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거의 다 돌아봤는데 딱히 더 갈곳이 없고 날도 더워 문화엑스포 공원 갔다 집으로 가는길에
여기 동궁과월지를 잠시 들렸다 가려고 한다(8/13)
동궁과월지 주차장 앞에 연꽃이 아직도 피고 있다 7월 초에 부여 궁남지에서 연꽃을 보았는데
연꽃이 피는 기간이 꽤나 오래가는 것 같다
동궁은 통일 신라 왕궁의 별궁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도 쓰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14년(674년)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연못이 바로 월지인데,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라 부르기도
하였다. 연못과 어우러진 누각의 풍경이 아름답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에 비친 야경이 더욱 유명하다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4년(문무왕 14)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가 건립된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79년에 궁궐을 매우 화려하게 고쳤다고 하였고, 804년(애장왕 5), 847년(문성왕 9), 867년(경문왕 7)에는
임해전을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697년(효소왕 6) 9월과 769년(혜공왕 5) 3월, 860년(헌안왕 4) 9월, 881년(헌강왕 7) 3월에는
군신들이 연회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931년에는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초청하여 주연(酒宴)을 베풀고 위급한
정세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별궁이었지만 신라 정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발굴이 덜 끝났나보다
동궁 및 월지 유적은 1980년에 정화공사를 거쳐 신라 궁궐의 원지(苑池)로 복원되었고, 3채의 누각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들을 참조하여 복원되었다. 그밖의 건물터는 주춧돌만 정연하게 확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
야경사진은 2017년 도에 찍은 사진임
궁궐 안에는 현재 중국 사천성 동쪽에 있는 명산인 무산(巫山)의 12개 봉우리를 본따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고, 연못을 파고서
그 안에 전설 속의 해중선산(海中仙山)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를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고서 꽃을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이 연못은 바다를 상징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중심 건물을 임해전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안압지 바닥에서는 금동불상을 비롯한 금동 제품과 목조 건물의 부재 등이 출토되었고, 특수한 모습의 기와도 적지 않게
발굴되었다. 특히 기와에는 679년인 ‘의봉4년(儀鳳四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은 임해전터에서 출토된
680년인 ‘조로2년(調露二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보상화(寶相華) 무늬의 벽돌과 함께 문무왕 때 임해전이 건립되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신라 고분에서 흔히 발견되는 굽다리접시
〔高杯〕나 긴목항아리〔長頸壺〕과는 다른 것으로 실생활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치미
지붕마루 중에서 격식이 있는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단에 얹어놓는 장식기와를 지칭한다. 비슷한 용어로는 취두(鷲頭),
취와(鷲瓦), 치문, 치미, 망새 등이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새 날개나 물고기 꼬리모양의 장식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치미라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로는 점차 치미 대신에 용마루 양쪽을 물고 있는 용머리 모양의 장식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을 취두라고 한다.
경주에는 가는 곳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있어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경주 야경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라고 해도 경주 동궁과 월지다
여름에 관광객들이 덜 찾을 때 곳곳을 정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일꾼들의 모습
겨울에는 부유물이 없어서 월지가 깨끗해 반영도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수초등 부유물이 많이 떠 있다
경주시 인교동에 위치해있는 동궁과 월지, 안압지는 신라 때 만들어진 인공 연못으로 월성의 북동쪽에 인접해 있는데
본래 이름이 월지였지만, 신라가 망한 후 관리를 오랫동안 하지 않게되자, 연못에 갈대가 무성해지며 기러기와
오리떼만 몰려와 안압지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잘자라준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휴식도하고
날씨가 무척 더운데도 산책로에 야자매트를 깔고 있는 작업자들
날씨가 날씨인지라 쉬엄쉬엄 한바퀴 돌아오는데도 땀이 비오듯 눈은 즐겁지만 몸은 죽을 쌍
잘 어울리는 배롱나무의 월지를 다시한번 담고 더위에 지처 집으로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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