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5일 예식장 갔다가 오후시간에 다녀왔다
헌법 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3인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며, 3인은 국회가
선출한다. 헌법 재판소는 독립적 기관으로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민주 정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위헌 법률 심판권 .탄핵 심판권 .위헌 정당 해산 심판권 .권한 쟁의 심판권 .헌법 소원 심판권 을 갖는다
헌법 재판소의 ‘종국(최종) 결정’은 재판관 과반수의 찬성으로 한다. 그러나 위헌 법률 심판, 탄핵 심판 결정,
위헌 정당 해산 결정, 헌법 소원에 관한 ‘인용 결정’의 경우는 재판관 9인 중에서 6인 이상의 찬성이 조건이다.
또한 ‘권한 쟁의 심판’은 재판관 7인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출처:개념톡톡 용어사전
헌법재판소뒤 언덕에 있는백송
백송(白松)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수령(樹齡)은 약 6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7m, 주간이 지상 40㎝에서 두 줄기로 5도 40도로 분지하며,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36m, 1.86m나 되는 거목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17.8m, 남북으로 18.5m이다. 다른 백송(白松)에
비해 큰 편이며, 줄기가 아랫부분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줄기를 지탱하기 위한 받침대가 세워져
있으며 나무의 모습은 좋은 편이다. 재동 백송 주변터는 예전에는 창덕여자고등학교 교정이었으나,
현재는 헌법재판소가 위치하고 있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첫 골목부터 들여다본다 조용한 주거지역이다
가회동거리
경근당과 옥첩당 쪽으로 먼저 올라본다
조선 어학회터
조선 어학회는 1921년 주시경(1876~1914)의 제자들이 한글의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발족한 조선어 연구회의 후신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광복후 한글학회로 이어졌다
예로부터 북촌이라 하여 양반 동네로 알려진 이곳 주택은 모두 조선 시대의 기와집으로서 상류층의
구조 형태를 간직하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원래 이 동네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큰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밖에 없었으나, 일제 말기와 6.25 수복 직후 지금의 상태로 늘어났다.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해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다.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백 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전통문화체험관이나
한옥음식점 등으로 활용이 되어 간접적으로나마 조선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왕조 역대 제왕의 어보(御寶)와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관혼상제(冠婚喪祭)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종친부의 건물 중에서 경근당(敬近堂)은 왕실의 사무를 처리하던 전각이며, 옥첩당(玉牒堂)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두 건물은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면서 원래의 위치인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되었다.
현대 미술관 앞 조형물
현대미술관
고사목을 무슨 목적인지 하얀 페인트 칠을 해 놓았다 그냥 자연 그대로 놔뒀으면 더 좋았을텐데 ....
백인제 가옥(백병원 선립자)
백인제 가옥은 1913년인 일제강점기 초기에 지어진 집이다. 이 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시기에 지어진 집을
살펴보아야 한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한옥은 서구와 일본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즈음에 지어진
건물로는 아산의 윤보선 생가(1904년), 전주 학인당(1908년), 괴산 김기응가옥(1910년), 함양 허삼둘 가옥(1918년),
익산 조해영 가옥(1918년) 김안균 가옥(1922년) 등이 있다. 기타 서울 홍종문가옥(1910년), 가회동 한씨가옥(1920년경),
음성 팔성리 고가(1930년경), 승주 조순탁가옥(1934년)도 있다.
이 집들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지만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방일수록 보수적 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집에서 노골적인 친일성향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예전에는 평민들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솟을대문, 물익공 등 신분을 넘어선 장식이 들어간다. 재료도 변화한다. 벽돌, 유리와 같은 예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재료가 보이고, 장마루 등과 같이 이전 우리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기법도 보인다.
