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이었으며, 조선 태조의 본향으로 왕조의 뿌리다. 또 한식과 한복, 한지 등 우리 문화의
참맛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전주한옥마을은 그 중심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상인들에
대항해 조성한 한옥촌으로, 세월이 흘러 전주를 상징하는 마을로 자리매김했다.(10/26)
황손 이석(皇孫 李錫, 아명(兒名)은 이해석(李海錫), 미국 거주 시절 영어 이름은 폴 새뮤얼 해리슨 리
(Paul Samuel Harrison Lee), 1941년 8월 30일 ~ )은 대한제국 황족의 후손으로 대한제국 고종 광무 태황제
(高宗 光武 太皇帝)의 서얼 황자였던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의 열째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전라북도 전주 한옥마을의 촌장으로 승광재(承光齋)에 거주한다. 전주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승광재에는 이석씨가 출타를 했는지 문이 잠겨있다
일제 강점기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아명(사실상 호적명)은 이해석(李海錫)이다.
서울창경초등학교를 거쳐 경동 중·고등학교를 나와 196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에 입학했다.
1962년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우연한 기회에 미국 제8군의 무대 가수 채용에 합격하여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듬해 무대를 옮겨 워커힐에서 영어로 사회를 보며 팝송을 불렀다.
그 뒤 가수로 데뷔하였다. 주변의 반대에도 가정 생계를 꾸리기 위해 가수로 데뷔하여 '비둘기 집' 등을
불렀으며 방송 출연 후 정규 음반 1집과 2집을 냈으며 《비둘기 집》, 《두 마음》, 《꽃집 아가씨》
등의 곡이 유명하였다
아래 노래가 바로 이석씨가 부른 비들기집이다
2012년에 갔을 때의 모습
날이 어두어지기 시작하니 마음들이 바빠 대충 돌아보며 대장님께서 관심이 많으신
최명희 문학관으로 이동을 한다
최명희
본관은 삭녕(朔寧). 전라북도 전주 출생. 부친의 본향인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 마을은 삭녕 최씨의
500년 세거지(世居地)로, 그의 대표작 <혼불>의 주 배경 마을이다. 전주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사범학교
병설중학교,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2년 2월에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한 해 3월에 모교인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고, 1974년 3월에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로 전근하였다.
1980년≪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정식으로 나왔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장편소설공모’에 <혼불>(제1부)이 당선되었다.출처.다음백과
이 후 보성여고 교사직을 사임하고 전업작가로 나서, 몇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고, 미완의 장편 <제망매가 祭亡妹歌>를
≪전통문화≫에 연재하다가 <혼불>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중단하였다. 1988년 9월<혼불> 제2부를 월간 <신동아>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5년 10월까지 계속하였다. 그런 가운데 1990년 12월에 <혼불> 제1부와 제2부를 네 권 분량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으며, 최종적으로 1996년 12월에 전 5부 10권으로 한길사에서 출간하였다.출처.다음백과
<혼불>은 최종 출간 당시 집필 기간만 17년이 넘게 걸린 결과로서 작가의 투혼이 발휘된 작품이라 하여 높이 평가되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민속과 풍속 등 민족지적 정보를 발굴하여 세심하게 기술한 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극화한 점 등이
이 작품 특유의 미학으로 꼽혀 높이 평가되곤 한다.출처.다음백과
작가의 말에 의하면 ‘모국어의 바다’를 이룰 꿈을 이 작품에 투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의 가치 인정을 받아, 단재상(문학부문)·세종문화상·호암상(예술부문)·여성동아대상·전북애향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예술혼을 기리고 후원하려는 각계의 인사들이
모여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성되기도 했다.출처.다음백과
그러나 이런 영예를 뒤로하고, 지병이 악화되어 1998년 12월 11일 영면하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전주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전주시 덕진동 소재 ‘최명희 문학공원’에 안장되었다. 위의 작품 외에도 <만종 晩鐘>·<몌별 袂別>·
<정옥이>·<탈공 脫空> 등 단편소설을 남겼다.출처.다음백과
혼불 줄거리
1930년대 말 전북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 마을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 청암 부인이다.
