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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순창 강천산 산행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군의 도계를 이루는 강천산은 비록 산은 낮아도 깊은 계곡과 맑은 계곡 물, 그리고 기암절벽이

 병풍을 치듯 늘어선 모습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강천산은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룬다. 특히 강천산만의 자랑인 아기단풍이 곱게 물들 때 더욱 장관이다. 등산로가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다.

등산로 초입부터 병풍바위를 비롯, 용바위 비룡폭포 금강문 등 명소들이 즐비하고 금성산성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오밀 조밀한 산세에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관광자원에 힘입어 1981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강천사와 삼인대 사이를 지나 홍화정 옆길로 들어서면 50m높이에 걸린 구름다리(현수교)가 아찔하게 보인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빨간선 코스인데 내가 다녀온 곳은 파란선 코스다

군립공원(1981년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천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신라 진성여왕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剛泉寺)가 있으며, 산 이름도 강천사(剛泉寺)에서 유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유명하다

주차장에내려 바라본 단풍나무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황홀해진다

비행기 한대가 지나간 자리가 강천산 구름다리 만큼이나 직선으로 그어저있다

아~~ 이게 바로 불탄다고 말하는 풍경인가 보고 또 보고 감탄사 절로

이른 시간대라서 인지 인공폭포의 수량이 적어 별로이네

단풍 행락객들의 모습 주말에는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을까

내 여동생도 토요일에 서울에서 다녀갔다는데

가물어서인지 계곡은 거의 말라있고 송어떼는 보이지도 않는다

전에 보니 송어떼가 우굴거리던데

 

 

 

 

메타스퀘이아도 노랗게 물들어 가고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정겹기만하다

여기 아랫소는 물반고기반일 정도로 물고기들이 많이 놀고 있었는데

날씨가 차거우니 깊은 곳으로 숨었나 보이질 않고

 

A팀은 진즉 병풍폭포 위에서 깃대봉을 향해 올라가고 몇명만 강천문을 통과

C코스를 택해서 사진을 찍으며 올라간다

절의탑 

 순창은 예부터 절의(節義)의 고향이라 부른다. 고려말 순절한 72현중 다섯분이 순창인이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국란이 있을 때 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바친 분들이 많다

강천산의 앞쪽과 삼인대 사이에 한 그루 노거수가 서 있는데 나무의 높이는 20m, 둘레는 3.1m, 수령은

300년이 된 모과나무이다.
이 모과나무는 지금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어 가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볼거리가 되고 있다.
순창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모과나무를 지난 1981년 보호수로 지정하고 관리하다가

 지난해 1998년 1월 9일에는기념물 제 97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강천사(剛泉寺) 앞 내를 건너 남쪽에 있는 정면 1칸의 비각으로 크기는 높이 157cm, 너비 80cm, 두께 23cm이다. 비각 안에는 높이 157㎝, 너비 80㎝, 두께 23㎝의 삼인대 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1744년(영조 20) 4월에 세운 것으로 홍여통(洪汝通), 윤행겸(尹行謙), 유춘항(遊春恒) 등 군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대학자인 이재 (李縡:1680∼1746)가 비문을 짓고, 민우수(閔遇洙:1694∼1756)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전서(篆書)를 썼다.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이 성공한 후 중종반정을 주도하고 성공한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신수근(申守勤) 일파가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하고,

 

이어 신수근의 딸 신씨를 폐비시키고 윤여필의 딸인 숙의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새 왕비 장경왕후는 왕후가 된 지 10년 만에 사망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유옥(柳沃)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이 이곳이라 하여 삼인대라 부르게 되었다

여유있게 단풍구경하며 A팀 따라갈까 하다가 힘들지 않은 코스 나만의 코스를 선택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 구름다리를 건너 팔각정 전망대로 향한다

 

강천산 구름다리를 건너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르면 신선봉 팔각정과 광덕산을 오를 수가 있다

강천산 현수교는 신선봉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 건립한 다리로, 1980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0년 8월 2일에 완공하였다. 설계는 전북 대학교 박춘혁 교수가 맡았고 시공은 전주 동진

공업사에서 진행하였다.길이 78m, 높이 50m, 폭 1m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래전에 설치되어 강천산의 명물 전국의 명물이 되었었는데 이제는 전국에 수 없이

건설된 거대한 다리들 때문에 그명성이 많이 퇴색되었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강천산 제1봉 왕자봉과 제2 형제봉 아래 계곡과 댐이 있는곳

그리고 전망대와 바위절벽

 

신선봉에서 바라본 강천사 전경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87년(진성왕 1)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혹은 1482년(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에 보면 신령(信靈)이 광덕산(廣德山)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나와 있다.

