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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바라나시 간지스강 일출과 녹야원

전날 자이푸르에서 비행기로 바라나시로 와서 오후에 시내 릭샤 투어를 하고 간지스강에서

보트 투어를 하며 화장터도 돌아봐야 되는데 비가 내리고 강에 물이 많아 물살이 굉장히 쎄게

흘러 보트 투어를 못했기에 아침일찍 일출을 볼겸해서  4시반에 호텔에서 나왔으나 비가 내려

 그렇게 붐비던 거리는 칠흑이고 간혹 몇사람 다니고 동물들의 움직임뿐 너무도 고요하다

어제 이거리는 사람들로 초만원 이었었는데 새벽이되니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하다

간혹 이렇게 소가 먹이를 찾아 다니고 한두사람  거닐 뿐이다

비가 오는데도 좁은 골목길 처마밑에는 이렇게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잘도 찾아 안내하는 가이드를 따라 이곳 멀리 보이는 화장터쪽에 왔는데

어둡고 너무 멀어서 내기술로는 사진을 담기가 어렵다

세계의 사람들이 인도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갠지스강과, 화장(火葬)을 한 시신의 재를

그 강물에 뿌리는 것,

그리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인도인들일 것이다.

이 바라나시가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강물이 수위가 높아져 가트(계단)도 목욕을 하던 장소도 다 잠긴듯하다

비도내리고 삼각대도 안가지고 왔지만 새벽에 멀어서 줌을사용하는데 아무래도 흔들려

 이정도 밖에 아래는 블친님들 사진 빌려왔씀


갠지스강과 화장터


여자는 출입금지 입니다.. 이유는 여자가 잘 울기 때문이란다..

울면 죽은 영혼이 가족들 생각에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여자는 출입금지다.
이것도 여자출입금지만 빼면, 우리 불교랑 똑 같다.

 불교도 돌아가실 때, 가족들이 우는것이 좋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이유도 힌두교와 똑 같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부처님이 힌두교 7 번째 신으로 모셔지는 이유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강물이 잔잔하고 날씨가 좋았으면 이런 모습을 제대로 봤을탠데

비가내리고 간지스강은 홍수로 몰살이 말이 아니라서 배타는 것을 포기했었다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고 인공위성도 자체개발해서 발사할 수 있는 나라이며,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같은 회사에 핵심기술자로 근무하는 사람들도 인도인들이 많을 정도로 과학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구단을 외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19단을 외우고 심지어는 25단까지도 외운다고 하니 수학적 두뇌는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수학에서 0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나라도 인도의 수학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적인 윤회를 믿으며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환경을 견디며 사는 모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또한 인도 사람들이다.

인도의 어느 도시나 다 그런 느낌을 받지만 바라나시는 더욱 더 그렇다.

보통인의 상식을 가지고는 바라나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 곳에 여행을 가서 가트(화장터)가 있는 갠지스강둑으로 걸어가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가트란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하는 말로 바라나시의 생명이며, 인도의 어머니이기도 한 강가(갠지스강),

그리고 그 강변에 이어진 가트야말로 순례의 목표이며 이 도시에서 가장 볼만한 곳으로 빼놓아서는 안될 곳이다.


구시가지인 강의 서쪽 기슭을 따라서 60개의 가트가 늘어서 있으며, 가트란 강변에서 강물로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제방으로 목욕하는 장소로 이용되지만 24시간 운영되는 화장터도 공존한다. 힌두교인들에겐 평생의 소원이 바라나시

 강가에서 목욕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의미가 있는 곳이다. 도시에서 각 가트로는 길이 연결되어 있으며 강변에 나란히

지은 왕후의 별장과 사원들이 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강물이 불었을 때의 수면이 남긴 흔적이 건물벽

 꽤 높은 곳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저건너에서 일출이 떠오르는 것 같은데 비도 내리고 볼 수 없을 것 같아 날도 밝기전에 철수를한다


갠지스 강(GANGES)은 인도의 중심지를 동서로 가로질러 벵골만으로 흘러가는 인도의 젖줄로, 인도인들은 생명의 강,

 어머니의 강으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산스크리트나 힌디어로는 강가라고 한다. 길이 2,460km, 유역면적

