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동안 가택 연금되다 싶이 집에만 있었고 5일 동안 운동하는 것도 거리 두기 2단계로
사무실 주말까지 쉰다하여 어디로 갈 곳 찾아 보다가 태백 고랭지채소가 생각나 준비해
혼자서 떠나본다 네비양에게 태백 구문소 맡겼더니 구문소 마을 회관 앞으로 안내를 한다
파킹하고 돌아보는데 내가 생각하는 구문소가 아닌데 일단은 폭포가 보여 그곳으로 가본다(9/4)
구문소 마을
태백의 남쪽 관문이자 강원도의 최남단 접경지로서 천혜의 명소 구문소(자연유산 제 417호)에 접해있는
역사 깊은 촌락이다. 옛 지명 퉁점마을에서 유래한 동점이라 불리다가 근래 새농촌건설운동을 계기로
‘구문소마을’로 이름짓고 건강한 자립공동체 마을로 가꾸어가고 있다.예약을 통해 마을숙박 및 고추장담그기,
과즙만들기 등 여러 체험이 가능하다.
구문소 마을 앞에 있는 비와야 폭포
비와야 폭포길이라고 써 있어서 곰곰 생각해 보니 폭포에 물이 적을 것을 보니
비가 와야만 폭포가 형성된다는 것 같다 .요즘 비가 많이 내려 황지천 물은 많은데
폭포가 빈약한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주민에게 물어 다시 내가 생각하는 구문소로 왔다
여기는 산행하며 지나다니며 차창으로만 봤지 실지적으로 본적은 없다
지금도 이런 전설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ㅎㅎ
황지천 물이 모두 이곳을 거친다
구문소(求門沼)는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황지천 하구에 있는 소이다.
황지천은 낙동강의 상류인 철암천에 합류된다.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전기고생대의
지질을 볼 수 있다. 역사적 문헌을 살펴보면 《세종실록 지리지》에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백 구문소 전기고생대 지층 및 하식지형은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큰 석문(石門)을 만들고, 그 아래로 깊은 소(沼)를 이루었다는 뜻의 구문소는
‘구무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구무’는 ‘구멍’ 또는 ‘굴 ’의 옛말이다. 다른 말로는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고
해 ‘뚜루내’라고 하며,『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등의 고문헌에는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저안에 평평한 곳에 오복동천자개문이란 글자가 끝에서 두자만 보이는데 물이 많아서 자세히
볼수가 없고 아래 사진을 참고
동점 구문소의 구름다리처럼 생긴 구문소의 거대한 석굴(石窟), 곧 뚜루내(穿川)의 지부석(地負石)을 자개문
(子開門)이라 한다.
고려시대부터 성행하여 조선시대에는 민중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 정감록(鄭鑑錄)이란 도참서(圖讖書)가 있다.
전쟁과 기근(饑饉)과 관리(官吏)의 횡포, 과다한 세금에 핍박받던 민중들에게 아름다운 이상향(理想鄕)을
제시하여 그들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되게 한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던 비결서(秘訣書)이다.
그 책에 쓰여 있기를「낙동강의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石門)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凶年)이 없으며 병화(兵禍)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이상향(理想鄕)이 나온다.
」라고 하였다. 그 오복동(一名 午腹洞)은 지금의 황지, 장성 땅인 태백시 일원을 말하고 석문은 낙동강이 산을
뚫고 지나간 뚜루내(穿川)인 구무소의 크고 둥근 구름다리 형상의 석굴(石窟)이 바로 석문(石門)인 것이다.
오복동천자개문(五福洞天子開門) 이사진에서는 잘 보이나 지금은 물이 많고
멀어서 자세히 볼 수가 없다 더 많은 줌인이 필요하다
구문소에서 제일 위쪽에 3개의 폭포가 나란히 쏟아지는 곳이다.
높이 약 6~7m로 황지천(黃池川)의 물이 이곳에 와서 세갈래로 갈라지며 폭포를 이루어 떨어진다.
