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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제천 수몰지구 유물전시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풍은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화 신라의 세력 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그러나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을 한 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단지 내에는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원형대로 이전 복원되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으며,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아

‘청풍호반의 작은 민속촌’으로 불린다.

청풍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제천 수몰지구 유물전시관

제천유물전시관[堤川遺物展示館]

1998년 7월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단지 내에 개관한 전시관이다.

전시실은 지하 1층(364㎡)과 지상 1층(258㎡)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 전시실은 의병실과 향토유물전시실로

나누어진다. 의병실에서는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인석의 휘호 등 20여 점의 의병 관련 자료를 전시하며,

향토유물전시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천지역의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의복과

생활도구·토기·금속류 등의 생활유물을 전시한다. 지하 1층에는 제천 출신의 고암 조계형이 기증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소규모의 영상시설도 갖추고 있다.

월광사지의 유물들

조선시대 백자

조선 백자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고려 청자와 함께 우리 조상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 주는 공예품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로 백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조선 백자는 순백색의 점토로 그릇의 형태를 만들고 그 표면에

장식을 한 다음, 투명한 백색 유약을 입혀 구워 낸다. 백자의 색깔은 그릇에 입혀진 유약의 색에 따라 다르다.

조선 백자는 안료의 성분과 이를 입히는 기법에 따라 순백자 · 청화 백자 · 철회 백자 · 진사 백자 등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백자

조선시대 분청사기

고려시대 토기

고려시대 청자

백제시대 토기

삼국시대 토기

원광선사 탑비

보물 제360호. 높이 39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지에

전해오던 것을 19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석비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지대석과 같은 돌로 만들어진 귀부·비신·이수로 구성되었다.

 

귀부의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등에는 오각형의 귀갑무늬[龜甲紋]가 장식되어 있다.

귀부의 중앙에 있는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힘차게 조각되어 있고, 군데군데에 변형된 연꽃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옆면에는 안상이 모각되어 있고 그 위에는 복련의 연꽃이 돌려져 있다.

 

비문은 김영(金瑛)이 지었으며, 글씨는 순몽이 썼다.

원랑선사는 856년(문성왕 18) 당나라에 유학한 뒤 귀국하여 선문을 널리 퍼뜨린 승려로 883년(헌강왕 9)에

입적했으며, 헌강왕은 '원랑선사'라고 추시하고, 비명은 '대보선광'이라고 했다.

이런 소몰지구의 생활상이 충주댐으로 인해서 깡그리 사라졌다 

이제는 유물로 볼 수 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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