오메기떡은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알리는 데 일조한 제주 전통
음식이다. 제주 차조를 익반죽해서 팥소를 넣고 겉에 통팥으로 버무린다. 쫄깃하고 달콤한 맛에 반해 육지에서 택배로 주문할 정도다. 시장 대다수
떡집에서 맛볼 수 있다. 보리떡이나 빙떡 등도 제주 전통의 맛을 더한다.<BR><BR>요즘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갈치나 옥돔 같은 수산물,
한라봉이나 용과 같은 과일 쇼핑뿐만 아니라 제주를 대표하는 '먹방' 투어 코스로 각광 받는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찾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P></DIV>[Daum백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 2017 한국관광 100선,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 2009년 제주올레를 만나 되살아났다. 제주의 길을
걷고, 제주 사람을 만나고, 제주의 먹거리를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근래에는 제주 '먹방'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오메기떡부터 귤하르방까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다. 상가와 상가 사이 통로가 넓고, 주차 시설도 넉넉하다. 하물며 서귀포 시가지 중심에 있다.
매일이 '올레'다!Daum백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감귤 산업이 호황을 누리며 관광객도 일찌감치 찾아들었다. 하지만 감귤 산업이 하향세로 돌아서며 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형 마트가 등장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케이드를

 설치하며 시장 내부를 단장했다.Daum백과

꽁치김밥은 즉석에서 맛을 본다 생각보다 구수하고 맛이 있다

전환점은 역시 제주올레다. 2009년 제주올레 6코스가 시장을 가로질렀다. 마침 문화 관광형 시장으로 변모하던

시기와 맞물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이 생겨났다. 서귀포매일시장이나 매일시장으로 불리다가, 이름이 바뀐 뒤에는

올레꾼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근래에는 제주올레와 상관없이 여행지로 시장을 찾는 여행자도 부쩍 늘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1960년대 서귀포 시가지의 중심인 중앙동에 문을 열었다. 이전부터 서귀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을 이뤘고, 부산
국제시장을 오가던 도매상들이 가세했다.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농축수산물, 잡화 등을 팔았다.

제주 오메시떡

오메기떡의 역사;


제주도에선 워낙 음식이 귀해 떡을 간식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떡은 기원의 뜻을 담고 있어서 기도드리러

 갈 때 가져가곤 했다. 제사용 떡에는 소금간을 안 한 심심한 떡이 많은데[2] 외지인에게는

그 떡 맛이 생소할 수 밖에 없다. 제주 떡 중 유일하게 단맛이 나는 것이 지름 떡과 오메기떡이라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었고 상품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과거에는 차조의 수확량이 많아 쉽게 떡이나 술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차조에 고구마를 넣어

시루떡을 만들어 먹는다. 벼가 귀하다 보니 자연스레 차조 100%로 술을 빚기 시작했고 과정 중, 반죽이 뜨거울 때

일부를 떼어다가 할머니들이 손자들에게 팥고물을 묻혀 주던 게 오메기떡의 시작인 것이다.

뜨거울 때 동그랗게 빚지 않으면 금방 굳어버리는 차조의 특징 때문에 산업화되지 못했고

근래에 들어 점점 제주산 차조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오메기떡이 유명해진 계기


지금처럼 전 국민이 알게 된 것은 TV 프로그램 ‘수요미식회’ 제주도 편에 동문 시장의 오메기떡이 소개된

이후. 덩달아 시장 내 특산품, 식당들이 인기를 얻어 동문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제주도 식품의 관광 상품 역사를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옥돔이었고 그 다음에는 표고버섯, 고등어 그리고 나온 것이 감귤 초콜릿이다.

사람들이 좀 더 제주도다운 것을 찾던 중 마침 오메기떡이 등장했고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현재는

 제주도 관광 산업 전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시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자연휴양림 숙소로 돌아간다


Le Concerto De La Mer (바다의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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