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얌 부나트 사우너
(SWAYAMBHUNATH) , 원숭이사원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km를 가면 높이 175m 네팔불교인 라마 불교의 성지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 문화유산 스와얌부나트이다. 이곳은 카트만두의 유래와 관련이 깊다. 아주 오래 전,
카트만두가 호수였을 때 인도를 다녀오던 문수보살이 이곳의 사악한 기운을 끊기 위해 둘러싸인 산을
신성 검으로 잘라 호수의 물을 빼자 가장 먼저 수면으로 빛을 발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스스로 창조된' 또는 '스스로 존재하는'이라는 뜻의 스와얌부(Swayambhu)이다.
외국 여행자들에게는 멍키 템플로 통하듯이 이곳에 가면 원숭이들이 아주 많다. 원숭이 대장 하누만을
비롯하여 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비슈누(코브라)', 파괴신 '시바(링가)'의 조각들이 산재해 있다.
원뿔형 지붕을 이룬 황금 탑이 솟아오른 스투파(사리탑)는 카트만두 언덕에 있으며 모든 사원들 중에서도
고풍적이고, 불가사의한 탑이다. 카트만두를 수호하는 듯한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언덕으로 통하는 365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스투파와 만난다. 해체를 했었는데 보물은 없었고
사리만 나왔다고 한다. 땅은 명상, 흰색 돌은 번뇌로부터의 자유, 13계단은 해탈로 가는 13계단, 공기는
가벼워진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해뜨기 전에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일렬로 금박을 한 바즈라(Vajra, 티베트 어로 Dorje)를
지나 입구를 지키는 2개의 사자상을 지나서 시계방향으로 사리탑을 돌기 시작한다고 한다.
불교경전(옴 마니 반메 훔)이 적혀 있는 둥근 원통형의 불구는 “마니차”라 부른다. 옴 마니 반메 훔을
암송하면서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한다
카트만두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을 네팔인들은 ‘심부(Simbhu)’라 부른다.
지면에서 90m나 솟아오른 언덕 위에 우뚝 세워져, 사방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다. 사원 한쪽 구석 바위에 새겨진 명문에는 이미 5세기경부터 사원이
존재했다고 적혀있다.
언덕으로 통하는 365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스투파와 만난다.
해체를 했었는데 보물은 없었고 사리만 나왔다고 한다.
원숭이 들이 아주 많으므로 보는 구경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조심하셔야 한다.
손에는 먹을것을 들고 가지 말고 원숭이를 놀라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행동을 하시다가 다치신 분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보기에는 온순하게 보이지만 화가 나면 한 마리가 아닌 중대로 몰고 온다고 한다.
탑위에서도 수시로 이런 석회 같은 것을 흘려보내는데 무슨의미인지?
사원 중앙엔 ‘세계의 눈’이 그려진 스투파가 우뚝 서있는데, 계단을 올라온 많은 사람들은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탑에 삼배부터 올리고 있었다. 관광객이든 내국인이든 모두들 그렇게 했다. 높이 15m인 스와얌 부드나트 스투파의
하단부에는 ‘가르바’(중심 또는 자궁이라는 의미)라 불리는, 흰색으로 칠해진 반구체의 기단이 놓여있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우주 창조를 상징한다.
스와니얌은 네팔불교의 가장 오래된 사원이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 문화유산 스와얌부나트이다.
아주 오래전 카트만두가 호수였을때 이곳을 찾은 만쥬수리신이 호수의 모든물을 빼 사람들이 살수 있도록
만들때 가장 먼저 수면으로 빛을 발했다는 전설도 있다. 외국 여행자에게는 멍키템플로 통하듯이
이곳에 가면 원숭이가 아주 많다.
부처님 두눈의 가운데 점은 삼지안이고...
코가 물음표처럼 생긴건 네팔글자의 숫자 1을 상징하는데...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뜻이란다.
계단을 모두 올라오니 이런 불상들이 즐비하다
Hariti 사당 : 1시 방향에 있는 사당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하리티는 산스크리트어로 ‘어린 귀신들의 어머니’를 뜻하고 Ajima라고도 한다.