약 173만 ㎢이며, 힌두교도뿐 아니라 모든 인도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이 강은 인도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힌두교도 사이에서는 이 강물에서 목욕재계를 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다하여,

바라나시에서 장례식을 진행 하는걸 목표로 두고 있을 정도이다. 이 아름다운 강에서 보트를 타고 일출과 일몰 야경을

 보며, 강을 직접 몸으로 느껴 볼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일출을 볼 수 있지만 여기서 보는 일출은 또다른 느낌이 있을 텐데 아쉽지만 접어야된다

이것도 삼대를 덕을 쌓은 사람만 볼 수 있는 것일까 ㅎㅎㅎ

재개발을 하여 도시의 옛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철거한 곳에도 힌두식기도의 흔적이 남아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녹야원으로 왔다 아침부터 비가 지금까지 계속이다

불교가 탄생한 인도
인도인의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고 있지만, 인도는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인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불교를

탄생시킨 곳이에요. 석가모니는 기원전 5~6세기경 인도 북부의 작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였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걱정 없이 왕궁에서 잘 먹고 잘 자랐다.


 이웃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도 하고 귀여운 아이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싯다르타는 시종과 함께 성 밖으로 나들이를 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을 보게 되었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태어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나도 이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인가?”
싯다르타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겠다.’

고 생각하고 따뜻하고 안락한 왕궁을 떠나 수행의 길을 나섰다.


그는 고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숲으로 찾아가 보리수 아래에서 6년 동안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나이 들고 병들고 죽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비로 서로 돕고 살면

 마음의 평화가 깃들리라!’

이때부터 ‘석가(샤카)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의 석가모니라고 불리게 된 싯다르타는 인도 곳곳을 돌며 고통 받는 백성들을

 가르치다 80세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어요.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불경을 펴내고 불교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인도 힌두교의 카스트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는 ‘누구나 신분의 구별 없이 마음을 닦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는 석가모니의 불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불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전해져 동양의 정신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다가 최초의 설법을 행한 자리에 세운 다미라지까 스투파가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아쇼카대왕이

처음으로 스투파를 세운 뒤 무려 여섯번에 걸친 보완 공사가 행해 졌고, 그 높이도 30여미터에 달했는데,

1794년 바라나시 마하라자가 자신의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벽돌을 충당하려고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당시 그 스투파 안에 봉안됐던 부다의 사리 함과 불상은 현재 꼴까따의 인디언 뮤지엄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녹야원(사르나트)

불교 4대 성지의 하나로써 룸비니, 붓다가야, 구시나가라와 이 곳 사르나트(SARNATH, 녹야원(鹿野苑))는 붓다가 성도(成道)한

 다음 처음으로 설법을 한 장소이다. 이곳에는 건물이 없으나 굽타 시대에는 벽돌구조의 고층탑 건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조사에 의하면 1변이 약 20m의 정방형 건물지가 있으며 이곳을 방문한 현장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그 건물 높이가 200여 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퍼시 브라운(Percy Brown)이 만든 7세기경 사르나트 불교사원 복원도에는

 보드가야 고층탑과 같은 건물 형태가 대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쇼카 대왕은 이 곳에 훌륭한 사리탑과 건물들을 세웠으며 부처님이 처음 설법했던 자리에 세워졌던 지름 30m의 거대한

다르마라지카 탑은 헐려서 흔적만 남아 있고 다멕 스투파와 큰 수도원의 흔적, 고고학박물관 등이 있다. 이 곳에 아쇼카 대왕이

 세워 둔 아쇼카 석주의 네 마리 사자는 인도의 문장이 되었다.

하얀 코끼리가 뱃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어머니 마야(Maya)부인이 꾼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친정으로 가던 중에

 룸비니(Lumbini)라는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당시 아버지는 네팔의 석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

(淨飯王 Suddhodana)이었다. 생후 며칠 안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이모와 결혼하고, 이모에 의해 키워진다.

