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폭포에서 이곳 화림동계곡 농월정 유원지로와 매기매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농원정과 거연정 동호정 군자정을 차례로 돌아본다
화림동은 안의에서 장수 방향으로 난 육십령 고개를 거슬러 올라가는 계곡을 일컫는다. 화림동계곡은 골이 넓고 물의
흐름이 완만하다. 청량하고 풍부한 물줄기는 계곡의 만을 감아 돌면서 이곳저곳에 작은 못을 만든다.
더러는 너럭바위를 유연하게 타고 넘기도 하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못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화림동계곡은 정말 아름답다. 맑은 물과 너른 암반, 기암괴석과 늙은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고, 아름다운 승경이
절정을 이루는 곳마다 정자들이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요산요수하며 음풍농월을 즐기던 함양의
선비들이 맑은 계곡과 수정 같은 옥수를 놓칠세라 건립한 정자다. 이러한 정자들은 주위의 자연과 조화를 이뤄 마치
수채화 같은 풍경의 연계 경관을 형성한다
원래 화림동계곡의 풍광은 ‘팔정팔담(八亭八潭)’이라 일컫는다. 여덟 개의 정자와 여덟 개의 담이 있는 계곡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정확하게 여덟 개의 정자와 담이 있었는지, 아니면 정자와 담이 많은 계곡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하튼 팔정팔담이라는 표현은 화림동계곡을 매우 적절하게 묘사한 말로 생각된다. 화림동을 비롯한 안의삼동
에는 정자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영남의 선비들은 사화와 당쟁으로 산수에 은둔하고 시서를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 현재 화림동계곡에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 등 세 개의 정자가 남아 있다. 이중 명승으로 지정된 정자는 거연정이 유일하다.
너럭바위 그늘에는 여행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화림동계곡의 초입에는 고요한 밤 냇물에 비친 달을 한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의미를 가진 농월정(弄月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지족당 박명부가 즐겨 찾던 곳에 지었다는 이 정자는 본시 화림동계곡
경관의 백미라 할 만한 제일의 경승이었다.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 - 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에 이른다. 가히 우리나라의 정자문화의 메카라고 불리어지는 곳 답게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농월정은 2003년 10월 화재로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의 정자는 2015년 함양군이 새로 지었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농월정길 9-13 구(지번) 주소안의면 월림리 산 92 (지번)
기린초
급하게 흐르던 물은 농월정에 이르러 무려 1,000여 평에 이르는 반석이 펼쳐 놓았다.
그 위를 맑은 물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이 일대가 조선의 ‘무릉도원’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 덕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화림동계곡을 흐르는 남강천 암반 위에 건립된 거연정은 매우 특별한 형태를 보여준다. 거연정은 화림교를 건너야만
진입할 수 있다. 화림교는 무지개다리, 즉 홍교(虹橋)다. 홍교는 또 다른 말로 아치형 다리를 뜻하는 오교(吳橋)라 하기도
한다. 화림동계곡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연정은 계곡의 기암과 주변의 노송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답다.
중층으로 된 누각 형태의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내부는 판재로 벽체를 구성한 1칸의 판방을 갖추고 있는
유실형(有室形) 정자다. 굴곡이 심한 천연 암반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 정자의 아랫부분은 주추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바위 표면이 높은 곳은 주추 없이 그대로 기둥을 올리기도 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순응하는 정신과
자연친화적인 건축술을 잘 보여준다.
거연정은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가 지은 정자다. 1640년(인조 18)경 그는 서산서원을 짓고 거연정의 위치에
억새로 만든 초정을 처음 지었다. 화림교 앞에 세워져 있는 ‘화림재전공유허비’에는 “옛 안의현 서쪽 화림동에 새들마을이
있으니 임천이 그윽하고 깊으며 산수가 맑고 아름답다. 화림재 전공이 세상이 어지러워 이곳에 은거했다”라고 쓰여 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산서원은 훼철되었다. 이후 1872년 전시서의 7대 손인 전재학이
억새로 된 초정을 철거하고,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중수해 오늘에 이르렀다.
거연정은 우리나라 별서정원의 전통적 형식인 계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처럼 계곡 주위에 정자와 더불어 약간의 정원 시설을 조성한 이러한 고정원이 계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원의 원형은 정자다. 별서는 본래 아름다운 산수 속에 자리한 소박한 정자로 거연정이
계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거연정을 비롯해 화림동계곡에 줄지어 있는 정자들은 각각의 작은 계원을 계속
연결하고 있어, 화림동천을 거대한 하나의 계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계원은 중심건물인 정자와 더불어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연 요소들을 정원의 일부로 활용한다. 따라서 계원 속의 정자는
그 위치와 조망이 매우 중요하다. 정자에 방이 있는 경우, 조망은 문을 통해 형성되는 프레임으로 사람이 방 안에서
바라보는 광경을 의미한다. 거연정을 포함한 계류 주변에 지어진 정자 안에서는 이러한 빼어난 자연을 조망할 수 있다.
아울러 계원의 중요한 또 하나의 조망은 밖에서 정자가 위치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계원이 대단히
아름다운 조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도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정자가 위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계류를 끼고 있는 기암괴석의 절승에 정자가 있는 사례는 더욱 많다.
그러므로 당연히 정자가 자리한 계원을 주변에서 바라보는 모습 또한 아름다운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동호정은 함양군 안의면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전주방향으로 7km 정도의 거리에 국도와 연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동호정은 남강천 담소중의 하나인 옥녀담에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강 가운데에는 노래 부르는 장소(영가대), 악기를 연주하는 곳(금적암), 술을 마시며 즐기던 곳(차일암)을 포함하며,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수백평의 널찍한 암반이 있어 이 곳이 풍류를 즐기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너럭바위
통나무를 파서 만든 계단
'군자정'은 조선 5현이라고 알려진 일두 '정여창 선생'과 연관이 있다.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바로 이 정자가 있는
봉전마을이었다. 그가 처가에 머무를 때 자주 머물렀던 곳에 전씨 문중의 전세걸 진사 등이 1802년에 선생을
기리면서 정자를 세운 것이다. 해동군자가 쉬던 곳이라 해서 이름을 ‘군자정’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정자 아래 계곡에 집채만한 바위 등의 볼거리가 있으며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수량도 제법 많다고 하는데 그 때 역시 볼 만하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고 맑은 물이
흐를 때면 그 계곡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
군자정 역시 천연의 암반위에 단동으로 세운 중층 누각건물로서, 내부에는 방을 들이지 않고 모두 틔워 놓았다.
정면의 우측으로 판재로 만든 계단을 두어 누로 오르게 하였고, 4면 모두 기둥의 바깥쪽으로 약 15~18cm 정도를
연장하여 계자난간을 둘렀다. 마루는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것도 원래는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으로
현재 함양군에서 원형복구를 추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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