열아홉에 청상이 된 그는 조카인 이기채를 양자로 맞고 쓰러져 가는 이씨 문중을 일으켜 세운다
사촌 여동생 강실을 좋아한, 이기채의 아들 강모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허효원과 결혼하게 되지만,
강실을 잊지 못한다. 강모는 징병을 피해 만주로 떠나고 병세가 깊어진 청암 부인은 죽음을 맞는다.
때마침 거멍굴의 상민들도 종으로 짓눌려 왔던 지난 세월의 한을 되갚으려 하는데 상민 춘복은 강실을
범하고 만다. 이 일로 강실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여 그녀의 뱃속에는 춘복의 아이가 자란다.
가문이 점점 기울어져 가는데, 장손인 강모는 만주로 가서 소식이 없고, 효원은 아비 없는 아이를 낳는다.
청암 부인의 별세 이후 가문을 지키는 일은 이제 3대 종부인 강모의 아내 효원의 몫으로 남겨진다
출처.해법문학 현대소설
인물 소개
청암 부인:위엄과 기품을 지닌 인물로,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로서 역할을 다한다.
이강모:청암 부인의 손자이자 이기채의 아들. 종가의 장손으로 태어나 허효원에게 장가를 들지만,
사촌 누이동생 강실을 좋아한다. 패륜과 방탕을 거듭하다 사회주의자인 사촌형 강태를 따라서 만주로 떠난다.
허효원:남편인 강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인물로, 청암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종부(宗婦)의 대를 잇는다.
혼불’의 의미
우리의 육신이 죽음과 동시에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하게 될 때 둥근 접시만한 크기의 푸른 색을 띤 것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를 ‘혼불’이라 하며, 흔히 ‘도깨비불’이라고도 불린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죽은 이의 몸에서 영혼이 불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죽은 자가 자신의 추억이 서린 곳을 떠돌다 사라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 작품에서‘혼불’은 우리의 전통, 삶, 민중들의 생활 양태와 같은 우리 민족의 정신과 정서를 상징하고 있다.
아울러 일제 시대는 바로 우리 민족의 생명인 혼불을 빼앗긴 어두운 시절을 상징하며, 이 소설은 어둡고 억눌린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꺼진 혼불을 환하게 지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출처.해법문학 현대소설
혼불’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생활상
‘혼불’은 한국인의 풍속사, 생활사, 의례와 민간 신앙의 백과사전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엄숙한 관혼상제의 의식에서부터 일상적 풍속이나 관습에 이르기까지 그 유래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관제, 직제, 신분 제도를 비롯하여 혼례의 모든 절차와 의례, 우리의 전통 가구, 상례와 제례의 모든 절차와 법도, 풍수
사상과 무속 신앙, 조선의 관제, 직제, 행정 구역, 신분 제도와 노비 제도, 백정의 모든 작업 과정, 염료 제조법,
옷감의 때와 얼룩을 빼는 갖가지 세탁법 등 한국인의 모든 생활을 상세히 구성하고 형상화하였다.출처.해법문학 현대소설
최명희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 비교
토지’와 ‘혼불’은 구한말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간을 배경으로 지방 지주 집안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토지’의 경우 1897년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경남 하동의 만석지기 최참판 댁의 손녀인 최서희가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혼불’은 1930년부터 1943년까지를 배경으로 전북 남원의 오천석 지기 매안 이씨 가문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 3대의 삶이 중심축이다.
일제의 수탈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나가는 양반의 풍속사와 그 그늘에 사는 평민들의 생활사가 복원되어 있는 것도
‘혼불’과 ‘토지’의 공통점이다.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생애를 걸고 쓴 작품들이다. 아울러 민족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방대한 분량과 풍속과 감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출처.해법문학 현대소설
근래 들어서는 ‘한복데이’가 생기며 한복 차림으로 한옥마을에 오가는 젊은이가 많다. 전통 공연 역시 각광받는다.
