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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철암 탄광역사촌과 신리 너와집

 

철암역

강원도태백시철암동에 위치한 영동선철도역으로, 한국철도공사 강원지사의 관리역이다.

과거 태백 지역의 무연탄대한민국 각지로 발송하는 역할을 하던 매우 큰 역이었으나, 석탄산업 합리화에

따라 대다수의 탄광이 문을 닫은 탓에 옛날에 비해서 위상이 떨어져 있다.

 

모든 영동선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며, 과거에는 태백선을 거쳐 청량리역으로 가는 열차의 시종착역이였으며,

현재는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시종착역이기도 한다. 중부내륙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이전에는 태백선과 직결되는

일반 여객열차가 운행하지 않아 서울특별시중앙선, 태백선 연선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시내버스

이용하여 인접한 동백산역이나 태백역으로 가서 열차를 이용해야 했다. 

광차

광산이나 탄광에서, 광석, 석탄, 폐석 따위를 실어나르는 차. 궤도 위를 다니며 뚜껑이 없다.

이렇게 연탄을 하늘처럼 받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공원에 장승들은 무슨의미로 만들어 졌을까?

다녀올께 오늘도 무사히 잘다녀오세요

 

신설된 공원의 모습들

까치발집

위 사진처럼 하천을 따라 주거지가 형성되었는데 하천쪽으로는 보시는것처럼 어설픈 기둥들로 집을

떠받치고 있어서 "까치발 집이라고 한다

철암역 건너편의 저탄장 모습이다.

 

삼방동 예전에 광부들이 주로 살던 동네다 일부는 새로 지은집들도 있지만

아래처럼 그때 그모습으로 빈집으로 남은 집들도 있다

쇠바우골 탄광 문화장터

탄광촌 광부의길

철암천 이하천이 구문소에서 황지천과 합류를 한다

봉화를거쳐 낙동강과 합류를 한다

광부가족의 길

산소도시에 걸맞게 분리 수거장도 참으로 깨끗이 정비가 잘 돼 있다

삼방동 경로당

철암교회

삼방동 전망대

광부들이 출퇴근하던 천상의 계단 말끔히 정비가 되어 옛스러움이 없다

까치발 집들

먹고 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넘쳐나던 곳이라 그 만큼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까치발 건물은 계곡(철암천)을 따라 형성된 철암마을의 특성 때문에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철암천에 기둥(까치발)을 세워 지은 집이다. 광산 개발 당시의 환경과 철암의

삶과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옛 탄광촌 주거시설을 복원·보존한 생활사박물관이다.

마을 전체가 영화세트 같이 30년 전 탄광촌 풍경에 멈춰져 있고, 박물관 내 아트하우스에 예술가들의

시각으로 철암을 재조명한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잊혀져가는 석탄산업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으며, 사람은 넘치고 주거공간은 부족하던 시절 개울바닥에

지지대를 만들고 주거공간을 넓힌 까치발 건물이 특징이다.

코로나 방역관게로 들어갈 수는 없고 자료를 모아보았습니다

열악한 그때의 생활상들

 

농협간판이 보이는데가 태백 파독광부기념관이다

까치발 건물들은 한 때 철거될 위기에 처했었지만 지역 주민, 예술가들과 태백시의 합의로 지금은

시에서 매입하여 볼거리 관광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철암탄광역사촌이라는 탄광촌의 역사와

까치발 건물을 소개하는 역사관과 지역 예술인들의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그 까치발 건물들이 지금은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이름을 바꿔 여행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철암역을 지나가는 국도변에 맞붙어 있지만 도로변의 겉모습으로는

역사촌인지 식별이 불분명하다. 차로에서 바라보면 '80~'90년대 신작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태양의 후예 촬영장으로 직행 했으나 여기도 출입금지 표지만 붙어 있고 다음

행선지 미인폭포로 향하는데 입구에서 두사람이 버티고 출입을 막고 있다 ㅜㅜ

하이원추추파크에 진입하다 보니 저멀리 폭포가 보인다 

지도상으로 집어 보니 미인폭포다 300mm줌인으로 최대한 가깝게 찍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폭포를 보려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2단계 실시로 입구에서