악마와의 사이에 1,500명의 아이들 둔 악귀였지만, 붓다를 만나 개과천선하여 세상 아이들의
수호자가 된다. 순산을 도와주는 여신, 천연두의 여신이라고 합니다.
사원 안에는 살리그람(암모나이트 화석)으로 만든 다섯 아이를 안고 있는 하리티 마 신상이 모셔져 있다.
두손을 모의고 산가락을 바로 넣으면 소원성취한다고
네팔인들은 가면서 이마니차를 돌리면서 간다
양쪽에는 이런 힌두사원도 있다
계단 정상 한 가운데에는 이 곳을 상징하는 조형물 인드라신의 무기 도르제(금강저)
항상 이 조형물에 기도를 하면서 먹을것을 두고 가기 때문에 원숭이란 놈이 이것을 먹으려
올라 서 있는 광경을 자주 볼수 있다
힌두사원
정상에서 바라본 카투만두 시내 전경. 한 눈에 볼 수가 있어서 가슴이 뻥 뚫린다.
아침이면 네팔리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 많이 올르기도 한다고.
불교경전 타르초와 염주를 팔고 있는곳
스와얌부나트 사원
원뿔형 지붕을 이룬 황금 탑이 솟아오른 스투파(사리탑)는 카트만두 언덕에 있으며 모든 사원들 중에서도
고풍적이고, 불가사의한 탑이다. 카트만두를 수호하는 듯한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땅은 명상, 흰색 돌은 번뇌로부터의 자유, 13계단은 해탈로 가는 13계단, 공기는 가벼워진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해뜨기 전에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일렬로 금박을 한 바즈라(
Vajra, 티베트 어로 Dorje)를 지나 입구를 지키는 2개의 사자상을 지나서 시계방향으로 사리탑을
돌기 시작한다고 한다.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에서 내려다 본 카트만두 시가지 전체는 마치 사찰 같았다.
2700여개의 사원(힌두교 사원 포함)이 시내에 펼쳐져 있다고 안내인이 설명했다.
카트만두 계곡이 성지(聖地)로 추앙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형적인 산악지역인 네팔에서 몇 안 되는 분지의 하나로 꼽히는 카트만두. 바구마티강과 비슈느마티강에
둘러쌓인 카트만두엔 불교가 언제 전래됐을까. 전설에 의하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여러 곳을 순례하던 중 쉬라바스티의 제타바나(기원정사)에서 이곳 카트만두 계곡으로 들어왔다.
계곡 동쪽에 위치한 만주스리(文殊) 동산에 머물며 스와얌 부드나트 사원이 있는 ‘스와얌 언덕’에
많은 예경을 했다
불교용품 판매대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작은 사원앞에는 기도하는 곳이 있고...
옆에서 초를 사서 불피워 올리고는 금색 받침 위에 올라가서 절을 한다..
기단 위엔 ‘토라나’라는 금으로 도금된 사면체가 있고, 차례로 원추형의 덮개, ‘츄라마니’로 불리는
금으로 도금된 종(鐘)이 자리 잡고 있다. 토라나의 각 면에 ‘세계의 눈’ 혹은 ‘지혜의 눈’으로 불리는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다. 각 눈 밑에는 코 대신 ‘1’이란 아라비아 숫자를 새겨놓았는데,
이는 “진리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있어,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화 시킨 것이다.
본당 스투파
9개의 감실(금강저에서 시계방향으로 아촉불, 비로자나불, 금강모보살, 보생여래, 반다라,
아미타불, 다라보살, 불공성취불, 노사나불)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금강저를 기준으로 8방에 하나씩의 감실이 있고, 금강저 바로 앞에는 두 개가 있습니다.
감실과 감실 사이에는 마니차들이 있습니다.
