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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무주 구천동계곡


공주에서 모임을 하기위해 가면서 구경도 한다고 하루 먼저 출발해서 이곳 무주 구천동계곡으로

왔다 구천동 매표소에서 백련사 까지는 몇 번을 다녀왔기에 생략하고 하류쪽으로 접근을 한다(5/1)


무주구천동 33경



2000 년도에 이곳 수심대 주차장에서 텐트치고 야영을 하며 통발로 꺽지도 잡고 하루밤을

보냈는데 그때는 이 아름다움을 왜 못 느꼈을까 수심대라해서 찾아왔더니 바로 그곳이네


산속이라서인지 이제 라일락이 한창 피고 있다






 수심대

무주구천동의 제12경인 수심대는 독특한 기암절벽에 소나무의 푸르름이 잘 어우러져 예로부터 금강산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절벽이라 해서 금강봉으로도 불렸다. 파회와 수심대의 동안에는 수직암벽과 소나무가 위주의 혼효림이 잘 발달해 있다.

반대편 서안에는 느티나무, 갈참나무 등의 활엽수림이 우점적인 가운데 간혹 아그배나무, 고욤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혼생하고 있다.

무주 구천동 파회(巴洄)·수심대(水心臺) 일원은 덕유산국립공원 내에 입지해 있으며, 2009년에 명승 제56호로 지정되었다.

 파회는 나제통문에서 10.9㎞에 위치한 구천동 3대 명소 중의 하나로, 여러 소(沼)들이 특이한 형태의 계류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수심대는 파회에서 0.4㎞ 정도 상류에 위치한 수직암벽으로, 소나무 중심의 식생경관이 함께 어우러진 경승지다.


파회는 고요한 소에 잠겼던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지며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키고, 다시 기암에 부딪치며 제자리를

맴돌다 바위 사이로 흘러들어가는 곳을 의미하는 명칭이다. 또 파회는 옥같이 맑은 물이 돌아 나가는 곳이라 하여

 수회(水回)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심대는 신라 때 일자대사가 이곳에서 흐르는 맑은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도를

깨우친 곳이라 하여 명명되었다고 한다.


파회와 수심대는 중생대 백악기의 석영안산암지대에 발달하였으며, 원당천의 곡류지역에서 하각작용에 의한 하식대가 우세한

곳이다. 파회 부근에서는 연회색 내지 암회색을 나타내는 변성암류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함된 각력은 주로 운모편암과

 편마암류이다.


무주 남대천은 대체로 광활하고 단순한 유로를 보이나 나제통문부터는 계곡이 갑자기 좁아지고 깊어져 천입곡류천(穿入曲流川)의

 양상으로 바뀌어 파회에 이른다.







 파회

무주 구천동 33경 중 제11경인 파회는 연재(淵齊) 송병선(宋秉璿)이 이름 지은 명소이다.

이는 구천동의 무이구곡 중 제9곡에 해당되며 파회라고 쓰여진 각자가 있다.

파회 계류 가에는 천송암으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는 천년송으로 불리는 늙은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소나무는 신라시대 일지대사가 이곳을 탐승하고 소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꽂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명승지라고 입간판을 세울 정도 되면 지나는 사람이 꼭 한 번 볼 수 있게 길도 정비를 해야되는데

이렇게 안내문만 있고 급경사라서 내려가 볼 수가 없다


 학소대로 내려가는 곳은 가정집이 한채 있는데 65세 된 아주머니께서 혼자 살고 계시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혼자서 두아들을 키웠는데 지금 4급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고

하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꽃도 가꾸고 산나물도 뜯고 밭농사도 지으며 외롭게 살고 있다


이 넓은 바위가 학소대 인가보다





두릅










 일사대라는 안내문을 보고 이러한 곳을 찾으려니 다리는 철조망으로 가려 있고

윗길도 막아 놔서 전진할 수가 없다

바로 옆에 서벽정으로 올라가 본다





일사대는 조선 말 고종 때의 학자 연재淵齊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은거하여‘서벽정棲碧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며 소요하던 곳이다.

이 고장 선비들이 송병선을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라는 뜻의‘동방일사東方一士’라 한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푸른 바위의 깨끗하고 의젓함을 들어‘일사대一士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송병선은 구천동 계곡에 구곡경관을 명명하여 무이구곡이라 하였는데, 일사대는 송병선이 경영한‘

무이구곡武夷九曲’의 제4곡이다. 구천동의 무이구곡은 구천동 33경 중 제2경 은구암을 제1곡으로,

 제4곡 와룡담을 제2곡으로, 제11경 파회를 제9곡으로 설정하였다.


일사대에는 진입부의 바위에 무이구곡을 나타내고 있는‘무이동武夷洞’이란

 각자가 새겨져 있는데, 무이동이란 명칭은 송병선이성리학에 기반을 두고있는 학자로서

주자의 무이구곡으로부터 이름을 가져와 이곳을 무이구곡이라

명명하고, 주자를 흠모하는 은일생활을 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벽정은 강학을 한 공간으로 주자가

 경영한 제5곡 무이정사에 해당하는 정자이다.


서벽정은 송병선이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은둔생활을 하던 거처로서, 영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논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계류에 우뚝 솟은 바위에는‘인간사를

 영원히 버리고 나의 도를 창주에 붙인다

(永人間事吾道付滄洲)’라고 한 송병선의 7대조 우암 송시열의 글이 남아 있다.

일사대 가는길

와룡담 역시 들어 갈 수가 없다


 병꽃나무











청금대라는 안내문을 보고 내려 왔는데 그동안 물길이 많이 바뀌었는지 사진과는 다른모습만 보인다


               
♬배경음악:Stellar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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