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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제천 의림지

 옆지기가 언제부터 단양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이번추석에 제주도 가족여행을

코로나 19 광복절집회 재집단 감염으로 포기하고 차례를 간단히 지내고 제천 단양 영월 여행길에

올라 제천 먼져 돌아본다 그 첫 번째 목적지가 의림지다(10/1)

오후 2시쯤 도착하니 의외로 차량도 많고 관광객도 많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 의림지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호수가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 그만큼 의림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저수지이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고 했다.

 

호반 둘레 1.8km, 만수면적 151,470㎡,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289.4 정보의

농지를 관개한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 시설 가운데 하나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하여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는 제천 지방의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는 순조 7년(1807년)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특산물로서, 산란하는 해빙기에만 볼 수 있는 공어(일명 빙어)가 있는데, 회어로서

진미를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주위에 솥밭공원, 국궁장, 파크랜드 등이

조성되어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의림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朴義林)이 좀더 견고하게 새로 쌓은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 세조 때 정인지(鄭麟趾)가 체찰사(體察使)로 이곳에 왔다가 3도의 병력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행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이다

 

. 주종은 수백 년 묵은 노송이며 버드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명승 지정번호 : 명승 제20호 지정연도 : 2006년 12월 4일 종류 : 명승지

크기 : 지정구역 211,038㎡

의림지 섬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의림지 확장및 준설공사를 하였는데여기에 동원된

인부들이 가난으로 밥을제대로 먹지 못해 힘을 쓰지 못하여 옮기지 못한 준설토가

쌓여 생긴 섬으로 당시 제천 사람들의 고난과 땀이 배어 있는 삼이다

우륵정과 우륵대

놀이터 부근의 풍경들

어린이들의 천국 파크랜드다

의림지의 또다른 이야기로는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방죽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여 년 뒤인

고려시대에 고을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다시 견고하게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후 1457년(세조 3)에 체찰사로 부임한 정인지(鄭麟趾)가 크게 보수공사를 했다.

 

최근에는 1910, 1948년에 보수공사를 했으며, 1970년에 보조 저수지로 상류 쪽 1.2km 지점에

제2의림지를 축조했다. 1972년의 대홍수로 무너진 의림지 둑을 1973년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른다.

가을을 알리는듯 하늘은 높고 뭉개구름은 두둥실

각설이 공연장과는 다른 난타공연을 하나보다

지금 휴식 시간이라서 공연을 볼 수는 없었다

인공폭포와 분수대의 시원함을 선사하며 힘차게 흐르고 뿜어대고 

수양버들 늘어진 모습과 오리배를 저어가는 관광객 그리고 저기 의림지섬의 

가슴아픈 사연의 섬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이다

인공폭포와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도 한참을 들여다 보고

코로나 19는 이야기 거리도 안 되는 평화로운 모습

저수지의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는 용추폭포라는 높은 폭포가 형성되어 있다

건너는 다리는 유리 잔도로 건설 밑을 내려다보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추폭포

경호루

경호루는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의림지(義林池)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1948년 당시 제천군수 김득련, 서장 김경술의 발기로 서울의 홍순간, 오세진의 특지로 목조와가 누각으로

정면3칸, 측면2칸, 2층의 누각을 건립하였으며 이익공(二翼工) 팔작집으로 단청이 되어 있다.

 

경호루는 의림지의 호반의 경관과 노송 숲 사이에 자리잡고있어 누각이 가져야할 자연경관을 모두 갖춘

누각이다. 근래에는 경호루 주변을 새롭게 개발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호루 주변에는 이렇게 오래 되고 아름다운 소나무가 즐비하다

경호루 주변의 휴식공간

반영이 참 아름다울 것 같은데 오리배들이 파문을 일으키니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

백년의 휴식

나 여기에 100여년을 살면서 의림지둑을 지키고 그들에게 그늘을 주었다

이제 고사목이 되어서도 그들에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려 한다

내몸이 썩어 없어지는 그날까지 나를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휴(休)로 남고 싶다

영호정
영호정(映湖亭)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는 의림지 남쪽 제방 위 노송 숲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쪽은 제방 위, 남쪽은 제방 경사지에 걸쳐

있어 8각의 높은 초석을 지형에 맞추어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동쪽 우측 칸에 `영호정(暎湖亭)'이라 쓴 현판을 걸었으며,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원래 영호정은 1807년(순조 7) 이집경(李集慶)이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

이범우(李範雨)가 1954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호정(暎湖亭)'이란 정자 이름은 의림지에 정자의 그림자가 비쳐서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는 데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호정은 주변에 아름드리 송림이 우거지고 남쪽으로는 넓은 들판, 북쪽으로는 의림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영호정(映湖亭)은 정미의병 창의 당시 제천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대장 이강년(李康年, 1858~1908))이

제천 천남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음력 7월에 이곳에서 부하 장수들과 정치를 논하였으며,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애기똥풀은 봄에서 가을까지 시도 때도 없이 피고 진다

우륵정과 우륵대

우륵이 의림지의 삭양노을를 바라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야금을 탔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 대의 저수지 안쪽을 보면 이석조라는 사람이 각서한 연암 각서를 볼 수 있다

해질력 서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일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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