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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통도사 극락암에서 자장암까지



   서운암을거처.극락암.수도암.반야암.자장암.사명암.보타암을 잠간식 들려본다

  언제나 봐도 새롭고 향기롭고 온화한 소나무숲 통도사의 매력이다


여여문

극락암

  요사채 정수보각과 수세전

  청동반자

반자(쇠북)는 ‘사찰사보(寺刹四寶)’로 알려진 범종, 법고, 운판, 목어와 함께 대표적인 의식용 법구인데 금고(金鼓)라고 불리기도 한다.

범종이 주로 예불이나 법회 때 사용된 것에 비해 반자는 공양 시간을 알리는 등 보다 단순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통도사의 청동반자는 현재 극락암의 무량수전에 있다. 이 반자는 직경이 85.5~85.8cm로서 대형 반자에 속한다.

측면에는 반자를 걸거나 고정하는데 사용하는 반원형 고리가 두 개 있다.


고리 사이에는 원형의 돌기가 2조씩 짝을 이루어 측면을 돌아가며 장식하고 있다. 돌기는 총 44개이며 원형 돌기 안에는 범자문이 있다.

반자 후면에는 지름 65cm의 구멍이 뚫려있다. 청동반자 중앙에는 원을 중심으로 태극문양이 돋을새김 된 당좌가 있다.

태극문을 중심으로 양 측면에는 직사각형의 구역을 나누어 각각 발원문을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향 우측의 것이 “대황제폐하만만세(大皇帝陛下萬萬歲)”, “순비저하수제년(淳妣邸下壽齊年)”, “영친왕저하수제년

(英親王邸下壽齊年)”이고, 향 좌측은 “황태자전하천천세(皇太子殿下千千歲)”, “황태자비전하수제년(皇太子妣殿下壽齊年)”이다.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한제국 시기 황실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칠성탱화(七星幀畵)란 북두칠성을 불교의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하여 묘사한 불화를 말한다.

「양산 통도사극락암 칠성탱」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탱화로서 치성광여래삼존도(熾盛光如來三尊圖),

자미대제삼태육성도(紫微大帝三台六星圖), 칠원성군도(七元星君圖)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산 통도사극락암 칠성탱」은 치성광여래삼존도 1폭, 자미대제삼태육성도 1폭, 칠성원군도 7폭 등 모두 9폭이 1조를

 이룬 불화이다. 치성광여래삼존도는 화면의 중앙에 청색의 천공(天空)을 배경으로 하여 구름 속에 솟아오른 연화좌 위에

 치성광여래가 앉아 있고, 좌우에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시립하고 있으며, 본존의 두광 좌우에 태상노군(太上老君)과

 개덕진군(開德眞君)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 탱화의 주요 색상은 붉은색·녹색·군청색·황색·백색이며 보관의 장식과 홀,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는 장식, 성수의 머리

 묶는 끈 장식 등에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탱화 조성 화기(畵記)를 보면 증명(證明), 송주(誦呪), 금어(金魚)

 등의 연화질(緣化秩) 명단은 없으며, 다만 왕실의 무사안녕과 수명장수를 축원하고 있다. 예부터 왕실 작품에는 작가의

낙관을 할 수 없었으며, 이런 연유로 연화질 명단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탱화는 화면의 주요 부분에 금박을 사용함으로써 화면의 색조를 더욱 화려하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필선도 세련되고 간결하여

도상들의 윤곽이 뚜렷하다.
작품의 보존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할 뿐만 아니라 9폭의 완품이 모두 구비된 칠성탱화로서 구도나 색채, 필선 등 전반적인

도상이 우수하여 조선 후기 불교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박태기나무

구슬꽃나무·자형목(紫荊木)·자형이라고도 한다. 밑에서 몇 개의 줄기가 올라와 포기를 형성한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가지에는 흰빛이 돈다.

줄기와 가지에 다닥다닥 꽃이 핀 모습이 밥알 붙은 주걱처럼 보인다고 해서 밥풀떼기나무, 이것이 변하여

박태기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꼬투리 안에 콩을 넣고 코팅기로 누른 것처럼 콩이 들어 있는

부분이 볼록볼록 솟아 있어 그 모양이 재미나다. 씨를 뿌린 후 3~4년째에 꽃을 볼 수 있다.

