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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나제통문. 반디불랜드.지전마을 돌담




나제통문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있는 석모산 인근에 기암절벽을 뚫어 만든 통문.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동굴로 무주구천동

 입구에 위치하며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윗부분에 '羅濟通門(나제통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지역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 관문으로, 과거 통문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라 땅이고 서쪽은 백제 땅이었다.


 나제통문이란 이름은 이러한 연유로 유래되었 신라와 백제 양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지금도 이 통문의 양쪽으로 위치한 무풍방면의 이남과 무주방면의 새말은 행정구역상 무주군 소천리에

속하지만 언어와 풍속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이 통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당시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추정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수탈을 위해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를 내면서 뚫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환태 문학비

김환태는 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 문학 비평가자이자 교육자다. 

 당시 경행 문학과 계급주의 비평에 경도되어 있던 문단에서 순수 문학을 옹호하며 기틀을 마련한 문학평론가다.

해마다 무주에서는 김태환 문학제가 열리고 문학관을 건립하여 문학세계를 대중들에게 더 깊이, 더 멀리 알리고 있다.

또한, 그의 뜻을 기리고자 나제통문 옆 작은 공원에 김환태 문학기념비를 세웠다.

 강무경 의병장

조국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부귀영화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32세의 꽃다운 나이로 목숨을 바친

강무경 의병장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후세에 기리고 귀감을 삼고자 이곳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강무경 의병장께서는 1897년에 무주군 설천면에서 태어나 필묵상을 가장하여 의병 심남일과 함께 대일항쟁을 결의하고

의형제를 맺은 다음 김율의 의진에 소속 대일항전을 벌였고 수많은 전투에서 일본군을 살해하고 많은 수량의

무기를 노획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양한 의병장이다.





 꽃잔디


이곳에는 삼국시대와 관계된 유적이나 전설이 많다. 부근의 야산에 산재한 약 3백여 기의 고분은 신라와 백제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파리소(沼)라는 연못은 양국의 격전시에 시체가 산처럼 쌓여 파리가

모여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그리고 통문은 삼국통일전쟁시에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이 왕래했다고 하여 ‘통일문(統一門)’이라고도 불린다.

인근의 무산성지(茂山城址) 근방 사선암(四仙巖)이라는 크고 평평한 바위는 김유신 등 4명의 화랑이 바둑을 두며 놀던

장소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바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전설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이 지역이 신라·백제 양국의 전쟁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나제통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덕유산에서부터 무주구천동의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는 맑은 물보라가 치는

하천을 건너야 석문을 들어갈 수가 있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맑은 물이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며 일으키는 세찬 소리는 오랫동안 치열했던

옛 신라 백제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신라·백제 양국은 5세기 이전에는 주로 조령·죽령 방면과 추풍령 방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뒤 가야 제국(加耶諸國)이 신라에 흡수되어 소백산맥을 경계로 백제와 맞대게 되면서부터 양국은 육십령(六十嶺)을

넘나들며 전투를 벌였다.


통문은 육십령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실제로 신라군과 백제군이 자주 내왕했을 것이고, 『삼국사기』에 김유신이 백제의

장군 의직(義直)과 무산성(茂山城 :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에서 싸웠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김유신에 관한 전설도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풍면쪽에서 바라본 나제통문


수달래인지 철쭉인지 멀리있어 구분은 어렵고



태권도원에 갔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휴관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반디랜드로 갔으나 녀기도 외부만 개방하고 내부는 휴관중이다

반디랜드는 반딧불이를 체험하고 학습,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희귀 곤충을 만날 수 있는 곤충박물관, 반딧불이연구소,

 청소년야영장, 통나무집,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는 체험 학습 교육 공간이다.