스와얌부나트 스투파의 구조
Garbha : 흰색 반구체 기단. 우주의 창조를 상징
Torana : 금으로 도금된 사면체
토라나 바로 위에 마름모꼴의 장식에 다섯 개의 불상
(중앙 비로자나불과 5방위불 : 연화부, 금강부, 불부, 보부, 갈마부)
13층 첨탑 : 열반에 이르는 13단계
원추형 덮개
Churamani : 금으로 도금된 종
Hti : 황금 공작새
안내인에 따르면 네팔인들이 믿는 신의 수는 세계 인구 보다 많은 3백30억이나 된다.
때문에 그들에겐 신앙이 생활의 전부다. ‘사바에 핀 한 송이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카트만두.
꾸마리사원
옛날, 힌두의 탈레주라는 여신이 인간의 몸을 빌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카트만두 왕국에 출현했다.
왕은 여신을 극진히 모시며 여신이 영원히 같이 있어주기를 희망했다.
어느 날 여신과 장기를 두고 있던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그만 이성을 잃고 여신을 범하려 들었다.
그러자 여신은 분노하여 이승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왕은 크게 잘못을 뉘우치고 여신이 돌아올 것을 빌었으나
그 여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왕의 절망적인 기도는 계속되었고, 그의 진심을 이해한 여신은 그에게 직접
다시 나타나는 대신 초경을 겪지 않은 순수한 어린 여자아이를 선택해 그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섬기기를 명했다.
왕은 여신이 제시한 조건에 따라 어린 여자아이를 뽑아 여신으로 섬기기 시작했다. 이 여자아이가 바로 쿠마리인 것이다
처녀신이 살고 있는 사원, "Kumari Ghar 'House of the Living Goddess"
두르바르와 바산트푸르 광장이 만나는 지점에 처녀신인 쿠마리신의 화신으로 뽑힌 소녀가 살고 있는
사원으로 평소에는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이 소녀는 일년에 7번 있는 축제 때만 나갈 수 있는
여신의 역할을 한다.
이 소녀를 보려면 그 가족들에게 약 5루피 정도를 주고 사주를 하면 2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관광객들에게 얼굴을 보인다.
18세기 때 마지막 말라 왕이 왕권을 오래 유지를 하려고 어린이 소녀를 뽑아서 신으로 모시고
숭배를 하였는데 그때부터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가 지금까지존재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여신으로 불리는 "쿠마리"에게는 왕 또한 신으로 섬기며 대부분의
시간을 "쿠마리 템플" 에서 가족들과 보내며 "인드라 쟈트라" 축제와 인드라 신의 생일날
축제에 참석한다.
네팔에서 살아 있는 여신으로 숭배되는 존재되는 쿠마리
.쿠마리(Kumari)란 산스크리트어에서 ‘처녀’를 뜻하는 ‘카우마르야(Kaumarya)’에서 비롯된 말로
‘처녀신’을 뜻한다. 네팔에서 티베트불교의 바즈라 데비(Vajradevi) 여신이나 힌두교의 두르가
(Durga시바신의 아내로 여전사) 여신의 살아 있는 화신으로 숭배되는 존재로 쿠마리 데비
(Kumari Devi)라고도 한다. 보통 초경 전의 어린 소녀가 초경을 할 때까지 역할을 맡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초경 이후에도 역할이 지속되기도 한다.
네팔의 쿠마리는 왕실쿠마리(Royal Kumari)와 각 지역에 존재하는 지방쿠마리(Local Kumari)로
나뉜다. 카트만두의 쿠마리사원(Kumari Ghar)에 거주하는 왕실쿠마리는 왕실의 수호신이자
국가의 운명을 알려주는 예언자로 숭배된다.
지방쿠마리는 바크타푸르(Bhaktapur)와 파탄(Patan) 등의 지역에 존재하는데, 지역마다
선출방법이나 신앙의 형태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네팔의 처녀신 숭배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쿠마리 숭배의 전통은 13세기에서
18세기 중엽까지 이 지역을 통치했던 말라 왕조(Malla Dynasty)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늘날 네팔에 전해지는 여러 전설들은 그 기원을 말라 왕조의 마지막 왕인 자야 프라카시
말라(Jaya Prakash Malla, ?~1768)와 연관시키고 있다.