공연만 보는 게 아니라 식사나 체험 등을 결합해 한옥마을을 한층 풍성하게 누리도록 돕는다. 비빔밥, 오모가리탕,
콩나물국밥 등 먹거리도 빠질 수 없다. 전주한옥마을은 전통과 문화,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슬로시티다.출처.한국관광100선
그에 앞서 슬로시티와 어울리는 전통문화 체험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통 체험은
뜻밖에도 한복 체험이다.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생활한복에서 기생 한복, 커플 한복까지 젊은 층을 사로잡는 고운 한복이 많다. 한옥마을 거리는 한복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전주향교에서 시작한 한복 대여소도 한옥마을에만 20여 곳으로 늘었다. 1시간에 5000원, 3~4시간에 1만 원 선으로
대여 비용도 큰 부담이 없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한복데이’에는 흥미로운 행사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출처.한국관광100선
주중이고 어두어 지는데도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만이 몰려있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천주교의 성지 전동성당, 한류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 전주향교 등에서
우리 문화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한지 공예,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전통 공예 체험도 가능하다.
전동성당 건너편에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은 전주의 중심이 되는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태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조선의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전주사고의 실록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유일하게 지켜졌다. 내부는 전시관으로 개방한다.
사고 입구의 대나무 숲이 아름다워 포토 존으로 인기다. 북쪽에는 태조 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지난 2010년에
지은 어진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경기전 서문 쪽으로 나오면, 경기전 담장과 전동성당이 어우러진
풍경에서 조선의 600년 시간이 한 프레임에 담긴 느낌이 든다..출처.한국관광100선
전주는 두말이 필요 없는 고도(古都)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후대에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본향인 전주가 왕조의 뿌리가 됐다. 조선 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곳으로, 호남과 제주 일대의
중심이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판소리’의 고장이자,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다. .출처.한국관광100선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 여행은 태조로를 걷는 데서 시작한다. 태조로는 풍남문에서 오목대 방면 약 550m 도로다.
한옥마을의 가장 큰 길이자,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조선의 시간을 잇는다. 풍남문 쪽에서 태조로로 들어서면
전동성당이 먼저 반긴다.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돋보이며, 1914년에 완공했다.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 소문이 나며
그 명성이 전국에서 손꼽힌다. 하지만 그 이전에 천주교의 성지다. 179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지 위에 세웠다..출처.한국관광100선
풍남동과 교동 일대 한옥을 아우르는 전주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전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에는 전주의 꼿꼿한 정신이 담겼다. 시간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전군가도가 개설됨에 따라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다.
그러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확장했다.
이에 반발한 전주 사람들이 풍남동과 교동에조성한 한옥촌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 오늘날 한옥 600여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 오목대에 올라 전경을 보면 실로 장관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한옥마을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출처.한국관광100선
전동성단 뒤에 있는 전주 비빔밥에서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8시가 다돼서
전주를 출발해 부산으로 향한다
전통시장도 들러볼 만하다. 풍남문 지척에 자리한 남부시장은 전주의 활기를 느껴볼 수 있는 일석삼조의 시장이다.
첫째, 남부시장 본래의 생기다. 조선 시대 남문밖 장의 맥을 잇는 장터로, 전주에서 가장 북적이는 시장이다.
둘째,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부터 펼쳐지는 야시장이다
시장 통로를 중심으로 이동 판매대가 들어서고, 먹거리와 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파는 짜조와
쌀국수 같은 동남아 음식, 전주비빔밥, 초밥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간다. 셋째, 시장 2층의 청년몰이다.
젊은 작가들이 꾸려가는 젊은 문화 시장으로, 형태부터 문구나 판매 물품까지 종전 시장의 틀을 깬다.
전주의 골목 풍경이 보고 싶을 때는 자만벽화마을이나 서학동예술인마을이 제격이다. 동네 골목과 예술 감성이
어울려 아기자기하다. 구석구석 쉬이 지나칠 수 없는 매혹이 넘쳐나고, 그 속에서 우리 이웃이 살아간다.
천년 고도의 근근한 생명력이요, 그 위에 새롭게 더해진 슬로시티의 숨결이다.출처.한국관광100선
시내 여러곳을 돌아보면 볼거리가 많은 곳인데 항상 올때마다 시간에 쫓기어 제대로 보지를 못하고
떠나게된다 특히나 전주관아 남문시장은 아직도 한번도 못가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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