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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서동공원




천년의 사랑, 백제의 꿈

익산은 서동설화와 서동요가 살아있는 천년고도로 서동요를 통해 선화공주의 사랑을 얻고 마침내

 백제 30대 무왕으로 등극해서 삼국통일의   웅지를 펼치려했던 서동의 탄생지입니다. 또한,

 마한의 도읍지이자 백제 말기의 수도 혹은 별도로 알려져 있다.


익산서동축제는 1969년 마한민속제전으로 시작했으며, 국경(백제,신라)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세계적인 사랑과 서동요의 본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2004년부터 서동축제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금년에는 5월3~5일까지 열렸다


축제기간에 못갔기에 손요한님사진 빌려왔다 아래 몇 장도

선화공주

신라 진평왕은 세 딸을 두었다. 첫째는 선덕여왕이된 덕만공주이고

둘째는 진평왕의 사촌인 용춘에게 시집가서 태종 무열왕은 낳은 천명공주이고

셋째는 바로 선화공주로서 백제의 무왕과 결혼했다

사동의 어머니는 익산 연못가(마룡지)에 집을 짓고 홀로살던중 그 연목의 용과 통정을하여

서동을 낳았다


서동은 어릴 때부터 재주가 남달랐고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서동이 매일 산에서 마를 캐어 시장에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날 시장에서 마를 팔다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을 것을 다짐을한다


그래서 서동은 스님 행세를하고 신라의 성안으로 들어가 아리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친하게 지낸후 서동이 지은 노래를 부르고 다니게 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잔다

이노래는 서라벌에 가득퍼져 신라 사람들은 누구나 즐겨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아이들이 따라부르던 서동요는 온 마을에 퍼졌고 신라 진평왕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몹시화가난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꾸짖고 먼곳으로 귀양을 보내게된다

선화공주가 귀향길을 떠나려던 순간 서동은 공주에게 다가가 인사를한 후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공주님을 모시겠다고 한다. 서동과 사랑에 빠진 선화공주는 서동과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서동을 따라 백제로 간다

함께 백제로가 떠나올 때 왕후가준 금을 꺼내놓으니 서동은 마를 캐던 곳에 쌓여 있는 게

그것이라 하였다 두사람은 신통력이 있다고 소문이난 지명법사를 통해 하루밤 사이에 금을

 신라의 왕에게 보낸 후 진평왕의 신임을 얻어 선화공주와 결혼을  하게된다

서동의 소문은 순식간에 백제에 전해지게 되고 서동은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서동은 본명은 장 백제 30대임금으로 마를 팔며 평민으로 살아가다 선화공주를 만나

왕위에 오르고 백제를 강대국으로 발전 시킨다

선화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로 어린시절 서동을 만나 서동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왕행차.마당극.서동선발대회.서동요 전파등을 재현하는 모습



미륵산

저앞에 보이는게 미륵산이다

미륵산은 익산의 평야지대에서 홀로 오뚝하다. 익산과 전주, 충남 쪽으로 열린 드넓은 평야에 미륵산이 가장 전진 배치되어
 있는 형국이다. 미륵산은 등 뒤로 완주 고산 쪽에서 흘러나온 노령산맥을 거느리고 평야지대를 향해 가장 먼저 달려가는
 무장의 모습을 닮았다.

 실제로 미륵산은 고조선과 백제의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미륵산에는 1800m에 이르는 견고한
 석성이 남아 있다. 고조선의 준왕이 쌓은 성이다. 익산은 고조선의 마지막 도읍지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미륵산 주변의 왕궁리 일대는 백제의 수도이기도 했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받아 문화재청은 2012년 3월에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익산을 고도보존지구로 선정했다.

 무엇보다 미륵산은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의 전설을 품고 있다. 서동설화는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아름답고 극적이며 따뜻하다.



우리가 사랑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 멀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고, 가깝게는 춘향전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서동설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합친 것만큼이나 극적인 요소가 가득 내장되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적대적인 집안 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춘향전은 신분의 격차를 뛰어 넘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어떤 장애요소를 넘어설 때 극적인 아름다움을 생성한다.

그런데 서동설화는 이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서동요와 관련된 러브스토리는 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사랑인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지위와 신분을 뛰어 넘고, 그것도 모자라 적대국이라는 경계마저 훌쩍 뛰어 넘어 버린다. 이러한 기적적인
 사랑은 서동설화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의 기적이 이 모든 현실적인 격차를 뛰어 넘어 전설을
이루어 낸 것이다. 서동설화에서 서동은 노래를 이용해서 선화공주를 꾀어낸다.

서동요가 유행했을 당시, 삼국시대에는
고유문자가 없었고, 한자가 전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에 노래와 음악이란 최고의 놀이문화이자
 공연문화였다는 게 일반론이다. 이러한 까닭에 서동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래를 이용한 것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매체를 이용한 셈이다. 전북일보에서




 금마저수지!
미륵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대한민국 지도와 똑 닮은 모양이 나타난다.

 다름 아닌 금마저수지로서 그 모양이 대한민국 지도를 닮았다고 해서 지도연못이라고도 불린다.

새벽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한반도 지형은 너무도 아름답고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미륵산을 발원지로 안정적으로 용수가 공급되는 금마저수지는 1년 365일 물이 마르지 않으며

주변에 축사나 공장 등 오염원이 없어 1급수의 수질을 자랑한다.


서동정이라는 정자가 마룡지 호수가에 지어져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선화정도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이렇게 조각상으로 건립해 놓았다



조각공원에 세워진 십이지신상



마 한 관

 위치: 익산시 금마면 서동공원 내

 규 모: 연면적 1,326㎡(지상 1층, 지하 1층)

 구성 및 전시내용

  마한주거지와 무덤형태, 마한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소개,

  마한에서 백제로의 변화, 부족국가에서 왕조시대로의 과도기상

 체험관 운영 : 토기편 퍼즐 맞추기, 발화구 체험실, 역사도서실

 영상실 운영 : 마한시대 생활상 스토리

 개관일시 : 매일 09:00 ~ 18:00 (월요일, 1월 1일 휴관)

 관 람 료 : 무 료

우암 송시열 사적공원에서도 많은 살구나무를 보았는데 여기에도 탐스런 살구가 열려있네

서동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마한관은 청동기 시대부터 백제 시대에 이르기까지중요위치에 있었던

익산의 마한 시대를 조명하여 역사와 문화에대한 이해를 높이기위해서 세웠다






















                        

                       Welcome to my world / Anita Kerr S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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