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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함양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서원은 국공립 교육기관 향교와는 달리 사설 교육기관으로서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첬지만 한편으로는 학파들 끼리 편가르기를 해서

당파싸움의 근거가 됐으며 사화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다

정여창선생 신도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9개서원중에 하나이다

홍살문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태극 문양은 네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삼태극({{#001}}), 이태극({{#003}}, {{#004}}) 및 빛을

넣는 삼태극({{#002}}) 등으로 표현되어 있고, 태극 문양 위의 지창(枝槍)은 2지창과 3지창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이 홍살문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해서 세워지게 되었는지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세워진 장소로 보아서는 경의(敬意)를 표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생각될 뿐이다.

정여창

조선 전기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훈구파가 일으킨 사화로 죽었다.

일찍이 지리산에 들어가 5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1490년(성종 21) 효행과 학식으로 천거되어 소격서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예문관검열·세자시강원설서·안음현감 등을 역임했다.


그는 유학적인 이상사회, 즉 인정이 보편화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자의 도덕적 의지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집권세력이었던 훈구파에 대하여, 스스로

성인을 공언하여 이러한 사명의 담지자로 자처했고 결국은 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다.

 

 

 

 

 

 

풍영루에 들어서면 양쪽에 연못이 있는데수련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강당에 걸려있는 현판들

 

 

 

 

 

 

 

 

 

 

정료대

횃불을 피워 놓기 위하여 뜰에 세운 기둥 모양의 대(臺).

밤에 행사할 때 마당을 밝히려고 이곳에 관솔불을 올려놓는 곳

사당 뒤에는 오래된 소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있다

씀바귀

 

관리동인 듯

남계서원을 둘러보고 탁영 길일손 선생을 모시는 청계서원으로 왔다

 

탁영 김일손

김일손은 1464년(세조 10)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마을(포은 정몽주와 교유한

고조 할아버지 김항(金伉)이 청도집의를 지낸 아버지 김맹(金孟)의 꿈에 용마(龍馬)를 보고

세 아들을 낳아, 아들의 이름을 모두 마(馬)변이 있는 글자로 지었다고 한다.

큰 아들이 김준손(金駿孫)이며, 김기손(金驥孫)은 둘째이고, 막내아들인 그가 김일손(金馹孫)이다.

효성의 귀감으로 후세에 알려지는 김극일〈통감강목〉·사서(四書) 등을 배웠다.

1478년 15세 단양 우씨와 혼인하고, 선산의 이맹전을 찾아 배알하였다.

 

김일손(金馹孫, 1464년 2월 13 (음력 1월 7일)~ 1498년 8월 14일(음력 7월 27일))은 조선 성종·

연산군 김해이며,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성종 때 문장실력을 높게 평가받아 춘추관의 사관(史官)활동했으며, 이때 공문서인 사초에 왕실에

대한 유언비어,전라도관찰사 이극돈(李克墩) 윤필상등의 의혹 등 여러 소문들을 검증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사서에 기록해 물의를 빚었고, 거기에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세조를

비난한 목적으로 사초(史草)에 실었고 이것을 국문 도중에 드러나 반역죄로 사형당한다.

외삼문을 들어서니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방문객을 압도하고

탁영선생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이맹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밀양의 점필재 김종직1483년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정여해·강혼(姜渾)·남곤 정광필남곤은 또다른 동문인 김굉필의 제자

조광조2년간 이맹전과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이맹전이 병사하자 김종직의 문하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며 그에게서 성리학김종직의 문하생인 그는 오래 스승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486년(성종 1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호(號) 탁영(濯纓)은

‘갓끈을 씻는 사람’이란 뜻으로서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 중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에서 따온 것이다.

 

서제

동제

 

 

강당

 

탁영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탁영선생 유허비

 

멀리서 바라본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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