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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대전 동춘당 역사공원

대전 대덕구에 있는 공원이다

현재 동춘당 공원은 약 1만 7천평으로 송촌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동춘당 일대를 공원화 한 곳으로 공원 후편에

 운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림환경과 동춘당앞 일대에 너른 마당과 연못을 조성하여 인근 아파트 주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2009년부터 2010년, 동춘당 명품공원화 사업을 진행하여 공원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춘당 공원은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요,휴식과 여유를 즐기러
 찾는 분도 많지만 역사가 담겨져 있는 교육적인 공간으로동춘당 선생의 이야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도심에 이렇게 멋진 소나무 숲이 있어서 좋다

공원에 접어드니 저앞에 동춘당 건물이 보인다





큰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그리고 밖에 가건물에서 식당도 운영한다

블친님의 메뉴에서 가저온사진

동춘당 고택 사랑채 왼쪽에 평범한 안체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다가가서 보니 안채에 기거하는 분들이 있어서 출입 금지라고 쓰여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된 대전 동춘당 종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

5대조 송요년(1429~1499)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으며, 현재는 1835

원래 위치(대덕구 동춘당로)에 중건할 때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희소성이 있고, 상량문(上樑文) 기록 등을 통해 그 변천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고택의 별묘와 가묘

별묘는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불천위 신주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써 저희 종가에서는 매년 그 기일에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

家廟(가묘)는 삼년상을 치른 후 그 위폐를 모시는 곳이다.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조상들은 선조에

 대한 예를 깎듯이 지켰다.
사당은 산 자와 죽은자가 함께 하는 공간으로 먼길을 오갈 땐 반드시 먼저 사당에 들러 참배하고 음식도 제일 먼저 바치는 곳이다.

백세청풍:영원토록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약해중천:물고기가 바다 가운데를 뛰어넘어 하늘로 오른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내외담이 설치되어 있다. 담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사랑채의

높이를 고려하여 시선을 차단할 정도의 가림벽 역할을 하고 있어 세심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양통집: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등이 한 채에 딸려 있으며 측면이 2칸인 집

 

동춘당 송준길의 종가로 불천위(不遷位) 제사와 기타 제례가 아직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조선 중기부터근대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생활사와 지역 향촌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방대한 고문서 등이 소장되어 있다.


* 불천위 제사: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대문에서 바라본 안채


뒤뜰에는 옥잠화 밭이 있다

별묘로 들어가는 대문

밖에서본 별묘


대문을 드러서면 一자 모양의 사랑채와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고 그 오른쪽에는 사당인 가묘와 별묘가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옆면 6칸이다. 부엌 위는 다락으로 꾸몄고, 앞에는 1칸 살림집을 달아 집안의 여러가지 일을 맡아보던

 청지기가 사는 방을 두었다. 대청마루와 큰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작은 사랑방 앞에는 누마루처럼 높여

그 밑에 아궁이를 두었다.


안채는 건물 가운데에 앞면 3칸·옆면 2칸의 넓은 대청마루와 왼쪽에 2칸의 마루방, 1칸 반의

안방, 1칸씩 자녀방과 바느질 방인 침모방 그리고 부엌이 연결되어 있다. 대청마루의 오른쪽에는 각 1칸씩 건너방과 웃방,

 부엌, 반찬을 두는 찬방, 그리고 행랑방이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 ㄷ자를 이룬다. 가묘와 별묘는 모두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 분리되면서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로3호로 지정됨에따라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 선생의 별당으로 보물 제209호에

지정된 문화재이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지 6년째 되는 해인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이 공원에는 연못 3개소와 민속 그네, 팔각정과 화장실, 간이체육시설, 벤치, 음수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매년 이곳에서는 갖가지 문화행사가 열린다. 4월에 열리던 동춘당 문화제는 2011년부터 10월에 구민 축제를 겸해서

 열리고 있다.


동춘당 문화제는 동춘당 유학학술세미나, 숭모 제례, 휘호 대회, 한시백일장, 투호 놀이, 그네뛰기 등 우리 고장 유학자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학풍과 인격을 기리고, 주민화합과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곳이 보물 제 209호 회덕 동춘당의 모습이다.
동춘당은 굴뚝을 따로 세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했다고 한다.
굴뚝을 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춘당공원 주변으로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서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다.
현대인들의 생활공간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동춘당 공원이라서  사람도 많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도 많다.


호연재 김씨의 시




큰 사랑채

안채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가묘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인 소대헌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사랑채인 오숙재가 있다. 큰사랑채에는 넓은 대청과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다.

안채 앞에 위치한 작은사랑채는 오른쪽 끝에 툇마루를 한단 높게 두어 운치를 살렸다.

큰사랑채 대소헌

고택의 이름은 송용억 가옥이며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家長(가장)이 독서나 손님맞이를 할 때 사용하던

 큰 사랑채가 있고, 오른편에는 부모나 장성한 자녀의 거처로 사용하였던 작은 사랑채가 나란히 있다.
고택 뒤쪽으로 보이는 아파트단지 이름도 '선비마을'이다.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

1714년 옮교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1722)17~18세기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한시 134수를 남겼음


          -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큰사랑채가 양통으로 구성되었음. 대청을 한쪽에 두는

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을 전면뿐만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한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냄


        -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같이 송준길 가문으로서 호서지역의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 면모를 찾을 수 있으며,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고, 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특색을 알 있는

 희소성이 있는 등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음

작은 사랑채 오숙재





안채 지금은 거주자가 없다 옆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았다

안채는 작은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中門(중문)을 지나면, 'ㄱ'자형 평면에 네모뿔 모양의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3량집으로 간결하게 꾸민 안채가 있다.
안채의 뒷편에는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만든 宋氏家廟(송씨가묘)란 편액이 붙어있는 사당이 있다.

송씨가묘








동춘당공원에는 유학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호연재 김씨의 글이 눈길을 잡는데요,
생활의 시름을 시로 표현해 놓아 당시 호연재 김씨의 일기를 보는듯 합니다.
호연재 김씨는 송준길의 증소자인 송요화와 결혼해 살다가 42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올라가면 뒤에는 산이 있고 잘 다든어진 소공원이 있다

오르는 계단 옆에는 양쪽으로 무궁화 나무가 서있다

동춘당공원 주변으로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서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공간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동춘당 공원이라서
발길을 재촉하며 오가는 사람도 많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도 많답니다.

뒷쪽에도 소나무 숲이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큰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만 보인다


송씨의 삼대효자정려의 옛터입니다.

원래 효자정려는 송촌동 동춘당에 이르는 길가에 있었는데, 1861년 후손들이 이사하면서 중문도 함께 대화동으로

 옮겨가자 그 터를 기념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송씨삼세 효자는 선교랑 송경창과 그의 손자인 지평 송사승, 그리고 시승의 아들인 도사 송유관을 지칭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쌍청당 송유의 후손이며 3세가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겨 나라에서 정례가 내려졌고

그 사적이 국가가 반포한 "감강행실록"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둥춘당 공원


현재 동춘당 공원은 약 1만 7천평으로 송촌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동춘당 일대를 공원화 한 곳으로 공원 후편에 운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림환경과 동춘당앞 일대에 너른 마당과 연못을 조성하여 인근 아파트 주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2009년부터 2010년, 동춘당 명품공원화 사업을 진행하여 공원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비추

배롱나무



동춘당 송준길고택 전경




                   
             노래의 날개위에/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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