전설마다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핵심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자야 프라카시 말라 왕이 두르가 여신의 화신인 탈레주(Taleju) 여신과 가깝게 지냈으나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여신이 떠났다. 여신은 떠나기 전, 나라가 다시 자신의 보호를 받기 원한다면
자신의 화신인 어린 소녀를 찾아 숭배하라고 명했고, 이때부터 쿠마리 숭배의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쿠마리의 선발 쿠마리는 초경 이전의 3~6세 소녀들 가운데에서 엄격한 기준에 맞추어 선발되는데,
그 과정은 티베트불교에서 살아 있는 부처로 숭배되는 달라이라마(Dalai Lama)나 카르마파(karmapa)의
선발 과정과도 유사하다. 우선 카투만두 인근에 거주하는 네와리 족(Newari) 가운데 석가모니와 같은
샤캬 족(Shakya) 출신이어야 한다. 몸에 상처나 병이 없어야 하며, 태어날 때의 천시(天時)가
나라나 국왕과 상성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32가지 기준에 따라 신체의 아름다움도 판별된다. 몸에 반점이 없어야 하고, 치아도 빠진 것이
없이 가지런해야 한다.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어야 하고, 몸은 보리수와 같아야 한다.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나열된 물건들 가운데 전대 쿠마리의 물건을 찾게 해서 영적인 능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나 돼지, 양, 닭 등의 머리를 잘라 놓아둔 컴컴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하는데,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내면 선발에서 탈락한다.
쿠마리의 생활과 역할
쿠마리로 선발되면 가족과 떨어져 쿠마리사원에서 지내게 된다. 쿠마리는 붉은색 옷만 입으며
얼굴에도 붉게 화장을 한다. 그리고 1년에 몇 차례밖에 사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 있는 여신으로 대우를 받으므로 자신의 발로 땅을 딛지 않으며, 이동을 할 때에는 안겨서
옮겨진다.쿠마리는 살아 있는 여신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다.
사람들은 쿠마리에게 축복을 받으면 병을 고치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해마다 9월에 행해지는 인드라 자트라(Indra Jatra) 제의 때에 쿠마리는 가마를 타고 카트만두를
행진하면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쿠마리는 예언자로도 여겨진다. 사람들은 쿠마리는 행동이 예언을 나타낸다고 여기는데,
예컨대 쿠마리가 울고불고 하거나 큰 소리로 웃는 것은 심각한 병이나 죽음이 닥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며, 몸을 떠는 것은 투옥된다는 것을, 공물을 쥐면 재산을 잃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여긴다. 반면 쿠마리가 편안한 상태로 차분히 있으면 안심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아동학대 논란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물러난다. 때로는 유치가 빠지거나 상처를 입어 피가 나는
경우에도 신성함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새로운 쿠마리를 맞이하는
의식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용되는데, 퇴임한 쿠마리에게는 매달 일정금액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쿠마리였던 소녀들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쿠마리였던 여자와 결혼하면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속설 때문에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네팔의 쿠마리 숭배 문화는 2004년 린지 애슈퍼드(Lindsay Ashford)가
《쿠마리, 살아 있는 여신(Kumari: The Living Goddess)》을 발표하면서 서구 세계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 어린 나이에 사회에서 단절되어 생활하는 쿠마리에 대해
아동인권 침해라는 국제인권단체의 비난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네팔의 최고재판소는 2008년 아동인권에 관한 조약이 보장하는 권리를 쿠마리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할 근거는 역사적 문헌이나 종교적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쿠마리의 학습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 뒤 쿠마리들도 학교를 다니거나
개인교습을 받게 되면서, 전보다는 생활에 대한 구속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권침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쿠마리사원...나무로 된 사원의 창문이나 발코니의 조각들이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단한 것이 신기하다.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하롱베이 첫날 일주사 탐방 (36) | 2023.11.20 |
---|---|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광장 (0) | 2020.01.03 |
포카라에서 카트만두 이동 보더나트사원 투어. (0) | 2019.12.19 |
데이비스폭포.상티스 스투파 트레킹.페러글라이딩 (0) | 2019.12.17 |
네팔 포카라 사랑코트.티벳마을 (0) | 2019.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