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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익산 국화축제장 분재



특별전시관에서 여러 종류의 화분국화를 감상하고 분재실로 왔는데 아기자기한 돌과 나무에

접목한 국화분재가 어찌나 눈길을 사로 잡는지 찍고 또 찍고 하다 보니 사진 분량이 너무 많아

분재들만 따로 분류를 했다



국화를 보고 / 최태준

내가
그대를 알았을 때
잎사귀들은
찬 바람에 지는 날도
굳은 절개로
품어 온 꽃잎에
화사한 치마 곱게 여미고
말없이 찾아 왔을 때
그대는 이미
내 가슴에 와 있었다.
순이 같이 순결한 마음으로
사랑스러운 온기 고이 품고서
찬 서리 녹여 머리감은
그대는 언제부턴가
내 가슴에 핀
한 송이의 꽃으로
나의 연인이
되었네.


꽃잎의 형태에 따라 후물· 관물로 나누는데 꽃을 말린 것을 베개 속에 넣으면 두통

유효하고 이불솜에 넣으면 그윽한 향기를 즐길수 있으며 국화술 을 빚어 먹기도 한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 와 함께 일찍부터 사군자 하나인데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국화의 모습에서 선인들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 의 모습을 보았다.

 국화를 오상고절 (傲霜孤節)이라 하는데 도연명이 국화를 가장 사랑하였다고 알려져있.


국화는 한국의 고전문학 특히 시조에서 도화(桃花)· 매화 와 함께 자주 등장하였는데

그 중에서 송순의 “자상특사황국옥당가”와 이정보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속담에는 “짚신에 국화 그리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격에 맞지 않는 짓을 하거나

주가 되는 것이 천해서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당치 않을 때 이를 비유하는 것이다.


고려사”에는 고려 의종때인 1160년 9월에 왕이 국화를 감상했다는 기록을

볼수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부터 국화가 있었고 이후 고려때

중국에서 새롭게 도래된 국화 와 더불어 재배 또는 교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국화의 옛이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절화· 여절· 여화· 여경·

일정· 갱생· 부연년· 치장· 금예· 음성· 주영 등으로 적고 있다.


국화의 별명을 황화(黃花) 또는 황예(黃蘂) 라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 꽃빛이 황색이기도

하지만 황(黃)의 사상이 군주를 황제(黃帝)라 했듯이 국화를 꽃의 왕자라 여긴 것이다.


국화는 은군자· 은일화· 중양화· 오상· 상하걸· 황금갑· 동리· 동리가색

등으로도 불리는데 “오상(傲霜)이란 말은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붉은 바탕과 흰점이 있는 것은“단풍잎과 갈대의 꽃”이라고 했고 붉은선 무늬의 흰국화는

“붉은 바탕에 덮인 백설”이라 했으니 거기엔 눈을 찬미하는 소녀나 중앙 아시아

눈 덮인 불모지를 떠난 사랑하는 왕차오 췬을 연모하는 소녀의 사연이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의 시로 말미암아 우리 예원에서는 상파(霜葩)

이름이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 "들국화(野菊)" 란 말은 국화의 종(種) 이름이 아니고

구절초·개미취·개쑥부쟁이 등과 같이 산야에 절로 피는 야생종 국화를 총칭하는 말이다.



시인 이은상(李殷相) 은 흰 국화 화분을 집안에 들여놓고 “선생”이라

부르기로 했다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이 하도 구지분하고 어지럽고 시속(時俗) 이 또한 얕고 엷어 미황 속에서 허덕이므로

물러나 조용히 이 꽃 앞에 와서 탄원하고 질의하고 묵상 함으로써 무엇을 얻자 함이다.”


코츠왈즈님 글에서





분재 하나하나 정성과 고뇌가 엿보인다

보고 또 봐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Mary Hamilton(아름다운 것들) - Marie Lafo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