1316년(충숙왕 3)덕현(德賢)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1482년(성종 13)중조(中照)가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씨의 시주를 얻어 중창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 절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전소되었으며, 1604년(선조 37)태능(太能)이 중창하여 강천사만은

이전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뒤 1855년금용당(金容堂)이 중창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보광전(普光殿)·

첨성각(瞻星閣)·칠성각의 당우들이 불타버렸다.

그 뒤 주지 김장엽(金奬燁)이 1959년에 첨성각을, 1977년 관음전을, 그리고 이듬해 보광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수도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근래에는 1992년 보광전을 대웅전으로 바꾸었고, 1997년 첨성각을 헐고 복원하였다.

 

역사적으로 이 절에는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바뀌고 도량이 정화된다.”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오층석탑과 금강문(金剛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삼인대(三印臺) 등이 있으며, 오층석탑은 1316년(충숙왕 3)덕현이 중창할 때 건립한 탑이다.

 이 탑 북쪽 약 1m 지점에는 중대석(中臺石)과 보주(寶珠)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다.

 

 

금강문은 1316년덕현이 절 주위의 풍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자연암석으로 된

사각문으로 높이 8m, 너비 4m이다.

또한, 이 절에는 천년을 살아 온 지네가 인간으로 변신하려다가 법당에서 피우는 향내음이 너무 독해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앙갚음으로 요괴가 되어 매일 밤 승려 한 사람씩을 죽였다는 전설과 거지·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신선봉에 있는 팔각정 쉼터

신선봉 정상

신선봉에서 옥호봉을 약간 비켜서 광덕산으로 향한다

광덕산 정상 70년대 산행 때는 여기가 강천산(578m) 정상으로 알고 다녔는데 저건너 왕자봉(584m)이6m

높게 나타나 강천산의 이름을 내주고 광덕산으로 불리게 된 것 같다

 우리가 구장군폭포로 하산을 하며 돌아본 광덕산 정상

저 멀리 순창 읍내도 바라보이고

강천호

멀리보이는 강천산 구름다리

가파르게 올랐던 데크길과 신선봉 팔각정도 담고

강천호 댐은 오래전에 있었으나 봉괴로 방치했다가 최근에 다시 설피한 것 같다

 

  

 

내려오며 선녀계곡의 단풍이 아름다워 자꾸 샷다를 눌러봤다

반영을 담아보려하니 물빛이 검붉어 시원하게 잡히지를 않는다

 

구장폭포 주변의 바위절벽

 

 

드디어 구장군폭포에 도달했다

 

절벽아래 그림같은 산수정

 

비록 인공폭포이지만 수량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단풍에 취해 인증도하고

절벽중간에 있는 굴인데 줌으로 당겨보니 사람이 들어다닌 흔적이 보인다

옛날에 설담과 뇌암이라는 수도승이 이굴에서 도통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구름다리의 아슬아슬한 모습

 

 

우리는 내려오는데 여전이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메타세쿼이야속의 유일한 현생종으로 중국 중부지방의 깊은 골짜기가 원산지이다.

 작은 가지와 잎은 줄기를 따라 끝에서부터 쌍으로 난다. 잎은 밝은 녹색이고 깃털처럼 생겼으며, 가을에

적갈색으로 변한다. 구과에는 길고 가는 자루가 있다.

 

지금은 메타세쿼이야속으로 분류되는 화석들이 한때는 세쿼이야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메타세쿼이야속은 1941년이 되어서야 이름이 붙고 상세히 기재되기 시작했다. 화석 표본이 많은 것으로 보아

백악기와 제3기 전기 동안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의 북위도 및 중위도 지방에 널리 퍼져 자랐음을 알 수 있다.

 

1940년대에 살아 있는 나무가 발견되기 전까지 메타세쿼이야속은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다. 겨우 몇 천 그루만이

 중국 중부의 700~1,400m 고도지역에 살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나무들이 발견된 뒤 씨와 삽수(揷穗)를

 통해 전세계에 옮겨심어졌다.

 

한국에서는 수송이라고도 부르며, 길가나 정원에 널리 심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

근처에서 메타세쿼이야와 비슷한 화석식물인 메타세쿼이야 오키덴탈리스(Metasequoia occidentalis)가 발견되었다.

 

 

연리지

내려오다보니 병풍폭포에 무지개가 떴다 얼마만에 본 무지개인가

 

 

햇볕에 반사된 폭포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마지막 다리에서 계곡의 모습을 담으며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금년에는 청량산을 시작으로 주왕산 축령산 문수산 강천산 단풍을 원 없이 본다

다음주에는 정읍 입암산으로 가는데 그때까지 단풍이 있으려나 다시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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