꽃을 자형화(紫荊花), 열매를 자형과(紫荊果), 나무를 자형목(紫荊木)이라 한다. 관상용·약용으로 이용된다.

 꽃으로 가득한 자태가 매우 화려하여 흔히 관상용으로 심는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산제로 하여 사용한다.



  매발톱

백리향

 홍교아래 연못은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친다고 하여

'극락영지라 부르며 홍교가 놓여 있다

아직도 여기는 자몽련이 피어있다 산밑이라서 기온이 많이 다른가보다


박태기나무


복사꽃


영축산 정상부

   여시문

비로암은 사천왕상을 벽에 그림으로



비로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번지에 위치한 통도사 비로암(毘盧庵)은 대한불교 조계공 제15교구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通度寺) 영취산(靈鷲山▲1092m)내 암자(19개 암자)로서 비로암(毘盧庵)은 고려제 29대

충목왕(忠穆王1344~48 재위) 원년(1345년)에 영숙대사(靈淑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통도사 약지에 기록되어

있는 암자로 조선 제 14대 왕(1567~1608 재위)인 선조 11년(1578년:임진왜란전)에 태흥대사에 의해 중건된 후

여러차례 보수 되었으나 기록이 없다고 한다.비로암(毘盧庵) 비로전(毘盧殿)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우측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고, 경내에는 오래된 삼층석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비로암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북극전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비로암 칠성도(通度寺 毘盧庵 七星圖) 대한제국(1904년) 경남유형문화재 제 354호)

칠성신앙은 밤하늘의 별자리와 부처의 위치로 승격화하여,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출산및 수명을 관장하여,

고대로부터 많이 신앙화 되었다.통도사 비로암(毘盧庵)에 소장되었던 이 불화는,화폭 사방 가장자리에 구름문(雲文)이

 그려져 있고,하늘(天空)바탕을 파란색으로 채색한 후,별자리를 표시하고 있다.화면중앙에 지성광여래와

좌우 일광(日光)과 월광(月光)보살이 협시하였다.

그 상단으로 삼태육성(三台六星).28숙(二十八宿) 등 11존자가 반원형으로 서있으며,아래 주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자미대제(紫微大帝)의 태상노군(太上老君),칠원원군(七元星君)이 배열되어 있다.주존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는

이중의 광배를 두르고 있다.청,적,백색의 선을 차례로 두르고 투광의 내부를 녹청으로 메웠으며.신광은 금박으로 입혔다.


가슴 앞에 올린 오른손으로 설법인을 맺고,왼손은 발목 위에 놓아 치성과여래의 상징인 금륜(金輪)을 쥐고 있다.

그 무릎 아래 양쪽에는 보관에 해와 달을 표시한 일광과 월광보살이 연잎 위에서 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합장한 자세로

 본존을 향해 있다.협시보살의 좌우로 왕의 모습을 한 칠원성군과 머리 정수리가 기암처럼 높이 솟아 오른 태산노군,

머리 정수리가 기암처럼 높이 솟아오른 태산노군,왕의 면류관을 쓴 자미대제 등이 배열되어 있다.


디딤동위에 호접난이 눈길을 끈다

연등을 보니 부처님 오신날이 멀지 않은듯



비로전(毘盧殿)내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

비로자나불 석가의 진신(眞身)을 높여 부르는 칭호이다.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노자나불(盧遮那佛),자나불(遮那佛)

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로 ‘태양’이라는 뜻인데, 불지(佛智)의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는 화엄종(華嚴宗)의

본존불(本尊佛)이다. 무량겁해(無量劫海)에 공덕을 쌓아 정각(正覺)을 성취하고, 연화장(蓮華藏)세계에 살면서

 대광명을 발하여 법계(法界)를 두루 비춘다고 한다. 법상종(法相宗)에서는 노사나불(盧舍那佛)·석가불(釋迦佛)·

수용신(受用身)·변화신(變化身)으로 쓰고, 비로자나불은 자성신(自性身)이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


또 천태종(天台宗)에서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을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에 배치하여 설명하고

있고, 밀교(密敎)에서는 《대일경(大日經)》의 설을 계승하여 대일여래(大日如來)와 동체라고 한다.

