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 구절초 동산이 있다는 것을 작년에 알았는데 너무 늦어 못갔는데 검색해보니
지금가면 만개라고하여 옆지기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 정작 부근에가서 네비를
구절초 축제장으로 찍으니 삼문동 주민센터로 안내를 하여 부근을 아무리 둘러봐도 구절초는 안보인다
몇군데를 빙빙 돌다가 않되겠기에 주민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솔밭으로 가 보란다(10/21)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봐줄만하여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고 밀양강가와 솔밭도 둘러본다
안도현님의 시가 생각나서 옮겨본다
무식한 놈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길을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글/안도현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들국화 어찌 이리도 햇갈리는지 나만 그럴까?
여기까지 왔으니 인증도 하고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박용래, '구절초' 전문)
평생을 화장을 안하고 살아온 옆지기 오늘 따라 더 늙어보인다
모두가 내탓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정겹게 보이는 두여인 남편분인 것 같은데 사진 찍어 달라니까 휘리릭
가버리더만 다시 돌아와 찍어주는 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9시도 않됐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구절초 꽃/김용택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저리도 잔잔히 피어 있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서늘한 저녁 달만 떠오르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드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서늘한 저녁 달만 떠오르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드네
강건너에는 영남루와 무봉사가 자리하고 있다
꽤나 오래전에 조성된 듯한 소나무숲 아름들이 많네
푸르고 잔잔한 밀양강과 솔내음 가득한 솔숲을 거닐어 본다
소나무 숲에 조성된 운동장을 뒤로하고 조선의 삼대루 (부벽루.촉성루)중에 하나인 영남루에 올라본다
정문으로 들어와야 되는데 옆지기의 다리도 불편하고 주차장위에 바로 후문이 있기에
들어오다 첫 만남이 작곡가 박춘석씨의 옛집을 먼저 돌아본다
아리랑의 아(我)는 참된 나를 의미하고 리(理)는 다스리다, 통하다는 뜻이며
랑(朗)은 즐겁다, 밝다는 뜻이므로 아리랑은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이고
아리랑고개를 넘는것은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가는 의미이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는것은 진리를 외면하는자는 그 과보로
얼마를 못가서 고통에 빠진다는 뜻이라 한다.
서춘수님글에서
영남루(嶺南樓)는1931년 전국 16경의 하나로 선정되었고
신라 경덕왕(742~765)때 이자리에 세워졌던 영남사가 폐사되고 흔적만 남게 되자
1365년(공민왕14)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신축해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고
수차례의 증개축을 하여 오다가 정면 5칸, 측면 4칸인 현재 건물은
1844년(헌종10) 새로 개창하여 본루는 조선 후반기 건축미로 대표할만한 루각이고
릉파각(凌波閣)과 침류각(沈流閣)인 양익루가 있으며
부속건물로 사주문, 일주문, 천진궁 등이 있었다.
밀양박씨의 시조
신라 54대 경명왕 아들(장남) 밀성대군(박언침)
밀양(密陽) 박씨의 시조는 신라의 시조 왕 박혁거세(朴赫居世 BC 69-AD 4)의 30세 손이며 신라 54대 경명왕(재위 917-924) 승영(昇英)의 여덟 왕자 중 첫 번째 왕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 언침(朴彦忱)으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하여 본관을 밀성으로 밀성 박씨를 이루었으며,
후에 밀성의 지명이 밀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본관을 밀양(또는 밀성)으로 밀양(또는 밀성) 박 씨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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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5간, 남북 4간의 팔작지붕에다 좌우로 2개의 딸린 누각을 거느린 이 거대한 2층 누각은 신라의 5대 명사 중의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건물인 소루였으나, 영남사가 폐사되고 난 이후 고려 공민왕 때 그전부터 있던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하여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84년에 밀양부사 이인재가 다시 세운 것이다.
광좌웅부:귤산 이유원의 작품으로 낙동강 왼쪽의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뜻이라고
교남명루: 귤산 이유원의 작품으로 문경새재 이남의이름높은 누각 이란 뜻으로 교남은 영남을 말한다
능파는 물위를 가볍게걸어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며 또한 파도를 넘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밀양부사 이인재의 맏아들 이증석이 11살에 쓴 작품
밀양읍성이 한데 어울려 마치그림과 같다는 말
이증석의동생 이현석이 7세에 쓴글씨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고 편액된 누각답게 밀양강을 끼고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린다.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강과 삼문동의 솔 숲
옆지기가 한번도 올라보지를 못했기에 안내를 하게 됐고
영남루는 예전에 세세하게 기록했기에 이번에는 대충 정리를 한다
아래로 내려가면 아랑각과 석화를 다시 볼 수가 있는데 공사중이라
막아놓아서 생략을 한다
10월도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 같이 이노래를 불러봐요
잊혀진 계절 /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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