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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지리산 대성골

근교 트레킹만 하고 산행을 해본지가 두달도 넘는데 월요산타 산악회에서 대성골 제1철다리까지

왕복 9.2km 공지가 올라 있다 .가다 못 가면 빽하면되니까 가볍게 생각하고 따라나선다

버스에서 내려다본 화계골 며칠전 태풍으로인해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버스는 지리산 역사관에 주차를하고 단체 사진부터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참가 인원은 겨우 20여 명 단촐한 산행이다

이산악회도 월요산우회에서 분가 뜻 맞는 사람들끼리 뭉첬다

나야 정회원이 아니니 여기도 저기도 마음대로 따라다닌다

사진관인데 오늘은 월요일이라 휴무를 하나보다 문이 잠겨있다

처음에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의병들인줄 알았는데 뒷면을 읽어보니 구한말 의병들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봉우리들은 삼신봉 쪽 같다

여기서 세석까지는 10여 km 지루한 코스인데 많은 산꾼들은 이길을 택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하는 길은 제법 평탄한 길이 전개된다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은 사진을 담을 만한

소재거리가 없어 묵묵히 걷기만한다

1,8km쯤 올랐는데 앞에보니 출입금지라고 바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대성골 마을까지

0.9km 물소리는 들리는데 숲이 우거져 계곡은 보이지 않고 땀은 닥아도 닥아도 계속흐르고

언덕을 내려와 오던길을 되돌아보고

드디어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바로 옆에

위아래 사진은 동일장소

 며칠전 태풍으로 지리산에 많은 비가내려 계곡에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다

사진놀이를 해보지만 삼각대가 없으니 아무리 용을써보지만  흔들려 이사진이

 최상이라 올려본다



의신마을에서 2.5km 오르니 이런 집이 나온다 이름하여 대성골

차길이 없고 오솔길로 오로지 지개로만 짐을 나르고 있다고 한다

두집이 살고 있다


대성골에서-

 

수곡골 양진안 단풍보러 갔다가

단풍은 아직 일러 보지 못하고

바람 부는 어느날...

천왕봉에 올라가서 의정부 산다는

이쁜처녀에게 청혼하였다는

남성이를 만났다.

 

십 몇년 전 해맑던 그총각 남성이

어느새 의젓한 청년이 다 되었고

남성이 부부에게 이제 지리산

산신령의 하늘같은 축복 있으시라.

 

남성이 "반갑다"며 산에서 갓 따온

송이버섯,국버섯 안주로 한잔 술을 

권하니 대성골의 가을이 벌겋게

술에 취한다.

 

단풍은 아직 일러 보지 못했으나

잘생긴 양진암 스님도 만났고

장가 간다는 "남성이"도 만났으니

자박자박 의신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가을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식수라고 쓰여있어 시원하게 한바가지 들이 마셨는데 위에보니 빛바랜 고무신화분이

왠지 좀 찜찜한 벌레씹은 맛이다

대성골 주택을 뒤로하고 더 오르니 이러한 협곡도 만나고

거대한 바위절벽도 만나고 내뒤에 오시는 분들은 대성골에서 점심식사를

하는지 올라오지를 않는다

가도가도 계속되는 너덜지대

바람한점 없는 산길 대충 3km이상 올라온 것 같다 여기서 적당히 점심식사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에 들어가니 오장육부까지 시원함을 느낀다

잘못하면 감기들겠고 적당히 하고 내려가자

의신마을은 지리산 화개동 골짜기 상류에 둥지처럼 에워싸인 아늑한 산간 분지에 터를 잡고 있는 마을이다.

 행정 구역으로는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의 자연 마을에 속한다. 대성리에는 의신마을을 포함하여 단천·덕평동·

기수곡·평지촌·빗점·삼점·사리암·고사암·송대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지만, 현재는 의신마을과 단천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의신’이라는 마을의 한글 이름은 이 마을에 조선 전기까지 있었던 의신사(義神寺)라는 사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은 처음에 절과 관련된 사하촌(寺下村)으로 형성되었지만, 조선 시대에 와서 지리산의 청정하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춘 청학동으로 알려지고, 또 벽소령의 길목이라는 교통의 이점으로 인구가 모여들면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리적 입지 조건은 의신마을의 역사를 청학동의 이상향이면서도 전란의 현장으로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2010년 말 현재 의신마을에는 총 92세대에 237명[남 122명, 여 1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00년에는 72세대에 209명[남 107명, 여 102명]이 살았는데, 근래에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마을 인구가 증가하였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지리산지의 자연환경에서 생산되는 특산물로 생업을 삼고 있으며, 그 중 고로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산나물, 야생차 등의 산지 작물이 주 소득원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글라디오라스

한련화

도라지

나리

능소화

가우라 (나비바늘꽃)

개망초

이계곡물은 명선봉과 형제봉 벽소령 쪽에서 흐르는 계곡이다



하산하여 시원한 맥주도 한잔하고 이제 씻고 차에 오르면된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여유를 부리며 인증도 하고






오늘은 모든 가게나 카페들 음식점 적막강산처럼 보인다 월요일이라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나보다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로 향하면 어느 시점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권역에 들어서게 된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벽소령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바로 그 곳에 지리산역사관이 있다.


지리산역사관은 비교적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 1층짜리 건물 입구에 지리산 공비 토벌 루트가 안내도로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안에는 빨치산의 역사와 토벌 과정이 전시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안내도 한쪽의 글은 지리산이

우리 민족의 기상과 혼, 애환이 담긴 명산이지만 해방 이후 현대사의 아픔도 간직하고 있음을 밝히며, 빨치산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토벌대와의 투쟁 현장을 함께 찾자고 권한다.


한국전쟁이 끝났음에도 투항하지 않고 토벌대에 의해 최후를 맞은 빨치산. 지리산역사관은 이들의 처음과 끝을 당시

 사용됐던 총기류 등을 전시하며 설명한다.


한편, 역사관은 지리산을 주 무대로 살아가던 화전민들의 생활상과 하동 특산물을 전시하고 있다. 눈 위를 걷기 위해

 신던 설피, 나무절구, 나무김칫독 등 쉽게 접하기 힘든 당시 생활 도구들이 눈길을 끈다.













악명높은 이현상의 최후




화엄사에 가면 이러한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사찰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불복종 많은 사찰 문화재를 지켜내신분이다

비문에 의하면 화엄사 천은사 쌍계사 백양사 금산사 선운사등을 지켜내셨다고 한다

2년전 화엄사에 들렸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시절 화전민들의 생활모습

6.25 때 우리 국군이 사용하던 총기류

빨치산이 사용하던 총기류

주민들이 사용하던 생활용구

돌아오며 하동 재첩국 마을에 들려 재첩무침 재첩전 재첩국에 저녁 식사를하고 귀가를 했다


오늘은 B조로 다녀왔다

귀여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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