- 옛날 폭포 윗쪽에서 삼형제가 물놀이를 하다가 떨어져 익사하며 삼형제가 다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
그때 삼형제 용이 승천하며 바위절벽을 치고 올라가서 생긴 것이 바로 삼형제폭포라 한다.
단기 3904년 선조 4년에 경상감사가 12월 18일 진시(辰時)에 낙동강 상류의 물이 끊어 졌다고 장계를
올려 보고하자 이때부터 민심이 흉흉해졌다.
전하는 말에 낙동강의 물이 끊기면 국가에 큰 난리가 난다고 하였다. 이것을 낙동강의 절류(絶流)라 하며
지금의 용소(龍沼)위에 있는 삼형제 폭포의 물이 끊겨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그 후 임진년에 왜군이 쳐들어와 강토를 유린하자 백성들은
구문소의 영험함을 확인하였고 신령스런 곳으로 두려워하였다
천천 구문소라는 시를 권만이란 사람이 영조 25년에 썼다는 기록
한편 구문소의 형성과정에서 지질조건은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구문소 일대에는 석회암이 넓게 분포하는데, 석회암은 물에 잘 녹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통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구문소의 암벽이 유수에 쉽게 녹아 새로운 물길이 생겨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문소에서 200여 미터 상류인 혈내천 주변에는 건열, 물결자국, 소금흔적, 새눈구조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나오고 있어 전기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포트 홀(pot hole)을 비롯한 다양한 하식지형이 나타난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구문소 일대는
2000년 4월 28일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또 다른 전설...
아주 오랜 옛날에 구문소로 흐르던 강물이 사근다리 쪽으로 돌아서 마리거랑으로 흘렀다 한다.
어느해 여름... 큰 홍수가 나서 물이 크게 불어났다.
이때 화전동의 싸리밭골(지금의 싸리재, 추전역부근)에서 엄청나게 큰 싸리나무가 떠내려 오다가 이곳 구문소의
석벽(石壁)부근에서 사근다리 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그대로 구문소의 석벽을 강타하여 우뢰(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큰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근다리 쪽으로 돌아 마리거랑으로 흐르던 강물이 이 구멍으로 곧바로 흐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마이삭 태풍으로 비가 많이 내려 황지천은 황토물이고 물의 량도 많다
태백 고생대 자연 박물관은 코로나로 임시휴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 위에 건립된 고생대를 주제로 한 전문 박물관이다.
강원도 태백시가 2003년부터 총사업비 200억 원을 들여 1만 2727㎡ 대지에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6207㎡ 규모로 신축했고, 2010년 10월 27일 개관했다. 이 박물관은 태백시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박물관 주변에 고생대 퇴적침식지형과 삼엽충,
완족류 등 다양한 산출을 보이는 직운산층이 산재해 전시물 관람뿐 아니라 살아있는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과 자연사의 공생, 고생대 보고 태백"라는 주제 하에 전시물은
선캄브리아기 20%, 고생대 60%, 중·신생대 20%로 구성돼 있다. 동물류 173점과 삼엽충 65점,
식물류 43점, 암석류 41점 등 322점이 있고, 서울대로부터 기증받은 1500점 가운데 학술적
가치와 전시 가치가 있는 삼엽충 87점을 포함해 모두 409점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1, 2층 전시실과 지하층 체험전시실, 기획전시실, 야외 체험학습장, 포켓전시실, 가상체험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루 적정 수용인원은 1370명이고, 메인 전시 60분과 포켓뮤지엄 30분
등 모두 관람하는데 90분 정도가 소요된다.
부추꽃
돌탑 하나는 외로워 둘이었을까?
까실 쑥부쟁이
팔작지붕을 얹힌 자개루
구문소 절벽 위에 오묘히 들어앉은 1층 누각으로 여기에 오르면 구문소 주변이 발 아래로
펼쳐지고 주변 산들이 나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본다.
다만 구문소와 동굴은 바로 밑에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구문소 다리
다시 한 번 구문소를 담아 보고 황지연못으로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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