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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담양 명옥헌 원림

몇번을 벼르던 명옥헌 방문을 이제야 이루게 된다

제작년에 절정일 때에 와보기는 했지만 다시 보고 싶은 욕심은 버릴 수가 없다

고향에 벌초를 가면서 비도 내리고 여기부터 들렸다 가려고 먼저 찾았다

 2년전 그때도 소낙비가 내렸었는데 오늘도 역시 비가 내리고 있다(8/28)

명옥헌 원림 가는 길초에 조그만한 연못이 있는데 수련이 한창피어있다

왕버드나무가 있는 연못

주차장에 파킹하고 한참을 걸어서 올라야한다

어느집 울타리 담장에 피어 있는 봉선화 지금도 그렇게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는지?

예전에는 여기서 커피도 한잔했는데 오늘은 벌초 때문에 시간 여유가 없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의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야말로 배롱나무는 이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다.

 특히 배롱나무는 대부분 고목이 되어 총총히 가지를 뻗고 그 빼곡한 가지마다

 빨갛게 탐스러운 꽃무리를 수관 가득히 달고 있다. 늦여름 배롱나무 꽃이 질 때면

붉은 꽃비가 되어 정원 곳곳에 흩날리고, 꽃잎이 못 위에 호사스런 붉은 융단을 만드는
아름다운 자미(紫薇, 배롱나무)의 정원이 명옥헌 원림이다


이사진은 2년 전에 왔을 때 사진인데 그때는 이렇게 꽃이 절정이었다



명옥헌 원림은 조선 중엽에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오이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명옥헌(鳴玉軒)이란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인 광풍각과 동일한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다

. 이러한 형식은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이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명옥헌은 이와 같이 은일자의 거처나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녔다.

이지방 선비들의 제사를 지내던 도장사가 있었다 한다

오희도는 1602년(선조 35)에 사마시와 1614년(광해군 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

 이는 당시 광해군 재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후산마을에 정착해 산기슭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공부에 매진했으며, 때때로 고개 너머에 있는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 정철의 아들 정흥명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는 명옥헌을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지(上池) 설명은 아래에 하지에서

정자를 오른쪽으로 하고 돌아 계류를 거슬러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썼다는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렇게 몇 백년된 배롱나무가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명옥헌 원림의 지형은 안온하다. 전면은 후산마을의 고개가 낙타의 등처럼 드러나 있어 시야를 가리고

 왼편은 들판, 오른편은 목맥산에서 후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있어 북풍을 막아준다. 자연스런

 기단과 지형적인 입지적 특성으로 산의 위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크게 자라는 느티나무를 심어 낮의 햇볕을 차단해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다.

 

경역 또한 명료하다. 연못 아래로는 정원의 경계부에
소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어 담장 역할을 대신하며, 배롱나무, 느티나무 등이 잘 배식되어

 호남 지방 별서정원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붉게
무리지어 꽃이 핀 원림의 모습은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비유되기도 한다.

뒤뜰과 옆뜰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오늘은 삼각대를 대동하여 이렇게 셀프 촬영도 해본다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 모양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이 여진사도 무엇을 이렇게 열심히 담고 있는지 열의가 대단하다





명옥헌 원림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 모양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명옥헌 원림은 원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 문화에 조예가 깊은 유홍준 교수조차 1989년

 처음 그곳을 찾았을 정도니(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 세상 사람들이 알 리 만무했다.

다른 정자엔 수십 개씩 걸려 있는 현판도 ‘명옥헌(鳴玉軒)’ ‘삼고(三顧)’라고 적혀 있는 두 개가

고작이고, 전하는 시도 남간 유동연의 연작시 다섯 편뿐이다. 오랜 시간 조용하게,

소박하게 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명옥헌은 다른 정자와 달리 마을 바로 곁에 터를 잡고 있어 30여 가구가 올망졸망 모여 사는

후산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비로소 가 닿을 수 있다. 거대한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명승 58호 명옥헌을 지킵시다’라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두 갈림길이 나온다. 하지만 어려울

 건 없다. 집집이 마을 특산물인 감, 대추 등을 그려 넣은 담벼락 벽화에는 친절하게도

 화살표와 ‘명옥헌 가는 길’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반영을 담기위해서 이리찍고 저리찍고 해보지만 물벌레의 장난질로 파문이 약간씩 일고

또한 물이 검고 흐려 이 이상은 잡히지 않는다






제작년에 왔을 때도 비가 내렸고 이번에도 비가 내렸다 그런데 배롱나무 꽃은 너무차이가 난다

그래도 보름이상 늦게 왔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사진은 제작년 모습

사위질빵

옛날, 추수철이면 사위가 처가에 가을걷이를 도와주러 가는 일이 상례였다고 한다.수확을 하면 농작물을 집으로

 날라야 하는데 칡이나 다른 식물의 줄기 혹은 껍질을 이용하여 등짐을 만들거나 지게로 져서 나릅니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사위를 몹시 사랑하는 한 장모가 사위를 아끼는 마음에,자신의 짐은 보다 더 질긴

 할미질빵 덩굴로 끈을만들어 짐을 많게 만들어 지었고 사위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쉽게 뚝뚝

잘 끊어지는 이 식물의 줄기를 질빵 끈으로 만들어 짐을 적게 만들어 지였다는 옛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가을을 알리는 것일까 벌써 부추는 꽃을 피웠네


시인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