 생후 7일째의 명명식에서 싯다르타(Siddhartha: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교육 시키던 교단

  이슬람 왕조의 파괴로 다멕 스투파를 제외한 다른 유적들은 기단 정도만 남아있어 원형그대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 무너져 있는 것은 부처님과 제자들의 사리탑이라고 한다. 2500년 전 유적들이 이만큼 남아 있는 것은 일찍이

 인도에서 발달된 벽돌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는 2층원탑(二層圓塔)과 부러진 아쇼카 석주가 있는데, 대부분 파괴되어 하단만 남아있고, 상단을 장식했던

 샤르나트 사자 상만이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아쇼카석주는 샤르나트 외에도 부다의 탄행지인 룸비니, 산치 등의 불교 성지에 세워져 있다.

전국적으로 세워진 아쇼카 석주 중 약 10여 개에는 왕명을 적은 조서도 새겨져 있어 인도 고대사를 밝히거나

마우리아 왕조의 영역을 파악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4마리의 사자상은 현재 인도의 국장(國章)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도에서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가장 위대한 아소카왕이 자신의 가르침과

 사업을 돌기둥(石柱)에 새겨 널리 알리려고 여러 곳에 세워 두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비가내려 세세히 못 보았는데

이런곳도 있었다고 한다


다메크 스투파에 그려진 무뉘인데 거의 다 훼손되고 조금 남아 있었다


이게 유명한 다멕 스투파(Dhamech Stupa)

다르마 차크라 스투파(Dharma Chakra Stupa)라고고 불리고

부다가 다섯 제자에게 처음으로 행한 설법인 초전법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지금 28.5미터, 기단을 포함한 높이는 무려 33.5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인데,

11.2미터까지는 큰 돌을 쌓고, 그 위부터는 벽돌을 쌓아 완성했다.

정확한 용도를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이 녹야원내에는 이와 꼭 같은 탑이 쌍둥이로 있었는데, 하나는 무너지고 그 자리만 남아있다

물라구티(MULA GANDHA KUTI)로 통하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길 물에 잠겼다


옛날 이곳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한다.

8세기 초 현장(玄奘)이 순례할 당시만 해도 이곳은 약 30m 높이의 정사(精舍)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그 주위 100여 단이나 되는 감실(龕室)에는 황금 불상과 부조가 있고, 안쪽에도 등신대의 초전법륜상(初傳法輪像)이

줄지어 있고 1,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하는 등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3세기 무렵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에게 유린되어 폐허가 되었다.

아소카왕이 불교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탑과 석주(石株)를 세운 뒤 더욱 뭇신도들의 숭앙을 받아왔다.


조금만 그처 주었으면 좋으련만 억수로 퍼붓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도저히 돌아볼 수 없어 모두들 차에 올랐는데 셋이서 돌아보려니

옷도 젖고 신발도 젖고 대충보고 말았다

우리는 스리랑카 사원으로 들렀다. 안에 불상이 있는 것이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으나 절의 외부 양식은 오히려

 힌두 사원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낯설다.

다른 인도의 사원과는 달리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있고 정원도 단정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은 1931년 전세계 독지가들과 국제 불교기관이 만든 사원이라고한다

안에는 사진 촬영금지라고 써 있는데 아디에 보니 선명하게 찍은 부처님도 보여 빌려왔다

아나가리까다르마 팔마로 석

미하보디 소사이어티 조직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하보디 소사이어티 조직은 불교의 현대화와 성역화에 앞장선 단체로인도불교 성지를

회복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단체이다






우리 글로 된 부처님의 가르침

스리랑카 사원을 뒤로하고 여기 요가 체험장에 왔는데 요가를 하기전에

잠시 쇼칭센터에들려 배짜는 모습과 카쉬미르 제품들을 구매하고 이동을한다



화려하고 예쁜제품들 남자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다


여기서 바로 윗층으로 올라가 요가체험을 하는데 아주 후진곳에서 30여분

따라했는데 처음이라 힘이들었다 카메라는 차에 놓고 내려 사진을 못 찍었다


바라나시에서 하루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이났다

이제 카투만두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