수인(手印)은 부처와 중생이 일체라는 뜻의 지권인[智拳印]으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취하는 결인이다.

두 손으로 각각 금강권을 만들고, 왼손의 집게 손가락을 펴서 바른 주먹 속에 넣고, 바른손의 엄지 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마주대는 수인(手印)이다.


비로전(毘盧殿)내 우측의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지장보살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도록

 의뢰 받은 보살이다. 관세음 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신앙되는 보살이다.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

그는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은 이미 입멸하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천상·인간·

아수라·아귀·축생·지옥의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에게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

(成佛)을 서두르지 않겠나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중생이 모두 제도되면 깨달음을 이루리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을 지장전·명부전 혹은 시왕전이라 한다.


비로암 탱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354호

석가모니후불탱화(釋迦牟尼後佛幀畵): 128x165, 1899년

「석가모니후불탱화(釋迦牟尼後佛幀畵)」는 크게 삼세불화(三世佛畵)와 독존도(獨尊圖)로 나뉘는데,

비로암(毘盧庵) 대웅전「석가모니후불탱화(釋迦牟尼後佛幀畵)」는 독존도에 해당한다. 크기는

가로 165㎝, 세로 128㎝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불화의 구도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상을 두고 좌우를

각각 2단으로 나누어 아래쪽에는 두 사람의 보살, 위쪽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가섭과 아난

 두 명의 제자, 바깥쪽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하였다.



비로전(毘盧殿)마루 좌측의 명반자(銘飯子) 

 

 명반자(銘飯子)란 금속으로 만든 북의 일종으로,옛날 군대나 사찰에서 사용했다.

형태는 꽹과리를 크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옆면과 위아래에 2~3개의 고리가 있어 매달아 치게 되어 있다.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며 둘레에는 보상화나 구름, 여의주, 당초문 등의 무늬를 새기고

옆면에는 글자를 새겨넣는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작연대가 확실한 것으로는 함통육년명금고

(咸通六年銘金鼓)와 자복사금고, 경암사금고·중흥사금고·임자명옥천사금고·경선사금고·

포계사금고·정우오년명금고 등이 있다.

      

비로암 입구의 폭포


자장암 주차장 앞에 폭포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곳이다

108 번뇌를 잊게하는 아름다운 계단

금잔디


복사꽃

자장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부속 암자이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를 짓기 이전에 이곳의 석벽

 아래에서 수도하며 창건하였다. 그 뒤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에 용복(龍福)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 건물은 5동 23칸이다. 법당은 4칸의 조그마한 인법당(因法堂)이며, 법당 왼쪽에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자장전(慈藏殿)과 독성각(獨聖閣)이 있고, 법당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으며, 암자 입구 쪽에는 최근에 지은 선실(禪室)이

 있다. 법당과 자장전 사이에는 높이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며,

 1896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마애 삼존불 입상

본존인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댄 중품상생을 지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중품하생의

 수인을 지었다. 두광은 특별히 표현되지 않았는데, 군데군데 진언 중의 진언 '옴'자가 범어로 음각되어 있다.

왼쪽 대세지보살 아래쪽에 기다란 명문이 남아 있어 불상이 고종 즉위 33년, 즉 1896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장전과 세수전





파란선이 그려진곳에 금개구리가 산다고함



금개구리(금와 보살이라고 한다)

이 암자에 대하여 불교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금개구리이다.

 법당 뒤쪽에는 암벽에서 맑은 석간수(石間水)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석벽에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율사가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물을 혼탁하게 하므로 신통력으로 석벽에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들어가게

하였다고 전한다. 현재에도 있는 한 쌍의 개구리는 몸이 청색이고 입이 금색인데, 벌과 나비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구리는 절대로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않는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않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고 봉한 다음 손에 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이 금개구리는 많은 설화를 남기고 있으며, 많은 참배객들이 보살이라고 부르면서 친견(親見)하고자 한다.

그러나 암혈 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로써 불심(佛心)을 측량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진을 올려놓은 분들은 분명히 봤다 하는데 나는 못 보았으니 밑을 수 밖에



영축산에서 좌로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 시살등 오룡산으로 이어진다



  흰제비꽃

자주 광대나물

  자장암을 뒤로하고 사명암으로 이동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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