최성호님 글에서
백인제 가옥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백인제 가옥을 보면 한상용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한상용은
대단한 부를 가졌지만 그에 걸맞는 안목을 갖질 못했으며, 그의 친일성향을 건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되 일본을 닮고 싶은 사람... 창씨개명의 아이디어를 총독부에 제공했지만 정작 그는 창씨개명을
할 수 없었던 골수 친일파의 모습이 이 집에서 보인다.
김형태가옥(金炯泰家屋)
서울시 민속자료 제30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16-8,
'99. 7. 10일 지정. 관리자 : 김형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만들어진 "ㄱ"자형 사랑채와 "ㄷ"자형 안채, "-"자형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량 가구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목조가옥으로
사랑채는 명성황후가 출생한 곳이라 한다.
김형태가옥 외부 모습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씀 빌려온 사진
장원서터
궁궐의 후원과 각지의 과수원을 관리하고 궁중과 여러 관아에 과일과 화초등을
공급하던 관아터
예로부터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 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당시로써는 왕실의 고위관직에 있거나 왕족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구로
유명하였다.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채의 한옥들은 이때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러 채의 한옥이
지붕처마를 잇대고 벽과 벽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따뜻한 정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해준다. 북촌 지역을 걷다보면 이어진 처마선의 아름다운만큼이나 골목길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출처:한국관광100선에서
게스트 하우스
복정터는 조선시대 궁중의 우물터였습니다.옛날부터 북촌은 우물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복정은 물맛이 좋고 맑아, 물을 마시면 병이 낫고 아들을 낳고, 복이 온다고 해서
"복중물"이라고 불렀습니다.
평상시에는 뚜껑에 자물쇠를 채우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으나, 대보름에 밥을
지어먹으면 일년내내 행운이 따른다하여 그날만큼은 백성들도 물을 길을 수 있었습니다.
몇년 전 북촌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곳 "복정터"가 다시 예전 그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죽기전에 나는 무엇 무엇을 하고싶다등 자기의 소원을 낙서처럼
창덕궁
북악산(백악산)
인왕산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맹사성(孟思誠)은 1360년(공민왕 9년) 7월 17일 수문전제학 맹희도의 맏아들로 온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혹은 동포(東浦)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실렸다.
조선 초기의 문신 맹사성은 황희와 함께 조선 최고의 재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후세인들은 맹고불이라 하면
검은 소 등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노인을 연상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다.
성격이 소탈했던 그는 외출할 때면 소 타기를 즐겼고 손수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다. 집에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복장을 갖추고 예의를 다해 맞이했으며, 손님에게는 반드시 상석을 내줄 정도로 겸손했다.
왼쪽은 민속자료관 오른쪽은 전망대 오르는곳
가회동 골목길 위에서 바라본 풍경 주말이라서 대만원이다
북촌은 주로 외국인들이 한복 체험을 많이 하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통한옥들이 모여있는 북촌마을은 굽이굽이 미로 같은 골목길 사이로 한옥들과 역사문화자원,
박물관, 공방들이 발길 닿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 고유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알릴 수 있는 코스입니다
관광을하면서 조금 조용히 했으면 좋겠는데 왁자지껄 주로 중국사람과 한국사람이 시끄럽다
얼마나 심하면 저런 프랭카드가 걸려있을까 우리모두 조용히 감상하는 문화였으면 좋겠다
이해박는집
치과의사이기도 하지만, 시인이고 정치인이기도 한 국민의 당의 김영환 의원이 운영하는 치과이고,
돈암동, 안산 등 수도권 몇 곳에 한옥풍의 같은 간판의 치과가 있다. 지금은 현직 정치인으로서
바쁜 활동 때문에 직접 진료하거나 운영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장례행렬에 우연히 찍힌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 간판이 "아래아 자모"
마구 섞어 쓴 "이해 박는집"이었다고 한다. 걸으면서 보지 못했기에 빌려온 사진임
그밖에 이런 집터들도 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저 볼 수는 없고 표지석만 세워놓았다
주로 동남아와 중국 단체관광들이 주를 이룬다 주말이라서 이렇게 골목에는 비켜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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