반디랜드내에 위치한 무주 반디별 천문과학관에서는 우주의 탄생과 역사, 태양계, 별자리, 우주환경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무주군의 청정환경의 지표곤충인 반딧불이와 각종 곤충류에 대한 생태연구 및 서식처 복원 등을 통하여 환경교육의

 거점지역으로 육성하기 위해 조성한 반딧불이 환경테마공원은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반딧불이는 어떻게 빛이 나는 걸까요?

 반딧불이는 어떻게 빛을 내는 걸까요? 반딧불이는 배 부위에 있는 발광세포에 의해 빛이 발생하는데,

루세페린이라는 화학물질이 생체에너지인 APT와 루시페라제라는 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옥시루시페린과 빛을 발산하게 됩니다.



반딧불이는 우리나라에 총 8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 중 무주에는 3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매년 9월쯤 반딧불이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또한 무주는 반딧불이와 서식지가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반디랜드는 반딧불이가 알에서부터 빛을 내는 어른벌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주제로 건축되었는데.

 곤충박물관, 반디별천문과학관, 반딧불이연구소, 청소년 야영장, 통나무집, 반딧불이 관찰지가 있어 아이들과

체험-학습-교육을 할 수 있는 멀티 공간이다

무주곤충박물관에는 3D 상영관과 돔 상영관이 있고 3D 상영관 앞에  비단벌레 첨성대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지나가면 우루루 몰려든다 아마 관광객들이 매번 먹이를 주었나본데

요즘은 관광객이 없어 배가 많이 고픈가보다






 반디불이 연구소

옛날에는 개똥처럼 흔하고, 습한 곳을 좋아해서 개똥이나 소똥에 숨어 있다 밤이 되면 나오는 벌레로 인식되었지만,

요즘에는 아주 귀한 몸이 되었다.

 

깨끗하고 청정한 지역에만 사는 반딧불이는 무주군 설천면, 무풍면, 무주읍에 주로 서식하고 있다.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딧불이는 청정지역 무주에서 생태환경축제로 함께 어우러지는 추억의 축제를 하고 있다.


실내 식물원도 들어갈 수가 없다

 사계절 썰매장

  반디별 천문 과학관


 여행도 때를 잘 맞추어야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실내 전시장은 휴관이라서 볼 수가 없고

 외부만 보고나왔다




 지전마을 회관

지전이라는 이름은 이 곳이 예전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며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 옆을 흐르는 남대천가의 오래된 여러 구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320년 정도로 이러한 나무들이 제방 아래에 있다는 것은 남대천이 마을로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방을 쌓은 뒤에 현재의 위치에 식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마을 뒤로 소백산 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서

발원하여 마을의 좌측을 지나는 남대천은 여름철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할 만큼 우수한 경관을 뽐내고 있다.

마을은 크게 4개의 군락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마을의 공간구조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개량 기와집 형태의 가옥이 주종을

 이루는 전형적인 농가 주택의 면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담장은 본래 기능인 주택의 경계역할을 하는 담장과 외벽의 기능을 하는 담장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마을의 대부분의

담장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석담은 흙과 자연석을 혼용하여 평쌓기를 한 것으로

 이어진 담장은 시각적 연속성을 주고 있으며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로 처리되었다. 전체적으로

 전통 가옥, 남대천, 노거수와 더불어 마을 전체에 식재되어 있는 감나무는 한 폭의 풍경화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이들과 어우러진 담장 또한 산골 마을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인삼 밭과 앞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다

담장형태 - 토담길이 약 700m의 돌담, 토석담 (전형적인 돌담과 토석담) 마을형성 - 17세기 후반 형성

 주인을 잃은 집은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데

 앞에는 또 새로운 집을 짖고 있다

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석담은 흙과 자연석을 혼용하여 평쌓기를 한 것으로 이어진 담장은 시각적 연속성을

 주고 있으며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로 처리되었다.



 이곳 지전마을도 돌담이 지방 문화재여서 담장은 정비가 잘되어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이 많이 있다




언제 기회되면 이 금강 마실길을 한 번 걷고 싶다



5월의노래/소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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