출입통제를 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하이원추추파크에서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사진은 블친님께서 직접 가서본 사진임

강삭철도 (인클라인)구간은 요즘 운행을 안하니까 숲만 욱어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광장에 전시된 기관차

인클라인 트레인

이곳 강삭철도는 1939년 일제 강점기에 삼척 심포리와 태백 통리사이 해발 고도차를 극복해 

기차를 운행하기 위하여 만든 철도다 고저차 수직으로 219m15.6도의 경사진 철로에 와이어 로프를

설치해 기차를 끌어올렸다 이구간은 승객이 내려 걸어야했다

여객열차의 운행도 영암선(현영동선) 영주 통리간과 철암선(현영동선) 북평(동해)-심포리간으로 분리되어 

통리 심포리간을 걸어서 경사면을 이용했다 1963년 새로운 노선이 들어오면서 철거됐다

일제 강점기의 인클라인 트레인

기차는 통리역과 신포리역 사이에 가파른 통리재가 가로놓여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승객들은 기차에서 내려 짐을 이고 들고  걸어서 비탈길을 1km이상 그 재를 오르내렸다.

당시 승객들의 짐을 운반해 주는 짐꾼들이 200여명에 달했다.

지게꾼은 고기상자, 화물 등을 지게에 지고 날랐는데,삯은 500환 정도를 받았다.

 겨울에는 새끼줄 장수들이 많았다.

강삭철로를 따라 걸어서 오르내리는 빙판길이여서 신발에 새끼줄'을 비끄러 매지 않고는

미끄러워 오르내릴수가 없었다.
원래 1963년에 폐지되어 철거되었으나, 하이원 추추파크가 들어서면서 관광목적으로 다시 복원하였다.

스위치백 트레인

스위치백 철로는 해발 349m 흥전역과 해발 245m 도계 나한정역 사이의 엄청난 고도차이를 극복하는 지그재그

노선이다. 양 역의 직선거리는 1.8km, 고도차이는 104m이다. 철도차량이 최대 오름의 경사도는 30%[1km당

30m씩 올라갈 수 있는 경사도]로는 도계지역까지 다달을 수 없기에, 흥전역 보다 뒤에 있는 심포리 방면의

나한정역으로 1.5km의 내리막 선로를 놓아 기차가 뒤로 살작 내려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는 방식을 취했다.

이 방식으로 달리는 기차는 1.5km, 4분이라는 추가 손해를 입는다. 어떻던 통리협곡의 근육질과 태백산맥을

넘는 스위치백의 장엄한 풍경은 가슴이 설레이고 혈맥이 뛰는 일이다.

스위치백트레인

먼저 스위치백트레인은 높은 고산지역 등 험지에서 기차 운영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차가 한방향으로 계속 오르려면 그 만큼 철로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험지에 그렇게 기찻길을

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그재그로 기차가 오르도록 방향만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기찻길만 설치해서

처음 오를 때는 앞방향으로 그리고 다시 어느정도 오르고 나서는 뒷방향으로 철길을 따라 오르는 방식이다.

이 스위치백 방식의 기차를 하이원 추추파크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

 

2016년에 블친님께서 체험하고 올렸을 때부터 한번 오려고 마음먹고 있다가 이번에 왔는데

타보지도 못하고 철수를 한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신리 너와집으로 가면서 중간에 보이는 또 하나의 현대식 너와집 

마지막으로 강봉문씨의 아들이 살다가 나간듯 문패가 강봉문씨가 아니다

이건물은 최근에 고처지은 집이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그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

옆 모습을 보니 그동안 보수를 한 흔적들이 보인다

너와집이란

  너와집은 화전민이나 산간지대의 주민들이 살았던 집의 형태이다.

너와는 지붕을 이을 때, 기와처럼 사용되는 재료로 200년 이상 소나무로 만든 것을 너와라고 부른다.

너와, 새, 굴피 등을 재료로 하여 60-70cm의 길이로 자른 너와를 용마루부터 맞물리도록 덮어가며

지붕을 이은 것이 특징이다.


http://youtu.be/FzhqM_8P5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